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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학대 피해, 그보다 더한 멍

양선아 2015. 02. 03
조회수 6240 추천수 0
아동학대.JPG
인천 지역 어린이집 학대 사건 이후 인천 송도지역 학부모와 어린이들이 지난달 18일 오후 인천 연수구 송도동 센트럴공원 들머리에서 아동폭력 및 아동학대 추방과 보육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인천/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어린이집 이미지 실추 우려”“아이가 좀 산만해서 그래”

주변 부모들 쉬쉬하거나 묵인…되레 피해 아이를 낙인찍기도

“부당한 일 공동 대응 나서야”훈육·학대 기준안 마련할 때

만 3살 정우(가명·서울)는 활동적이고 공격적인 편이다. 정우는 친구와 놀다 친구를 밀기도 하고, 점심시간에 잘 돌아다니는 편이다. 어린이집 교사 ㄱ씨는 화를 잘 낸다. ㄱ씨는 정우가 통제가 안되면 소리를 지르고 손으로 아이의 엉덩이를 때렸다. 정우는 선생님에게 여러 차례 맞자 엄마에게 상황을 전했다. 아이의 얘기를 들은 엄마는 어린이집 폐회로텔레비전(CCTV)으로 문제의 장면을 확인했다. 정우 엄마는 이 사실을 주변 엄마들에게도 알렸다. 주변 엄마들은 처음에는 함께 분노하며 해당 교사의 징계를 촉구했다. 원장은 피해 부모에게 사과를 하며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변화는 없었다. 원장은 해당 교사가 진정으로 반성했고 대체 교사를 구하기 힘들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화가 난 정우 엄마는 주변 엄마들에게 다시 함께 항의하자고 요청했다. 그러나 다른 학부모들의 반응이 달라졌다.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학부모 ㄴ씨는 “정우가 공격적이잖아. 선생님도 힘들었대. 어차피 다른 어린이집으로 안 옮길 거라면 괜히 원장에게 밉보이지 말자. 그 정도 하고 넘어가”라고 말했다. 정우 엄마는 ㄴ씨의 말에 또다시 상처를 입었다. 정우 엄마는 최근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전화를 해 “처음부터 신고를 할걸 그랬다. 이제는 정우만 공격적이고 문제있는 아이로 얘기되고, 나는 유난 떠는 엄마가 됐다”며 “어린이집을 옮겨야 할지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영유아 학대 사건은 피해자가 의사 전달 능력이 부족하고 명백한 증거를 확보하기가 어려워 학대 유무를 입증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또 경미한 학대의 경우 체벌이나 훈육과의 경계가 모호해 부모와 교사의 분쟁으로 이어진다. 설령 신고를 통해 아동보호전문기관이나 경찰이 조사를 하더라도, 조사 기간이 길고 가해자가 처벌을 받기까지의 시간도 상당히 소요된다. 이 과정에서 아동 학대 피해 아동과 부모는 지칠 뿐만 아니라 주변의 무관심이나 낮은 아동 인권 의식 때문에 이중, 삼중으로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다.

학대 피해를 당한 부모들과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학대 피해가 발생해 기관에 문제 제기를 하면 주변 부모들의 반응은 세 부류로 나뉜다. △피해 부모와 공동 대응하는 부모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니 침묵하는 부모 △해당 교사를 두둔하거나 피해 아이가 문제 있는 아이라고 낙인찍는 부모가 그것이다. 학대 피해 부모 ㄷ씨는 “아이 학대 사건으로 문제 제기를 했더니 원 이미지가 나빠지는 것을 걱정하고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식의 얘기를 서슴지 않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힘들었다”고 전했다. 또다른 피해 부모 ㄹ씨도 “피해를 당했는데 다른 엄마들이 ‘아이가 선생님에게 관심 받고 싶어했다’ ‘그 아이가 원래 산만하다’는 식으로 소문을 내 교사의 학대를 정당화해서 분노가 치밀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아직까지 우리 사회의 아동 인권 의식이 낮은데다 믿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보육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은 여건 속에서 이런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권태훈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복지사업본부 과장은 “당장 내 아이가 피해를 입지 않았더라도 부당한 일에 대해서 구성원 모두가 공동 대응하고 목소리를 높여야 학대가 재생산되지 않는다”며 “학대 정황을 인지하면 누구든 신고를 통해 제도적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고 짚었다. 아동보호전문기관 세이브더칠드런 관계자는 “매우 심각한 학대도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게 시작하기 때문에 경미한 학대도 경각심을 갖고 대처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서천석 서울신경정신과 원장은 “보육 기관에서의 체벌과 훈육이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없고, 신체적 학대뿐 아니라 정서적 학대에 대한 인식도 낮은 편”이라며 “이번 아동 학대 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체벌, 훈육, 학대에 대한 권고안을 마련해 부모와 교사들을 상대로 교육을 시키고 사회적 합의를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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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한겨레신문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썼으며 현재는 한겨레 사회정책팀에서 교육부 출입을 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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