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해, 아빠 되니 좋다
정말 회사 그만둘 거야?
헉, 그렇게 비싼 산후조리원에?
나도 사업하고 싶은 건 아니?아내
그래도 애만큼은 양보 못해
조리원이 좋아야 좋은 엄마 만나
지금은 당신 회사 그만 못 둬
퇴직금 나오면 그때 하자, 응?아내가 만삭인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니 심기가 심상치 않다.나 자기야, 나 왔어~.아내 어, 씻고 밥 먹어.나 오늘 병원은 잘 다녀왔어?아내 응, 나 근데 조리원 바꿔야 할까 봐.나 우리 이미 예약 다 마쳤잖아. 무슨 일 있어?아내 좋은 엄마들이랑 만나려면 좋은 조리원 가야 한대. 육아에 조리원 동기가 중요한데, 우리가 예약한 데는 너무 싼 곳이라 거기 오는 엄마들도 다 별로고.나 …. 어디로 가고 싶어? 얼마나 하는 데야?아내 근처에 알아봤는데 괜찮은 데는 2주에 400만원 정도.나 2주에 400만원? 하루에 거의 30만원이나 되는 건데.아내 이건 비싼 것도 아냐. 최소한이야, 최소한! 더 좋은 데는 1000만원 하는 데도 널렸어. 이건 다 우리 애를 위해서라고.머리가 띵하고 어질어질했다. 세금 떼고 거의 두 달치 월급을 2주 만에 쓴다는 것도 놀랍지만 조리원 동기라니 앞으로 얼마나 치맛바람을 일으키려고 그러나, 걱정부터 앞섰다.나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애들인데 벌써 육아 걱정이라니. 너무 빠른 거 아냐?아내 빠르다니! 요즘은 뱃속에서부터 교육을 시켜야 경쟁에서 뒤지지 않는 거래. 나, 다른 건 몰라도 우리 애 문제만큼은 절대 양보 못해!나 알았어. 조리원까진 어떻게 해볼게. 하지만 우리 형편에 다른 사람 하는 대로 다 하고 살 순 없단 것만 알아줘.나는 대충 밥을 먹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내가 할 만한 투잡이 있는지 알아봤지만 매일 야근에 주말 출근까지 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을 고민하던 차에 친하게 지내던 선배에게서 술 한잔 하자는 연락이 왔다.선배 요즘 잘 지내지?나 네, 선배 어쩐 일이세요? 먼저 연락을 다 주시고.선배 어쩐 일은. 어떻게 사나 궁금해서 그러지. 요즘 직장은 잘 다니지?나 직장이야 정신없죠, 뭐.선배 너 곧 애 생긴다고 그러지 않았어? 돈이 많이 들어갈 텐데.나 네, 선배. 안 그래도 투잡 알아보고 있어요. 애 낳는 것부터 돈이 이렇게 들어가는데 낳고 나서는 얼마나 더 들어갈지 걱정이네요.선배 그래서 말인데 내가 하는 사업 같이 하자.선배와 대화를 할수록 대학 시절 꿈꾼 열정이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 사회의 부조리와 부정부패를 비난하며 촛불집회다 뭐다 거친 숨소리를 내며 정의를 외쳤고, 빛나는 미래를 설계하던 시절이었다. 다시 꿈꾸는 이 순간은 당장이라도 사표를 집어던지고 내 사업을 일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선배 그래, 그때 너는 열정적이었지. 그래서 내가 지금 너랑 같이 사업하고 싶은 거야. 어때, 좀 할 마음이 생겨?선배의 유혹은 너무나 달콤했다. 멀쩡히 잘 다니던 직장을 내던지고 사업의 길을 선택한 선배가 멋져 보였다. 하지만 선뜻 한다고 하기에는 봉양해야 할 부모님과 부양해야 할 가족 걱정이 앞섰다. 나의 실패는 곧 내 가족들의 실패이기 때문이다.나 저도 사업하고 싶죠. 옛날부터 창업에도 관심 많았던 거 알잖아요. 근데 와이프도 직장 그만뒀고, 이제 곧 애도 태어날 텐데. 와이프랑 상의하고 말씀드릴게요.선배 이야~. 너도 와이프 눈치 보며 살고 많이 죽었네. 생각해보고 꼭 연락 줘.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말할 수 없는 고뇌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책임져야 할 사람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나 자기야, 나 할 말이 있어.아내 응? 무슨 일이야? 목소리 깔고 분위기 잡으니까 나 무서운데?나 전에 말했던 선배랑 사업해볼까? 생각해보면 내가 이 직장에 얼마나 더 다닐 수 있을지도 모르고. 길게 다녀봐야 20년 더 다닐 텐데 우리 애 대학 졸업시키기 전에 회사 나오면 막막하기도 하고.아내 뭐? 자기 무슨 말이야! 사업이라니! 그러다 망하면 우리 다 길바닥에 내다 버릴 거야?아내는 사업 얘기만 나와도 펄쩍 뛰기부터 한다. 사실 장인어른 사업으로 집안이 어려워졌던 기억에 사업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았던 탓이기도 하다.아내 그냥 다니던 직장 다니다가 퇴직하면 퇴직금으로 작은 가게 하자. 그리고 앞으로 한참 뒤의 일인데 지금은 직장 오래 다닐 생각만 해. 사업은 절대, 절대 안 돼.아내 말도 일리가 있다. 창업 후 실패율이 90%가 넘는다는 통계도 있는데 10%에 우리 가족 모두를 담보로 둘 수는 없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고민에 차라리 그때 공무원시험을 보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후회가 들었다. 결국은 아무 소득 없이 다시 야근과 주말 출근인 일상으로 돌아왔다. 내가 사는 일상은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붉은 여왕의 나라 같다. 힘껏 달리지만 겨우 제자리에 서 있는 게 고작인 나라. 어딘가로 가기 위해서는 두 배로 빨리 달려야 하는 나라.이곳에서는 나도 대한민국의 보통사람이다.
붉은 여왕의 나라에 사는 사람
(*위 내용은 2015년 5월 8일 인터넷한겨레에 실린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