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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유아 보육지원, ‘법적 규제’ 보조금으로 바꿔야 

양선아 2018. 10. 23
조회수 1983 추천수 0
사립 영유아보육기관 지원금 뭐가 문제인가

한국유치원총연합회와 일부 학부모 
개별 가정에 직접 지원 주장 

언뜻 들으면 귀가 솔깃한 방법이지만
꼼수와 함정 도사린 잘못된 해법 

지원금은 법적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부당 사용 등 처벌 못하고 비리 ‘날개’ 

사립유치원1.jpg » 동탄유치원비상대책위원회가 21일 연 집회에서 시민들이 사립유치원 비리 근절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화성/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번 사립유치원의 비리를 보면서 눈먼 돈이 또 저렇게 흘러 들어가 그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구나 하며 참으로 개탄스럽습니다. 그 돈도 아동수당처럼 각 가정으로 입금해주세요.”(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국공립 기관도 아닌데 정부는 왜 사립 유치원이나 민간 어린이집에 돈을 지원하나요? 차라리 그 돈을 부모에게 직접 주면 좋겠어요. 그 돈으로 아이를 문화센터에도 보내고 자유롭게 쓰고 싶어요.”(4살 아이 키우는 어머니 한아무개씨) 

비리를 저지른 사립 유치원의 명단이 공개되고 이들 기관의 각종 위법 행위가 알려지면서, 정부 지원금을 개별 가정에 직접 지급할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다. 자칫 이런 방안에 부모들의 귀가 솔깃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영유아 보육·교육 지원금을 개별 가정에 직접 지급하는 것은 해법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오히려 그렇게 하면 정부가 사립 유치원이나 민간 어린이집을 관리·감독할 명분도 사라지게 되고, 그동안 시민들이 끊임없이 요구한 유치원 및 어린이집의 공공성 확보에도 걸림돌이 된다고 본다. 

대법원도 “보조금 아니라 처벌 못해”
부모에게 지원금 직접 지급 방안은 사립유치원을 대표하는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이하 한유총)가 원하는 바이기도 하다. 이덕선 한유총 비대위원장은 지난 22일 한국방송 1라디오의 시사 프로그램에 나와 “정부 지원금을 우리한테 주지 않았으면 합니다. 제발 학부모한테 주십시오. 그래서 그 학부모가 정부 지원금을 갖고 집에서 아이를 키우든 공립학교를 보내든 사립학교를 보내든 학부모가 마음대로 선택하게 해주세요”라고 주장했다. 

김남희 참여연대 조세복지팀장은 “한유총의 이런 주장은 한 마디로 정부에서 돈은 받고 관리·감독은 안 받겠다는 꼼수”라고 지적한다. 김 팀장은 “지금도 대법원 판례에서 ‘누리 과정 지원금은 학부모에게 주는 돈이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대한 보조금이 아니다’라고 해, 횡령죄 처벌도 못하고 보조금 환수도 안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지원금을 정부가 목적과 용도를 분명히 정해 지급하는 보조금으로 주고, 이를 제대로 감독할 수 있는 투명한 회계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 사립 유치원의 재무회계는 정부지원금, 정부보조금, 부모분담금으로 수입 재원을 마련하고 있지만, 이에 따른 지출항목 구분이 미흡해 투명한 수입·지출 확인이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김 팀장이 말한 대법원 판례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지난 2014년 6월 대법원 판결에서 ‘보육 바우처인 영유아보육료는 보조금이 아니다’라는 판시가 있었다. 당시 제주시는 아이가 외국에 있는 외가에 다녀오느라 어린이집에서 교육을 받지 않았는데도 보육료를 결제한 어린이집에 보조금 반환과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어린이집에 지원하는 시설별 지원은 보조금이지만, 보호자에게 지원하는 아동별 지원은 보조금이 아니라며, 보조금의 부정 지원이나 부당사용 명목으로 어린이집을 처벌할 수는 없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 외에도 지난해 5월12일 인천지방법원에서도 식자재 납품업체와 짜고 허위 거래명세서를 작성하고 급식비를 부풀리고 보조금을 지급받은 어린이집 원장에 대해 영유아보육법상 처벌할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누리과정 지원금을 부모에게 주면 사실상 사립 유치원이나 민간 어린이집은 정부 지원을 받는 것이 아니게 되므로, 관리·감독 받을 필요도 없게 된다. 

