엄마는 매주 반찬 해나르고
여전히 귀가시간 확인한다
홀로된 엄마 생각 목메지만쿨한 남편과 시어머니 부러워
독립된 인격체로 대해주면
엄마와 내게 주어진 시간이
즐겁고 행복한 기억이 될 텐데엄마는 고아로 자랐다. 난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었고 다른 형제도 없다. 엄마는 나 하나를 데리고 평생을 살아오셨다. 엄마에게 혈연이라곤 이 세상에 나밖에 없다. 그런 엄마의 일상은 내 결혼으로 송두리째 바뀌었다. 둘이 지내오던 친정집엔 이제 엄마 홀로 남았다. 하루 종일 텅 빈 집에 앉아 노년으로 접어든 자신의 삶을 바라보고 있을 엄마의 모습을 생각하면 목이 멘다.(나도 착한 구석이 있는 딸이다!)하지만 그래도 엄마에게 착하게 굴기가 쉽지 않다. 엄마를 보고 있으면 답답할 때가 많다. 오히려 남이었으면 그냥 참고 넘겼을지 모르는 일도, 우리 엄마니까 더 참기 힘들다. 남편과 시어머니의 관계를 가까이서 본 뒤엔 엄마의 대화 방식에 더 불만을 갖게 됐다. 남편과 시어머니는 어찌 보면 무심해 보일 정도로 서로 ‘쿨’하다.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름 걱정하고 챙긴다. 가끔 시어머니가 남편에게 서운함을 표하기도 하지만, 뒤끝이 있거나 오래가지 않는다. 그저 오랜 친구 같다. 물론 남편이 3남1녀의 형제자매 중 차남인데다, 막내딸인 시누이가 시어머니에게 열심이어서 그런 관계가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게 남편과 시어머니의 관계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엄마에 대한 불만을 더이상 쌓아둘 수 없었다.엄마 이번주엔 무슨 반찬 해줄까? 언제 올 거니?나 왜 자꾸 그놈의 반찬에 집착하는 거야!엄마 응? 너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홍 서방이랑 싸웠니?나 엄마, 그냥 솔직하게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말하면 안 돼?엄마 응? 그게 무슨….나 엄마 지금 핑계 대는 거잖아. 딸이랑 사위가 보고 싶으면 그냥 보고 싶다고 해. 자꾸 반찬 가져가라고 하지 말고. 집에서 잘 먹지도 않는데 괜히 반찬만 버리고 있잖아. 그냥 우리가 보고 싶으면 정식으로 데이트 신청을 하라고.엄마 …….나 자꾸 다른 거 핑계로 간섭하려고만 들지 말고 엄마도 좀 솔직해져봐. 난 성인이라고.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하고 ‘이번 주말엔 우리집에 와서 밥 먹는 거 어때?’라든가 ‘친구들하고 어디를 다녀왔는데 정말 좋더라, 갈이 갈래?’ 이런 식으로 물어볼 수 있잖아. 그럼 나도 우리 시간을 봐서 엄마랑 함께할 시간을 따로 잡을 수 있을 테고. 엄마는 친구들하고 약속 잡을 때 그렇게 하지 않아?엄마 그래 알았다. 그럼 다시 물어볼게. 언제 올 거니?나 보고 싶으니까 오라고 하는 거야?엄마 그래! 이 망할 것아. 언제 올 거야?나 몰라. 우리 이번주에도 바빠!엄마 여보세요? 여보세요? 전화 끊은 거야? 언제 올 거니?나 (악!)나와 친엄마와의 대화가 자연스럽지 못한 것은 아무래도 엄마가 날 독립된 인격체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여전히 나를 자신에게 종속된 존재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니 아직도 내 모든 걸 엄마가 챙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엄마는 왜 날 자신과 다른 존재라고 받아들이지 않을까. 내가 아무리 반찬이 필요 없다고 말해도, 새 옷이 필요 없다고 말해도 엄마는 그저 자기 이야기만 한다. 대학을 가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엄마와 나누는 대화, 엄마와 보내는 시간은 그 전부터 이미 현저히 줄어든 지 오래다. 그사이 나는 숱한 남자를 만났고, 많은 인생의 고비를 겪었고, 작지만 큰 성공들도 이뤘다. 엄마가 아는 나의 모습은 오래전 철부지 어린 시절의 모습이다. 엄마가 모르는 나의 모습이 더 많아진 지 오래다.나는 엄마 딸이지만, 동시에 엄마와 분리된 또다른 인격체다. 유전적인 영향과 자라온 환경의 영향이 적지 않겠지만, 엄마와는 사고방식도, 취향도, 추구하는 삶도 다르다. 엄마가 그걸 좀 인정했으면 좋겠다. 게다가 이제는 결혼도 하고 독립도 하지 않았는가!물론 내가 철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중에 아주 먼 나중에 엄마가 내 곁을 떠나고 나면 조금 더 잘해드리지 못한 걸 후회하며 울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나도 그런 내 모습이 뻔히 보인다. 하지만 결혼 뒤 더 심해진 엄마의 잔소리와 관심은 지금의 내게는 스트레스일 뿐이다. 나도 엄마를 이해하려 더 노력해야겠지만, 엄마도 그런 나를 이해해줄 순 없을까? 엄마와 내게 주어진 시간이 조금 더 즐겁고 행복한 기억으로 남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것을 엄마가 알아줬으면 좋겠다.
이미 다 커버린, 엄마의 하나뿐인 딸
(*위 내용은 2015년 2월 22일 인터넷한겨레에 실린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