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교육

27살 딸, 아빠에게 고민을 상담하다

권오진 2018. 09. 28
조회수 1659 추천수 0

한 달 전 딸이 문자를 보냈다. 아빠랑 상담할거 있어요."

그 문자를 받자마자 바로 갈게라고 답장을 보냈다.  "갑자기 무슨 일이냐"와 같은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만사를 제쳐두고 자동차로 달려가서 시동을 걸고 딸이 있는 서초동으로 출발했다.

 딸의문자2.JPG » 딸과 주고 받은 문자 내용. 사진 권오진 제공.

딸은 교대 근처 커피숍에서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다. 퇴근이라 7시 반이 되어서야 만날 수 있었다. 딸은 아빠, 맛있는거 사주세요"라고 했다. 딸이 좋아하는 냉면집에서 냉면과 수육을 함께 주문했다. 나는 딸에게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묻지 않았다. 그런데 아빠를 본 딸은 미주알고주알 시시콜콜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나는 그저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딸은 현재 독립해서 혼자 살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100% 자부담으로 독립했다. 더구나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 인턴을 하던 시절이었다. 벌써 3년이 되었으며 직장 3년 차다. 독립한 이유는 우리 집의 가훈이 대학을 졸업하면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는 것에 충실한 결과다.

 

딸은 직장과 꿈에 대한 현실과 이상의 격차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 결론적으로 핵심은 직장 일이 힘들다는 것이었다. 직장에 처음 입사를 해서 사수와 한 팀이 되어 일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수가 그만두었다. 그러자 회사에서는 사수를 구해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쉽게 구해지지 않았고, 몇 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는 동안 딸은 1년이 넘게 사수가 할 일도 혼자 하게 됐다. 그러니 일이 많아도 너무 많은 일을 혼자 하게 됐고, 딸의 신체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면 휴식을 취해야 하는데 숙면을 하지 못하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늘 씩씩한 딸은 그동안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회사 생활을 했다. 그리고 신체의 한계를 절감하자 아빠에게 구호요청을 한 것이다. 

 

우리 집 가훈 중 하나는 해야 할 일은 즉시 한다이다. 딸은 아빠와 다름없이 일을 미루는 일이 없다. 딸이 대학생이었던 시절을 돌아보면, 딸은 일주일 동안 해야 할 과제를 받으면 3일 정도 밤을 새서 과제를 마친다. 그리고 나머지는 친구들과 즐겁게 논다. 하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은 3일 정도가 되면 절반 정도를 하고 논다. 그 친구들은 놀아도 노는 것이 아니다. 머릿속에는 해야 할 숙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딸은 이런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으니 회사에서도 윗 분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상사의 입장에서 보면 일을 잘 하는 직원에게 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며, 이로 인해 2명 이상의 역할을 혼자 하게 된 결과가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딸과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여전히 딸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다. 딸은 신이 났는지 계속 말을 이어간다. 그러다가 딸은 이사를 가려고 하는데 3개월만 집에 들어와서 지낼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 말에는 단칼에 "안 돼"라고 했다. 딸은 쿨하게 그 말을 받아들인다. 이미 2년 전에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아빠가 안된다고 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한 이유는 딸이 현재 같은 상황에서 집에 들어오면 다시 나가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면 지금 태평성대를 누리며 지내고 있는 아내에게 민폐가 된다. 요즘 아내의 기상시간은 오전 8시다. 아이들이 학생이거나 직장에 다니면 꿈도 꿀 수 없는 늦잠이다. 현재 큰 아이는 27살의 독립한 직장인, 아들은 23살의 군인이다. 그동안 아이들을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낸 아내는 자신만의 시간을 행복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 

 

11시가 가까워서 나는 딸에게 해법을 제시했다. 일명 `식사의 70% 법칙'이다. 보통 음식을 많이 먹으면 체한다. 과식을 하면 배가 딱딱해지기도 한다. 위에서 체하는 임계치는 70%이다. 그 이전에 음식이 들어오면 위산이 분비되며 정상적인 활동을 한다. 그러나 70%가 넘으면 위의 활동이 급격하게 위축되고, 심지어 활동을 중단한다. 딸의 상황은 과식으로 체한 것과 비슷했다. 주어지는 일이라면 언제나 깔끔하게 처리하니 윗 분들이 더 많은 일을 주게 되고, 그러다보니 일종의 체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래서 70% 이전에 `노' 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이런 비유로 설명하니 딸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런 이야기를 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동차로 집까지 태워다주려고 했지만 딸은 거부했다.