국가가 영유아의 발달과 성장 책임 
전적으로 부모에게 전가하는 꼴 

이전 정부 보편적 복지 담론 떠밀려
지원에 초점 맞추고 책임성 소홀 

현 유치원 재무회계 지출 구분 미흡
투명한 수입-지출 확인 어려워 

시도교육청에 떠넘겨 보육 대란 일기도
이런 문제의식에 기초해 비리 유치원 명단을 공개했던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누리과정 지원금을 보조금 명목으로 바꾼 유아교육법 개정안을 오는 25일 대표발의한다. ‘보조금’이 되면 ‘용도 외 사용’을 금지하는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고, 이를 위반할 때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게 된다. 
사립유치원2.jpg » 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 주최로 열린 '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정책 토론회 : 사립 유치원 회계부정 사례를 중심으로'에서 박 의원이 토론회 개최를 반대하는 한국유치원총연합회 회원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쯤 되면 시민들은 이러한 궁금증이 생긴다. 애초 정부가 무상 보육 정책을 펼칠 때 왜 제대로 관리·감독 체계를 갖추지 않았을까? 정부는 왜 이렇게 문제가 꼬이도록 방치했을까? 백선희 육아정책연구소 소장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무상 보육을 펼치면서 정부의 정책 파트너가 된 사립 유치원이나 민간 어린이집에 공공성, 책무성을 갖추도록 요구해야 했다”며 “그런 요구 없이 재정을 투입한 것이 문제”라고 짚었다. 우리나라는 국공립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라는 인프라가 적고 민간 어린이집과 사립 유치원에 의존하고 있는데, 국가가 이들 민간 기관과 일종의 사회적 계약을 맺을 때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얘기다. 

백 소장은 “이명박 정부는 국공립 기관 확충엔 관심이 적었고, 보육 산업의 활성화와 자율적 경쟁을 중시하는 정책 기조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던 이명박 정부가 임기 말 갑자기 무상보육 정책을 실시하게 된 것은 2010년 지방선거나 교육감 선거에서 무상 급식 등 보편적 복지 담론을 내세운 진보 진영 인사가 대거 당선됐기 때문이다. 위기감을 느낀 한나라당은 대선을 앞두고 30~40대 표심을 얻기 위해 무상보육 정책을 적극 내세웠고, 박근혜 정부 역시 이 정책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무상보육 정책은 국가가 보편적 복지를 지향하며 교육 및 보육 서비스의 내용과 서비스 전달 체계(기관과 교사)까지 깊이 있게 고민하고 단계적으로 실시해야 하는 정책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비용 지원에 초점을 뒀고, 공공성 확보 방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오히려 누리과정 예산을 국가가 책임지지 않고 시도교육청에 떠넘기면서 보육 대란이 일어나는 등 각종 파행을 겪었다. 

저출생 등 한국사회 문제 해법도
백 교수는 “부모에게 지원금을 직접 주는 것은 국가가 영유아 발달과 성장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부모에게 전가하는 것과 다름없는 격”이라며 “이번 기회에 보육 및 유아교육의 공공성을 제대로 확보할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백 교수는 공공성 확대 방안으로 △국공립 시설 확충 △민간에 대한 서비스 기준 마련 및 지도·감독 강화 △서비스 운영자와 교사가 공공서비스 운영자라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 시키기 등을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부모에게 유치원·어린이집 지원금을 개별 가정에 지급하면 돌봄의 기능을 가정에 전가시키면서 성별 분업화 모델을 더 강화시킬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장하진·이옥·백선희씨가 쓴 <한국의 보육 정책>을 보면, 다양한 복지정책 모델이 있고 이 가운데 젠더 관점이 반영된 세인즈베리의 ‘개인별 소득자 돌봄자 모델’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 모델은 남녀가 소득자와 돌봄자로서 자격을 가지며 정책을 통해 여성과 남성 모두 노동자와 돌봄자가 될 수 있도록 구조화시켜 간다. 이 모델에서는 어린이와 환자, 장애인, 노인에 대해 돌봄자 비용과 서비스를 국가가 강하게 개입해 제공한다. 반면 ‘성역할 분리 모델’은 돌봄을 사적 영역으로 두고 가정 내 돌봄자에게 비용 지불을 하도록 돼 있다. 한국 사회가 놓인 저출생 문제, 경력 단절 여성 문제 등을 감안한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복지정책 모델은 무엇이고 왜 개별 가정에 유치원·어린이집 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이 해법이 아닌지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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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한겨레신문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현재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쓰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이메일 : anmadang@hani.co.kr       트위터 : anmadang21       페이스북 : anma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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