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결심했다. 운동을 시작하기로. 거창하게 헬스클럽을 끊고 그럴 필요도 없이, 일찍 퇴근하는 날은 집앞 운동장을 뛰기로 했다. 운동장에 나가면 100명 중에 95명은 걷는다. 그러나 난 운동효과를 내기 위해서 500미터 트랙을 다섯 바퀴 돈다. 달리기를 건강관리의 방법으로 삼은 것은,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점도 작용했지만, 녀석이 질주본능에 힘입은 바도 크다.
지난 8월 대구에서 열린 세계육상대회를 티브이를 통해서 본 뒤 녀석은 세계적인 선수들의 동작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우사인 볼트의 폭풍질주를 따라 마루에서 연신 뜀박질을 해댔고, 도움닫기 뒤 폴짝 뛰어올라 바닥에 쓰러지는 멀리뛰기 동작도 따라했으며, 세단뛰기를 보고서는 깽깽이를 배웠다.
그뒤로 녀석은 나를 보면 “아빠, 우리 달리기 하자”하면서 달려들었고, 마루에서 또는 빌라 주차장에서 짧은 거리나마 달리기 시합을 했다. 아빠와 열 번 뛰면 여섯 번 이기고 네 번 지는 기묘한 경기 결과에 녀석은 더욱 열광했다. 9월 하순부터 시작된 나의 운동도 녀석과의 경합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었다.
처음에는 혼자 운동장으로 나갔다가 몇번은 온 가족이 함께 나갔다. 내가 없는 날에 아내와 녀석이 나가서 뛰고 온 날도 있었다. 500미터 정도 되는 트랙 한 바퀴를 쉬지 않고 돌았다며 아내는 감탄했다. 그 다음에 나와 함께 나간 날에도 녀석은 그 짧은 다리로 ‘다다다다’ 거리며 운동장 돌다가 잠시 쉬고 출발해 한 바퀴를 금세 돌았다.
그 순간 2008년 3월1일의 마라톤이 생각났다. 회사에서 주최했던 3·1절 마라톤에 나는 별 준비도 없이 호기롭게 출전했고 10킬로미터를 1시간 안에 완주해 기념메달을 받았었다. 그때 나는 지금보다 홀쭉했고 아내는 배가 불룩했다. 출산 3개월 전이었다. 야외에서 숨을 헐떡거리며 달릴 수 있게 된 건, 3년7개월만이다.
그때는 혼자였지만, 이제는 셋이다. 게다가 시합도 가능하다. 함께 할 수 있는 운동이 축구에서 달리기로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게다가 맹렬하게 쫓아오는 녀석의 속도가 심상치 않다.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단축 마라톤은 충분히 함께 완주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버지와 아들이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상황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며 뛰고 또 뛰어 결승점을 함께 통과했을 때의 성취감이란 얼마나 감격적일까. 처음에는 내가 녀석의 손을 끌어줘야겠지만 언젠가는 훌쩍 커버린 녀석이 내 페이스에 맞춰서 아빠의 완주를 도울 날도 올 것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