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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친구와 함께 세월호 1주기 추모행사에 다녀왔다. <제주의 영혼들>이라는, 미국의 한 독립영화 감독이 만든 제주 4.3 사건 및 강정 해군기지 관련 영화도 함께 상영하는 자리였다. 여러모로 한국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화려한 '한류'의 이면에 있는, 세월호 사건 한복판에 놓인 한국, 독립 시기부터 지금까지 사회/정치/문화적으로 여러 면에서 미국에게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한국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좋았다. 친구는 행사가 끝나고 집으로 오는 내내 세월호와 제주 얘기를 번갈아 꺼냈는데, 보수적인 백인 중산층의 전형답게 대부분 나와 크게 입장 차이가 나는 얘기들이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내 속을 가장 뒤집어놓은 말이 있었다. "근데 있잖아, 솔직히 말해서 나는 외국인이니까 그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선 신경 쓸 필요 없는 거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세계 곳곳 어디에나 널리 퍼져 있지만 잘 보이지 않던 무엇 하나가 실체를 가지고 내 눈앞에 펼쳐졌다. 내 먹고 살기에도 벅차고 바쁜 시대, 누군가 어딘가에서 빼앗기고 다치고 죽고 고통 받아도 그게 내 일이 아니면 그냥 눈 질끈 감고 넘어갈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었다. 큰 사고,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 앞에 때론 화도 내고 눈물도 같이 흘려보지만, 금세 내 아이 잘 먹고 건강히 잘 살면 그만인, 아니 그걸로도 성에 안 차서 내 아이가 공부도 잘하고 돈도 잘 벌기를 바라며 아이를 닦달하는 자리로 돌아가는 게 우리다. 리본 달고 기부하고 서명이라도 해서 한가닥 위로라도 되어볼까 보탬이라도 되어볼까 하는 사이에, 배는 일 년 넘게 바닷속에 있고 강정엔 기지 건설이 한창이며 곳곳에서 위험하고 불안한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있다. '난 외국인이니까 즐길 것만 즐기면 될 뿐, 복잡한 문제는 신경 쓸 필요 없다'는 미국인과 먹고사니즘에 갇힌, 처음엔 무기력하고 나중엔 무심해지는 우리가 뭐 그리 다를까.


나 역시 내 먹고 살기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지만 나는 왜 우리의 그런 모습을 그냥 보아 넘기기 힘든 걸까, 내가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런 질문들 속에서 답답해 질 때마다 나는 결국 수 십년 전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남긴 말 한마디로 되돌아간다. 그는 '당신은 외부인이면서 왜 여기 일에 끼어들어 괜히 감옥살이나 하느냐'고 힐난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어떤 곳이든 불의가 있다면 그것은 다른 모든 곳의 정의에 위협이 된다 (Injustice anywhere is a threat to justice everywhere)." 우리가 밀양과 강정, 세월호 등을 겪으며 소리 높이는 당사자들을 향해 '외부 세력'이 있네 뭐네 하는 것처럼, 그 때나 지금이나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힘든 투쟁을 오래도록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의구심이 먼저 드는 게 당연한가보다. 처음엔 '이길 수 없는 싸움인 줄 알면서 왜 저럴까,' 하는 안타까움에서 출발해 급기야는 '아직도 저러고 있나?' '대체 뭘 더 바라는 거지?' 에 이르기까지, 싸움을 이어가는 이들을 향한 우리의 시선은 너무도 빨리, 차갑게 변해버리고 만다.


하지만 킹의 말처럼, '어떤 곳의 불의'는 언제든 다른 곳의 정의를 위협하게 되어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지금 당장 내게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도 그것이 언젠가 다른 형태로 내게 닥쳐올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20여 년 전 우리는 많은 큰 사고를 겪었다. 페리 호,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등등. 그런데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이런 대형 사고에 체계적으로 대응할 능력이 없음을 우리는 발견하고 있다. 정치권은 그 때나 지금이나 부정과 부패의 그물망이 여기저기 얽혀 있고, 일반 시민들의 삶은 그 때나 지금이나 버겁고 힘겹다. 하지만 20년 전 그 때 무언가 해 둔 게 있었더라면 작년 4월 우리는 그 많은 목숨들을 잃지 않을 수도 있었다. 20년 전 페리호 사고 때 청년 의경이었던 아버지가 세월호로 자식을 잃고 방패 든 경찰 앞에서 울부짖는 지금, 세월호 이후의 일들을 제대로 해 나가지 않으면 우리 중 또 누군가가 비슷한 일을 반복해서 겪을 것이 당연하다.


물론 그런 일들의 대부분은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받은 공무원과 정치인, 일반 시민에 비해 힘 있고 여유 있는 자들이 해결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그들만의 몫이라고 여길 수는 없다. 나는 나 먹고 살기에도 바쁜 힘 없는 소(小)시민이니, 그런 일 하라고 뽑아 둔 저 사람들이 하는 게 당연하다고 할 수만은 없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정치인과 공인들도 게으른 하나의 인간일 뿐이며 자기 이익에 눈이 멀어 변화를 위해 움직이기보다는 '가만히 있으라'는 그들 내면의 욕망에 따르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들을 움직이려면 결국 우리가 그들을 재촉하고 다그쳐야 한다. 그것이 시민으로서의 책무다. 그것마저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소시민이 아니라 죽도록 일만하다 쓰러지고 다쳐도 억울하단 말 한 마디 못하는 '소'나 다름없는 것 아닐까.


그런 우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엄마/아빠들의 '사회적' 오지랖이다. 오지랖이 개인적인 관계망 안을 향하면 쓸데없는 참견이나 간섭이 되기 쉽지만 그것을 사회적으로 한번 발휘해 보면 어떨까? 뉴스며 신문에만 기대어 사회적인 판단을 내리지 말고 우리가 주말, 가족과 함께 직접 광장에 나가 그곳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떨까? 그리고 주중엔 열심히 살며 틈틈이 친구 하나 둘 붙들고 얘기해서 다음 주말엔 그 친구를 광장에서 만난다면? 그 다음 주말엔 그 친구가 또 친구를 데리고 나오고, 그 친구가 다시 가족이나 친구를 데리고 나온다면? 그렇게 여럿이 모인 광장에서 서로 친구도 하고 이웃도 되고 함께 소리도 쳐 본다면? 그렇게 한껏 오지랖을 떨어보면 우리는 무기력한 4월을 지나 삼십여 년 전 5월, 6월의 뜨겁던 힘을 불러낼 수 있을까? 세상을 바꿀 힘은 결국 도시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시민들'에게 있음을 보여주었던 그 5월과 6월이 지금 다시 우리 앞에 와 있다. 이 5월, 엄마 아빠들이 한껏 오지랖을 부려 '어떤 곳의 불의'에 맞서 함께 일어섰으면, 그래서 모든 곳의 정의를 지켜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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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슬
'활동가-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막연했던 그 꿈에 한발 더 가까워진 것은 운명처럼 태어난 나의 아이 덕분이다. 아이와 함께 태어난 희소질환 클리펠-트리나니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의 약자 KT(케이티)를 필명으로 삼아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 라는 제목의 연재글을 썼다. 새로운 연재 <아이와 함께 차린 글 밥상>은 아이책, 어른책을 번갈아 읽으며 아이와 우리 가족을 둘러싼 세계를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내 아이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함께 잘 키워내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글과 삶을 꾸려내고 싶다.
이메일 : alyse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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