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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치를 만들어야 하는 신문사 특성상 기자들은 보통 ‘격주 주5일제’로 일한다. 토요일은 항상 쉬지만 일요일은 격주로 출근해야 하는 것. 이번 주말은 토·일요일을 모두 쉴 수 있는 순번이었다. 평일에 제대로 얼굴도 못 보는 녀석과 회포를 풀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지만 내게 그 시간은 그리 달콤하지 못했다.



먼저 일요일 밤에는 ‘베이비트리’ 육아일기를 마감해야 했다. 법조팀으로 발령받은 뒤 육아일기를 계속 쓸지 잠깐 고민했었지만 좋은 아빠가 되겠다는 다짐이 무색하게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것 같아 ‘못 먹어도 고’를 외쳤다. 한 주를 마감하는 주간 보고서나 마찬가지다.



이번 주에는 또 원고청탁도 들어왔다. 한겨레신문사에서 발행하는 경제월간지 <이코노미 인사이트>에서 일하고 있는 선배가 ‘검찰의 삼성 봐주기’와 관련된 글을 써달라는 요청이었다. 삼성 관련 사건이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심하게 왜곡되는 사례를 평소 지켜봐왔던 터라, 그 요청을 흔쾌히 수락했다. 이번 주말엔 이틀을 쉬니까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을 거라는 판단도 작용했다.



그러나 이번 주말은 시작부터 가시밭길이었다. 금요일 오후 검찰 고위간부의 부친상 소식에 빈소를 찾아 여러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귀가시간이 매우 늦어진 것. 토요일 새벽 3시에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나마 아내의 배려로 오전 10시까지 늦잠을 잘 수 있었다. 날씨가 너무 좋아 마음 같아선 녀석을 동물원으로 데려가 책에서만 보던 동물들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몸이 너무 피곤했다. 평일 저녁에 육아를 거의 전담하고 있는 아내도 고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럴 때 낮잠은 꿀맛일 터인데, 녀석은 점심을 먹고서도 전혀 졸린 기색이 없었다. 엄마와 아빠가 침대에 같이 누워 책을 읽어주며 꼬셔도 녀석은 울음으로 저항했다. ‘에라 모르겠다’며 눈을 감은 것이 오후 4시였는데 눈을 떠보니 저녁 8시였다. 녀석도 아내도 모두 내 옆에 있었다. 모두 낮잠이 아니라 초저녁잠을 자고 일어난 셈이었다.



저녁 8시에 눈을 뜬 녀석은 최상의 컨디션으로 온갖 놀이에 열중했다. 최대한 양보해 녀석의 취침시각을 자정으로 잡았다. 12시에 재우고 딱 2시간만 일해서 원고 초안을 잡아보려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녀석의 눈꺼풀은 가벼웠고 그럴수록 나의 초조함은 커져갔다. 결국 11시30분에 녀석을 침대에 눕히고 집안 불을 모두 끄는 ‘등화관제’를 실시했다. 예상대로 녀석의 저항이 완강했다. 녀석을 토닥였지만 급기야는 발로 차며 아빠 나가란다. 그래서 ‘옳다구나’ 하며 안방을 빠져나와 소파에 누웠다. 10분만 누웠다가 작업을 시작할 요량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다리도 안 펴고 새우잠 자듯이 쪼그려 누웠지만 눈을 떠보니 새벽 4시, 뒤늦은 작업 시작. 초안을 완성하니 3시간이 훌쩍 지났다. 오전 7시에 다시 누웠지만 녀석은 8시에 일어나 나를 깨웠다.



일요일은 아내가 바빴다. 외부 연구용역 관련해 마무리 작업을 돕기로 한 ‘부업거리’를 받아온 아내는 컨설팅업체 사람들과 회의를 하러 오전 11시에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휴일을 또 남자 둘이 있어야 하는 상황. 한두 번 겪는 일이 아니므로 능숙하게 시간을 제어하고 싶었다. 집에서 좀 놀다가 놀이터에 나갔다 오니 오후 1시. 놀이터에서 힘을 빼 침대로 직행하는 녀석을 깨워놓고는 주말 특식 짜장라면을 끓여 맛있게 먹였다. 여기까지는 좋았지만 또 낮잠이 문제였다.



