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티와 함께 살면서 내가 조금 더 관심을 갖게 된 영역이 장애/질병과 관련된 사회 문제들이다. 아무래도 그럴 수 밖에 없다. 이 아이는 평생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선에서 살게 될 테니까 말이다. 케이티는 왼쪽보다 2.5배 굵은 오른쪽 다리, 볼록 솟은 발등, 넓고 큰 발 때문에 한 눈에 보아도 '다름'이 확연히 드러나는 신체를 가진 아이지만 그로 인한 신체 활동의 제약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내가 이 아이를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선에서 살게 될' 거라고 말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실질적인 이유다. 케이티는 이제 만 두 살. 다행히 아직까지는 기능상에 문제가 될 만큼 큰 증상이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 사춘기, 청년기, 장년기를 거치며 많은 문제가 나타나게 되어 있다. 만성 통증으로 인한 보행 장애, 출혈, 잦은 혈전, 피부염 등으로 인한 일상생활의 어려움은 물론이고 해당 다리 뼈가 최대 12cm까지 비정상적으로 길어질 수 있어 그럴 경우 결국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에도 이를 수 있다. '장애'를 질병으로 인한 신체적 기능 손실로 봤을 때, 케이티는 언제든 장애인이 될 운명을 지고 있다.


두 번째는 사회적인 이유다. 천만다행으로 다리를 절단하고 의족을 하는 일이 생기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케이티는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서 언제든지 장애인으로 '분류'될 수 있다. 다리를 잃지는 않더라도 통증과 출혈 등의 문제로 때때로 활동에 제약이 생길 수 있는데, '다름'을 인식하고 수용하는 부분에서 취약한 사회일수록, 외모와 능력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회일수록 다른 외모와 제한된 능력을 가진 사람은 그 사회에 받아들여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능 장애가 없어 실질적으로는 장애인으로 등록을 하지 못하는데도 사회적으로 '장애인'이 되어 버리는 모순이 생기는 것이다.


실질적으로는 비장애인이면서 장애인으로 분류되어 차별받을 수 있는,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선에 있는 아이, 또 지금은 비장애인이지만 앞으로 언제든지 장애인이 될 수 있는 아이를 보며 나는 생애 처음으로 이 경계선 자체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과연 우리가 장애와 비장애 사이에 경계를 긋는 것이 필요할까? 많은 장애인 시설과 특수교육 시설이 장애인의 보호와 치료, 학업을 보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그럴까? 어쩌면 그 많은 경계들은 비장애인을 보호하기 위한, 비장애인의 학업을 위한, 비장애인만의 사회를 만들기 위한 장치들 아닐까?


돌이켜보면 나는 한국에서 초/중/고/대학/대학원 교육을 받으면서 장애인을 마주한 경험이 거의 없다. 학교에서 '학습부진아'로 분류되었을 친구들이 반에 하나씩은 있었던 것 같지만, 그 이상으로 두드러지는 장애를 갖고 있는 친구를 만난 적은 없다. 지방이지만 제법 도심지에서 나고 자라서인지 내가 살던 동네에서 특수교육 시설, 재활원이나 요양원을 본 적도 없다. 중학생 때 학교에서 단체 자원활동을 가느라 버스를 타고 어느 산골 재활원에 가 본 적이 있지만, 그 때에도 그 곳 사람들은 만나지 않았다. 빈 방과 조리실 바닥을 쓸고 닦는 게 전부였을 뿐이다. 그 사람 많은 서울에서도 지하철역의 장애인용 리프트에서나 휠체어 탄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빠른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 사이로 느릿느릿, 그러나 '즐거운 나의 집' 멜로디를 크게 내지르는 리프트와 그 곳에 탄 휠체어 사용자를 볼 때마다 나는 그 리프트로 인해 그 사람에게 던져질 시선들이 안타까웠다.


반면, 미국에서는 나와 다른 사람들을 비교적 쉽게 만날 수 있다. 애초부터 이민자들의 나라였고, 흑백 갈등의 오랜 역사를 안고 있기 때문인지 이곳은 '다양성'의 문제에 민감하다. 그래서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 역시 한국에 비해 굉장히 옅은 편이다. 다운 증후군 학생들이 삼삼오오 무리지어 동네 작은 동물원에 야외활동을 나오고, 다리가 마비되어 늘 목발을 짚고 다니는 남학생, 얼굴에 백반증이 있는 흑인 여학생, 안면 장애가 있는 대학원생이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닌다. 아이 키우기 관련 대중 잡지의 표지모델로 장애 어린이를 싣고, 해당 질환에 대한 일반인의 이해를 돕는 글을 싣는 경우도 종종 있다. 심지어 케이티가 즐겨 보는 책과 유투브 채널의 동요 동영상에서도 휠체어 탄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이렇게 미국에서는 공공장소, 대중교통, 교육의 장 모두에서 장애인을 자주 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특별히 어떤 '시선'이 던져지는 걸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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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대상의 대중 잡지 표지 모델로 나선 장애 아동들. 왼쪽은 이분척추증을 앓고 있는 아이, 오른쪽은 자폐증을 앓고 있는 남매>