 

아빠, 오늘 먹은 것 소화시키려면 1킬로 정도는 걷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라면 웃음을 지으며 걸어간다

 

며칠 전, 지인과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20대의 자녀가 부모와 고민상담을 하는 비율이 0.8%에 불과하다고 말해주었다. 그러고보니 나는 괞찮은 아빠인 것 같다. 딸과의 소통이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어린 시절부터 잘 놀아주는 아빠로 소문이 났으며, 15년간 한 달에 한 번 서점에 가서 책을 구입하는 서점놀이를 했으며, 초등학교 6학년까지 무인도를 비롯하여 50번 이상의 전국 여행을 했다. 또한 중, 고등학생 시절에는 `원격 인증놀이'를 했다


대학생이던 시절에는 분기마다 종로 교보문고에서 책을 사주었다. 거기에 가면 우선 카드를 준다. 이미 상한선이 5만원이란 것을 안다. 구입 후, 딸이 좋아하는 비싼 스파게티 집에 간다. 식사 후에는 딸아, 혹시 시간이 있으면 명동에서 옷을 사줄까?”라고 한다. 명동에 가면 나는 커피숍에 있고, 딸은 명동을 휘젓고 다니면서 옷을 고른다. 1시간이 지나면 딸이 도착하며 예쁜 옷을 자랑한다. 그리고 카드를 반납한다. 그 금액을 보면 42,000, 35,000원 등으로 5만원이 넘지 않는다. 염치를 알기 때문이다.

 

딸.jpg » 딸의 도서 구입 인증 사진. 사진 권오진 제공.

 

27살 딸이 내게 고민을 털어놓은 것은 그동안 소통이 잘 이루어진 결과다. 그런데 인간관계에서 소통의 문제는 대부분이 겪는 어려움이다. 관념적인 소통이란, 경청, 눈맞춤, 맞장구, 눈높이 등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평소에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다가 갑자기 이런 행동을 하면 쌩뚱맞아서 오히려 면박을 당하기 십상이다. 이론적인 소통과 현실의 소통에는 괴리가 있다. 그것은 바로 소통의 함정이다. 소통이 활성화가 되기 위해서는 배려가 필요하다. 그래서 소통의 어머니는 배려이다. 또한 배려는 관심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평소에 무관심하다가 갑자기 소통을 하려고 한다면 복선을 의심하게 된다


그러므로 소통이 되려면 평소에 배려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된다. 배려는 결코 어렵지 않다. 그 첫 걸음이 밥상머리 예절이다. 식사 시간에 서로에게 "잘 먹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즐겁게 식사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식사 준비를 하느라 수고한 사람에 대한 배려이다.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의 단어도 배려의 단어다. 일상에서 이런 말들을 자주 사용해 보자.

 

그동안 우리는 소통에 대하여 한꺼번에 이루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모두들 시행착오를 한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갑자기 변하지 않는다. 꾸준한 관심이 배려를 만들고, 배려가 소통으로 연결된다.

 

소통의 또다른 출발점은 바로 놀이다.

부모가 아이와 잘 놀아주면 소통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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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상담, , 소통, 직장
권오진
아빠학교 교장. 행복가정연구소장. sbs ‘우아달’ 자문위원. 아빠가 하루 1분만 놀아줘도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다는 ‘1분 놀이’의 달인이다. 13년간 광고대행사 대표로 재직하다 IMF 때 부도가 난 뒤 그저 아이들이 좋아 함께 놀아주다보니 아빠놀이 전문가가 되었다. 놀이는 아빠가 아이에게 주는 최고의 사랑이자, 아빠와 함께 하는 놀이를 통해 15가지 인성 발달뿐 아니라 9가지 신체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저서로는 <아빠의 놀이혁명>, <아빠의 습관혁명>, <아빠학교>, <아빠가 달라졌어요>, <아빠 놀이학교>, <놀이만한 공부는 없다> 등이 있다.
이메일 : bnz999@hanmail.net      
블로그 : http://cafe.naver.com/swd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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