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47bea0b50008063aa0684064103799. » 녀석이 할머니, 할아버지께 세배를 하고 세뱃돈을 받고 있다.






5일간의 설 연휴. 이사한 지 1주일이 채 안 됐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 집처럼 짐을 정리하고 설 전날에 부모님을 집으로 모셨다. 설날 아침에 녀석과 함께 세배를 시도했다. “우리 한복 입고 세배할까?”라고 묻자 녀석은 “싫.어”라고 고개를 돌렸지만 “한복 입으면 뽀로로 풍선방울 불어줄게”라는 한 마디에 녀석은 그냥 넘어왔다. 돌잔치 때 넉넉한 크기로 장만했던 세자 저하 느낌의 한복이 꼭 맞았다. 그렇게 한복을 입히긴 했는데 녀석에게 절하는 법을 깜빡하고 안 가르친 것. 에라, 모르겠다, 그냥 녀석을 세우고 아내와 내가 부모님께 절을 올렸다. 그러자 녀석이 우릴 따라하며 넙죽 세배를 했다. 요즘 말이며 행동이며 어른들 따라 하기에 열심인 녀석은 세배도 그렇게 손쉽게 해치워버렸다. 아버지께서는 “나이 일흔 넷에 친손자한테서 처음 세배를 받아봤다”며 감격해하셨다. 부모님은 그렇게 유쾌하게 하룻밤을 묵으시고 댁으로 돌아가셨다.




















68f797da4fab81408cf041058c04e381. » 녀석은 기차 안에서 재밌게 놀았다.






출근하는 일요일까지 이틀의 여유가 생기게 된 것. 일단 이삿짐 정리를 마저 하고 남은 연휴를 어떻게 보낼까 궁리하면서 아내가 녀석에게 의사를 물었다. “성윤아, 우리 뭐할까?”라고 묻자 녀석은 “마.니.”라고 답했다. 설을 맞아 고향에 내려가신 외할머니가 보고 싶다는 뜻이었다. 그 시각 외할머니는 친정인 경북 영주에 계셨는데, 마침 서울서 내려가는 기차표가 있었다. 그렇게 우리 세 식구는 즉흥적으로 기차여행에 나섰다. 청량리역까지도 시내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 가야 하는 만만찮은 여정이었지만 ‘꼬마버스 타요’와 똑같은 파란 버스를 탄다고 하니 녀석은 신이 났다. 청량리에서 영주까지 세 시간이 걸렸지만 녀석은 무궁화호 열차 안에서도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볼거리가 많은 객실과 식당칸을 활보하며 기차여행을 만끽했다. 영주의 왕할머니(외증조모)댁에 도착해서도 수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세배를 제대로 드리고 세뱃돈도 두둑하고 받고, 멈추지 않는 장난·애교 본능을 발휘해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다음날 오후 4시 열차로 우리는 상경 길에 올랐다. 깔끔한 1박2일 기차여행이었다. 그런데...












집 앞에 도착한 시각은 저녁 8시30분께였다. 밖에서 바라본 불 꺼진 창문은 왠지 불안했다. 불을 켜놓고 갈 걸 그랬나... 현관문을 열고 집안에 들어가 보니, 예감은 적중했다. 장롱이며 장식장이며 심지어 싱크대 서랍까지 활짝 열려있고 옷가지는 어지럽게 흩어져있었다. 도둑이었다. 이럴 수가... 분명히 문단속을 하고 나왔는데...

경찰이 출동했다. 작은방에서 놈의 족적이 발견됐다. 뒤뜰 출입문을 열고 작은 방을 통해 침입한 것으로 추정됐다. 뒤뜰 출입문 시정장치의 아귀가 잘 맞지 않아 제대로 안 잠긴 모양이었다.

새로 이사 간 곳은 2층 빌라였다. 1층에는 관리실이 있으니 1층이나 다름없는 2층이었다.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층간소음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아 아이가 마음 놓고 뛸 수 있는 이곳을 선택했다. 2층 빌라이지만 뒤쪽에 흙마당이 있는 것도 신기했다. 시공사가 비탈길에 이 건물을 지으면서 건물 뒤편의 흙을 깎지 않고 남겨놓아 이 빌라 2층에 다섯 평 남짓한 뒤뜰을 꾸며놓은 것이었다. 날이 풀리면 녀석에게 흙을 만지게 하고 삼겹살도 구어 먹을 꿈에 부풀기도 했다.

그러나 도둑을 당하고보니, 낭만은 악몽으로 변했다. 놈은 옆 건물 뒤편의 공간을 이용해 우리집 뒤뜰로 접근했다. 철제 난간에는 놈의 장갑흔이 발견됐다. 비탈길에 위치한 옆 건물 바닥도 층고가 높아 이곳에서 우리 집 뒤뜰을 타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이삿짐을 놓고 뒤뜰을 청소하면서도 이곳이 범행경로로 이용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인근에 사는 회사 후배도 이와 비슷한 구조의 빌라에 사는데, 이사 온 직후에 똑같이 도둑을 맞았다고 했다. 이 지역 주거형태를 훤히 꿰뚫고 있으면서 귀금속이 있을 법한 신혼집 등이 범행대상으로 걸려든 셈이다.












놈은 결혼예물과 아이 돌반지 등 수백만원 상당의 귀금속을 털어갔다. “결혼예물은 남아나질 않는다”는 수많은 절도 피해 사례를 회사 선후배들에게서 전해 들었건만, 정작 당해보니 실감이 난다. 그러나 재산상의 피해보다도, 세상 어느 곳보다 안전해야 할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놈한테 무력하게 ‘뚫렸다’는 사실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특히 아이 키우는 입장에서 범죄를 당하고 보니 불안감은 더욱 크다.

서울중앙지검 출입기자로서 특수부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절도 피해에 노출돼있는 일반 서민 입장에서 부패범죄 수사는 먼 나라 얘기로 들린다. 보안·안전 의식이 소홀했던 내 자신도 책망해보지만, 이 정권이 부르짖는 ‘법질서 확립’의 기본은 ‘민생치안’에서 시작돼야 함을 절실하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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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기자
서른두살 차이 나는 아들과 마지못해 놀아‘주다가’ 이제는 함께 잘 놀고 있는 한겨레 미디어 전략 담당 기자.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친구 같지만 권위 있는 아빠가 되는 게 꿈이다. 3년 간의 외출을 끝내고 다시 베이비트리로 돌아왔다.
이메일 :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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