생활 속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본 적이 거의 없는 나에게 이곳의 이런 풍경은 낯설고 때로는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수업 모임에 최근 새로 오기 시작한 남자 아이 둘은 심각한 수준의 자폐증을 겪고 있는데, 하나는 신체 활동 수준이 너무 낮아 늘 엄마에게 안겨 있고, 다른 하나는 반대로 활동 수준이 높아 지속적으로 움직이며 소리를 낸다. 이 아이를 위해 '그림자'(shadow)라 불리는 어른 자원활동가 한 사람이 배정되었고, 이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특강이 준비되었다. 특강은 자폐에 대한 개괄적인 이해로부터 시작해 이 아이들을 다른 아이들과 다를 것 없는 한 아이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뤄져 있다. 장애에 따른 특수성을 인정하고 그에 맞춰 도움을 주되, 오해로 인한 두려움이나 과민 반응이 생기지 않도록 일반인들을 교육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특강은 동네 다른 단체들에서도 종종 열리는데, 내가 가입한 동네 엄마들 모임에서도 조만간 자폐증에 대한 특강이 예정되어 있다.


비장애인들을 위한 장애 관련 교육은 특히 부모들 사이에서 중요하다. 부모가 바로 알고 있어야 아이들이 장애를 가진 친구들을 편견과 두려움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육아서에도 그런 내용이 자주 나온다. 아이들이 다른 외모를 가진 사람들에 대해 궁금해 하는 건 순수한 궁금증인데, 그에 대해 어른이 "그런 걸 물으면 실례야" 라거나 "몰라도 돼" 하고 다그치면 안 된다는 거다. 그런 패턴이 반복되면 아이는 두려움을 갖기 쉽고, 혼자 두려움을 쌓아 올리다 보면 장애에 대해 오해와 편견을 갖게 된다. 이런 인식이 있어서인지 내가 만난 많은 미국인들은 자기 아이가 케이티의 다리를 보고 "쟤는 다리가 왜 저렇게 커?" 하고 물으면 내게 다가와 인사를 하고 간단히 물은 다음 아이에게 짧게나마 설명을 해 줬다. 그런데 유독 아시아 출신 사람들은 아이 뿐 아니라 어른 본인의 관심마저 애써 부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궁금한데도 실례가 될까 봐 물어보지 못하는 눈치일 때도 있고, 못본 척 하면서 한편으로는 딱한 표정을 짓는 경우도 있다. 어느 중국인은 내게 대뜸 "임신 중에 뭐 잘못 먹은 거 아니냐"며 질책인지 뭔지 모를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그런 아시안들을 볼 때마다, 나는 내가 나고 자란 한국을 떠올린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나 다름없는 곳.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너무 극명하게 대조적인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는 곳. 예의를 가장한 무관심, 무관심으로 인한 무지와 오해와 편견, 그런 것들이 쌓아 올린 단단한 두려움이 존재하는 곳. 질병과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아이들을 보며 자기 자식에게 "너도 말 안 듣고 말썽 부리면 저렇게 돼" 하는 곳. 그곳에 가장 필요한 것은 우선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무는 일 아닐까. 장애를 나쁘고 혐오스럽고 무서운 것으로만 볼 게 아니라 언제든 누구에게든 찾아올 수 있는 무엇으로 본다면, 타인의 장애에 대해 우리 아이들에게 함부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임신 중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도 아이가 병을 갖고 태어나기도 한다는 걸 안다면, 아이가 아파 마음 아픈 엄마에게 임신 중 음식 운운하며 뭐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멀쩡한 비장애인도 어느 한 군데 능력이 모자란 데가 있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좋겠다. 어느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걸 받아들이고, 우리 아이들이 모든 부문에서 완벽하길 바라는 마음을 조금씩 덜어내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이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조금 더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비장애아의 부모들이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를 무작정 경계하지도 안타까워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나같은 부모에게도 아이 키우는 즐거움과 보람이 똑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주면 좋겠다. 그리고 장애가 있어도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능력들을 갖출 수 있게만 도와주면 충분히 비장애인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이해하면 좋겠다. 그래서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가 조금씩 허물어져 모두가 서로 마주보고 부대끼며 자연스레 섞여들 수 있다면 좋겠다. 귀성버스에도, 동네의 설날 풍경에도, 동네 놀이터, 학교, 공원 그 모든 곳에서 서로 다른 생김, 서로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자연스레 함께 머물 수 있다면 좋겠다. 경계선에 서 있는 내 아이의 삶이, 그 경계 허물기 작업을 위한 작은 파문 하나 던질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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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슬
'활동가-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막연했던 그 꿈에 한발 더 가까워진 것은 운명처럼 태어난 나의 아이 덕분이다. 아이와 함께 태어난 희소질환 클리펠-트리나니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의 약자 KT(케이티)를 필명으로 삼아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 라는 제목의 연재글을 썼다. 새로운 연재 <아이와 함께 차린 글 밥상>은 아이책, 어른책을 번갈아 읽으며 아이와 우리 가족을 둘러싼 세계를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내 아이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함께 잘 키워내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글과 삶을 꾸려내고 싶다.
이메일 : alyseul@gmail.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alyson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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