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가슴이 바람 빠진 풍선 같아.”
“엄마, 어른이 되면 가슴이 그렇게 길어져?”
아이들이 나의 가슴을 보고 하는 말이다. 너희 낳고 젖 주기 전까지 이렇지 않았다고 말하면 믿으려나. 안 믿을 것 같아서 말도 안 했다.
사실 내 가슴은 남들이 참으로 많이 부러워하던 가슴이었다. 그런데 이십 대 후반에 요가를 하면서 영혼에 고삐가 풀려 노브라 운동에 참여하면서부터 조금씩 쳐지더니 아이를 낳고 모유 수유를 하면서 가슴에 무게가 실리자 더욱 더 아래로 내려갔다.
두 번의 모유 수유가 끝나고 가슴의 무게는 날아갔지만 길이는 남았다.
흐흐흐흐흐흐... 헛웃음이 나온다.
그래도 멋진 가슴으로 청춘을 보냈으니 됐다고 생각해야 하나.
하지만 솔직히 내 남은 인생을 이 늙어버린 가슴과 보내게 되어 참 힘이 빠진다.
‘최형주의 젖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첫째 딸, 바다의 모유 수유 이야기를 그림과 글로 베이비트리에 연재한 것이 벌써 6년 전이다. 그런데 작년에 네이버포스트로 다시 연재하게 되어 그림 한 장 한 장을 보면서 새롭게 그릴 것은 그리고, 다시 스캔하고, 이름을 넣고, 글을 다듬어서 올리는 작업을 했다. 이번에 보니 내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린 70여 장의 젖 그림들도 점점 수척해지고 길어지고 있더라.
참 힘들었고 참 행복했는데...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모유 수유를 선택할까?
당연히 선택한다. 그런데 방법을 바꿀 것이다.
내가 모유 수유를 하면서 했던 두 가지 실수가 있는데 하나는 죽기 살기로 먹이려고 했던 것이다. 그 때 초보 엄마였던 나는 모유가 좋다는 생각에 많이 먹이려고 애썼다. 약하게 빨거나 먹다가 졸고 있으면 내 손으로 젖을 주물러서 많이 나오게 해서 먹였다.
꼭 안 그래도 됐었다. 아기가 먹는 만큼 먹여야 젖양도 아기가 먹는 양에 맞춰지는 거니까. 아기가 먹을 만큼 먹고 잠을 자거나 안 울고 잘 놀면 된 거였다. 많이 먹이려고 너무 애쓰지 말고 그 힘으로 내 밥을 한 숟가락 더 떠 먹을 걸 그랬다.
그리고 두 번째 실수는 잦은 유축이었다. 젖양이 많았던 터라 젖이 차면 가슴이 아프니까 유축을 자주 했는데 그래서 젖양이 줄어들지를 않았다. 뇌에서 자꾸자꾸 젖이 필요한 줄 알고 젖을 많이 만들어준 것이다. 젖이 차서 부풀어 오르고 유축을 해서 줄어드는 과정을 몇 달 동안 수없이 반복했으니 피부가 늘어날 수밖에. 두 실수의 공통점은 젖을 너무 많이 짜냈고 그러면서 계속 피부 자극을 주었다는 것이다.
내가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아기의 건강과 더불어 나의 금쪽같은 가슴도 소중히 여길 것이다. 아기가 먹는 만큼 적당히, 가슴을 과하게 만지지 않으면서 젖을 물릴 것이고 피부 탄력을 위한 크림도 발라 줄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을 때는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줄 몰랐다. 늘 멋진 가슴이었기에 네가 망가져봤자지 어디 가겠냐 했는데 어디 갔다. 멀리 갔다.
모유 수유 중인 엄마들이나 모유 수유를 준비 중인 엄마들에게 나의 실수담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아기를 먹여 살린 고귀한 가슴이 너무 힘없이 남아있지 않게 도와주길 바랄 따름이다.
그리고 나의 바람 빠진 풍선...
아이들 손에 쥐여 이리저리 날리느라 힘들었던 풍선... 바람이 빠져서 가벼워지고 아이들 손에서도 빠져나와 자유로워졌으니 이제는 부는 바람 따라 춤 출 일만 남았다고 생각해보련다. 그래도 힘이 안 나면 그냥 애잔한 마음으로 함께 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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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주의 젖 이야기' 책 출판을 위한 기금 마련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책 제목은 <430일 간의 모유수유 모험일지>가 될 것 같습니다.
작업 배경 이야기와 작업 사진들, 출판 목적 등의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 있습니다.
https://tumblbug.com/milkdi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