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b8e1f58a1ab4592d829a444ef3e1a45. » 외출길에 이미 아이폰에 꽂혀있는 모습.






두어 달 전에 아이폰4G를 구입했다. 쓰고 있는 휴대전화의 약정기간이 아직 1년이나 남아있었지만 회사 단체구매 행사를 놓치고 싶지 않아 내 명의로 개설해 아내에게 선물했다. 한국인 정서에 맞지 않는 불편한 애프터서비스와 데스그립(아이폰의 특정 부분을 손으로 쥐면 감도가 떨어지는 현상) 문제가 터졌을 때 보여준 스티브 잡스의 오만한 행태(“그러면 거길 잡지 마라”고 발언) 등을 감안하면 아이폰은 내게 별로 호감을 주지 못했다. 아이폰은 얼리 어답터를 꿈꾸는 아내에게 바치는 선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아이폰이 뜻하지 않게 육아도구로 쓰이고 있다. 녀석이 아이폰에 열광하고 있기 때문이다.






녀석이 아이폰을 쓰는 건, 어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먼저 오락용. 아이폰으로 피아노를 치고 드럼을 두드리며 풍선을 터뜨린다. 건반을 누를 때마다 동물소리가 나는 유아용 피아노앱도 있다. 다음은 학습용. 재밌는 만화와 함께 “하늘천 땅지~” 하며 천자문이 흘러나오고, 동물모양을 누르면 울음소리와 함께 영어단어가 발음된다. 1부터 50까지 누르는 게임은 숫자공부에 쓰인다. 마지막으로는 동영상 감상용. 뽀로로부터 시작해 ‘꼬마버스 타요’까지 아이폰에 담겨있는 동영상 콘텐츠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엄마의 피처폰을 통해 터치를 익혔던 녀석에게 아이폰은 전혀 생소하지가 않을 거다. 설치돼있는 앱을 제 손으로 찾아 들어가는 건 식은 죽 먹기. 얼마 전엔 제 엄마가 연합뉴스로 뉴스를 훑는 것을 보고는, 녀석도 똑같이 연합뉴스 홈페이지를 띄우고는 엄마한테 읽어 달라 했다고 한다. 나 원 참.






어쨌든 아이폰 덕에 성윤 엄마는 퇴근 후에 여유를 찾은 것 같다. 아이폰을 쥐어주면 엄마에게 달라붙어 있는 시간이 그만큼 줄어들어 집안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됐다는 것. 어른들과 식사를 할 때도 엄마나 아빠 둘 중에 꼭 한 명씩 찍어서 옆에 두었던 행동도 이제는 먼 옛일이 되었다. 물론 외식을 할 때나 장거리 여행을 할 때도 아이폰은 녀석의 짜증이나 지루함을 제압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가 되었다.






그러나 녀석이 아이폰과 친해질수록 걱정은 늘어간다. 어린 아이들에게 아이폰은 전자오락기와 텔레비전의 결합체다. 나 어렸을 때를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시절 가장 받고 싶었던 선물이 전자오락기였다. 부모님을 조르고 졸라 선물을 받기는 했지만, 당시의 전자오락기는 너무나 단순하고 조악해 한 달만 가지고 놀면 금세 싫증이 났다. 더 큰 자극을 찾아 오락실도 가봤지만 ‘모범생 콤플렉스’는 더 이상의 몰입을 막았다. 그 당시만 해도 게임중독으로 가기까지 겹겹의 장벽이 둘러쳐 있던 셈이다. 텔레비전도 채널선택권을 가장인 아버지가 쥐고 계셨으니 그로 인한 폐해를 생각하는 건 기우였다.






그러나 2011년에 4살이 된 녀석은 아이폰을 통해 흥미진진한 게임을 이미 만끽하고 있다. 그뿐인가. 뽀로로와 꼬마버스 타요 등 어른들이 보아도 감탄이 나오는 질 높은 콘텐츠를 내 손 안에서 반복해서 볼 수 있다. 과거에 만화영화는 집안에서 정해진 시간에나 볼 수 있는 희소한 것이었지만 이젠 아이폰을 통해서 언제 어느 곳에서건 불러낼 수 있는 아주 흔한 것이 되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나는 아이폰을 아예 녀석의 시야에서 치우거나, 녀석이 갖고 놀더라도 노출 시간을 최소화하려고 애쓰고 있다. 최근엔 “요것까지만 보자”고 약속을 하고는, 아이폰을 뺏어버렸더니 녀석은 손가락 하나를 펴 보이며 한 번만 더 보여 달라고 간절히 애원했다. 난 쓴웃음을 지으며 안 된다고 고개를 저었다. 녀석은 결국 울음을 터뜨렸고 그런 녀석을 안아 올려 이렇게 속삭였다. “아빠랑 약속한 거잖아. 약속은 지켜야지.”






내 몸 하나 편하자고 아이에게 슈퍼 바보상자를 열어주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이폰이 육아에 깊숙이 침투한 지금, 아빠로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강력한 사후 통제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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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기자
서른두살 차이 나는 아들과 마지못해 놀아‘주다가’ 이제는 함께 잘 놀고 있는 한겨레 미디어 전략 담당 기자.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친구 같지만 권위 있는 아빠가 되는 게 꿈이다. 3년 간의 외출을 끝내고 다시 베이비트리로 돌아왔다.
이메일 : dokbul@hani.co.kr      
블로그 : plug.hani.co.kr/dokb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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