밥을 먹고 난 녀석은 또 낮잠을 거부했다. 모른 척하고 혼자 시체처럼 침대에 누워있어도 녀석은 번번이 나를 일으켜 손을 잡아챘다. 녀석이 잠들면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3차전을 보면서 꾸벅꾸벅 졸아보려던 나의 소박한 계획도 수정이 불가피했다.



결국 내 꿈을 앗아간 녀석에게 감정이 좋을 리 없었다. 퍼즐 여러 개를 흩뿌려놓고 제대로 맞추지도 않는, 평소 내가 싫어하는 녀석의 행태는 내게 도발로 다가왔다. 아내 같았으면 어려운 퍼즐이라도 하나하나 쥐어주며 녀석의 비위를 맞췄겠지만 나는 도저히 그럴 여력이 없었다.



“너 이거 할 수 있어? 할 거면 엎어... 이봐 이봐 이봐, 또 이렇게 건드려만 놓고 안 할 거잖아. 아빠가 그러지 말랬지!”



결국 나는 녀석이 여러 번 흩뿌려놓기만 하는 고난이도 구급차 퍼즐을 녀석의 손에 안 닿는 높은 책장 위에 올려놓고 방을 나와 버렸다. 녀석은 갑작스런 냉담함에 놀라 소파에 앉아있는 내게 달려와 울기 시작했다. 속상하다는 건지, 반성했다는 건지, 그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녀석의 서러운 울음을 가만 듣고 있노라니 미안해진다. 그래서 번쩍 안아주고 다독였다.



“아빠가 퍼즐 어지럽히지 말라고 했잖아. 앞으론 그러지 마.”



미안한 마음에 몇 분 안고 있었는데 녀석의 몸이 축 늘어진다. 울다가 아빠 품에서 낮잠을 자게 된 것. 그 시각 오후 5시였다. 아, 이런. 오늘도 일찍 재우기 틀렸다. 그래서 평소와 달리 부랴부랴 육아일기를 일요일 저녁 때 쓰게 됐다. 녀석이 깨기 전에 글을 마쳐야 한다. 맘이 급하다.



육아일기를 대략적으로 마무리 지으려 하는데 녀석이 일어났다. 아직도 상심이 컸는지 일어나자마자 엄마를 찾으며 운다. 한참을 꼬옥 안아주니 다시 퍼즐을 하겠단다. 그런데 이번엔 구급차 뒤에 소방차, 소방차 뒤에 비행기 이런 식으로 한꺼번에 손 안 대고 한 개씩 해치운다. 야멸차게 울린 효과가 금방 나타난 셈이다.



아들과의 갈등이 또 ‘급(急) 해피엔딩’으로 결론이 났지만, 행복한 주말을 위한 전제조건을 일깨워준 에피소드였다. 온갖 근심·걱정은 퇴근 전에 털어놓고 오기. 몸은 피로하고 마음의 여유가 없다 보니, 좋은 아빠가 되겠다는 초심과는 점점 멀어지고 아이를 대하는 마음이 강퍅해져만 간다. 일거리를 주말에도 싸들고 들어와 평일의 초조·불안을 가정에서 재현하는 ‘우(愚)’를 범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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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기자
서른두살 차이 나는 아들과 마지못해 놀아‘주다가’ 이제는 함께 잘 놀고 있는 한겨레 미디어 전략 담당 기자.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친구 같지만 권위 있는 아빠가 되는 게 꿈이다. 3년 간의 외출을 끝내고 다시 베이비트리로 돌아왔다.
이메일 : dokbul@hani.co.kr      
블로그 : plug.hani.co.kr/dokb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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