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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표…’가 경쟁 부추겨 육아 전쟁 악순환

양선아 2018. 09. 19
조회수 3514 추천수 0
오찬호1.JPG »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6층에서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 저자인 오찬호씨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회학자인 그는 “잘못된 사회구조속에서 부모들이 과잉 육아를 하고 있다”며 “우리가 아이를 시민으로서 잘 키우고 있는지 성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오찬호 사회학자가 본 과잉·강박 육아

뿌리는 가부장제와 성 역할 분업
‘일도 안 하면서…, 집에만 있으면서…’
눈총 시달리다 차라리 달인 결심

‘내 아이를 최고로…’ 존재 증명 나서
멋진 소풍도시락 싸면서 뿌듯
‘나는, 내 아이는 특별해’ 과시

“양극화 문제가 심각합니다. 전체 임금 노동자 가운데 중간 정도 되는 사람이 월 240만 원 정도 법니다. 집값 상승 추세를 보면, 가운데 속하는 사람이 열심히 일하고 저축해서 결혼하고 집 장만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닌 거죠. 이런 구조에서 부모가 된 사람이 사회생활하면서 어떤 걸 경험하나요? ‘평균치인 나도 무시당하기 십상이구나’, ‘실패하면 끝장이구나’라고 느낍니다. 그러다 보니 부모는 자기 자식만은 무시당하지 않을 사람으로 길러내야 한다는 강박감이 생깁니다. 그렇게 과잉 육아가 탄생합니다.”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오찬호(40) 사회학자를 만났다.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등 다수의 책을 쓴 작가이기도 한 그는 차별과 혐오가 일상화된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 직시하도록 만든다. ‘불평불만 투덜이 사회학자’라는 별명을 가진 그가 이번엔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이라는 책을 통해 부모의 삶에 현미경을 들이댔다. 그가 ‘문제적’이라고 보는 한국 사회의 과잉 육아, 강박적 육아의 모습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

“엄마표 수학, 영어…이런 책이 여전히 성행합니다. 이런 것을 솔루션(해법)으로 받아들이면 결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데 말이죠.” 오씨는 ‘엄마표’ 딱지가 붙은 육아법 유행이 과잉 육아, 강박적 육아라고 본다. 이런 육아법을 받아들이게 되면 여성에게 모성을 강요하는 사람이 늘게 된다. 결국, 많은 여성이 전투처럼 육아 경쟁에 뛰어드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여성들이 이처럼 과잉 육아를 하도록 만드는 더 근본적인 원인은 여전히 공고한 가부장제와 성별 역할 분업 구조에 있다.

생존 기술만 가진 아이 양산
“처음부터 여성들이 과잉 육아를 하겠다고 각오하지는 않았겠죠. 결혼, 출산, 육아 과정에서 여성은 경력이 단절되면서 주변에서 자꾸 이런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듣습니다. ‘일도 안 하면서’, ‘시간도 많으면서’, ‘집에만 있으면서’ 이런 이야기요.” 이런 말들에 여성이 해명해봤자 소용없다. 반복적으로 그런 이야기 듣게 되면, 여성은 차라리 ‘생활의 달인’이 되고 ‘주부력’을 높이자고 결심한다. 또 내 아이를 최고의 아이로 만들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어한다.

오씨는 또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을 강박적 육아의 예로 든다. 아이가 소풍가는 날, 어떤 엄마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멋진 도시락을 싼다. 남편은 잘하지 못하는 그 일을 해내며 뿌듯함을 느낀다. 인스터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멋진 도시락 사진을 올리며 자랑한다. 또 어떤 엄마는 자연주의 육아를 표방하며 과도하게 ‘좋은 먹거리’에 목숨을 걸고, 흙을 밟으며 자란 아이가 행복하다는 식으로 자신의 육아를 다른 사람의 육아와 구분 짓는다.

“강박이라는 거죠. 결국 그런 모습조차도 경쟁을 내면화해 ‘나는 특별해’, ‘내 아이는 특별해’라는 것을 과시하는 겁니다. 이렇게 말한다고 좋은 먹거리 먹이지 말고, 대안 교육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녜요. 개인이 그런 걸 추구할 수 있어요. 그런데 지나치게 그런 것을 강조하면 사회적으로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겁니다. 누군가는 ‘저 엄마는 저렇게 하는데 너는?’하는 식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을 공격할 단서를 찾아내거든요. 누군가는 또 ‘저 사람은 저렇게 하는데, 나는 게으른 엄마 같아’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요.”

오씨는 부모가 개입해 아이의 어떤 문제가 해결된다고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말한다. 그렇게 접근하면 문제가 발생할 때 사회구조가 아닌 부모 즉,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갈수록 부모에게 더 많은 것을 책임지라고 요구한다. 육아의 매뉴얼은 세분화되고 정교해지며 평가 잣대도 늘어난다. 그럴수록 부모는 더욱 강박적이 된다. 부모는 아이에게 공부는 기본이고, 외모도 갖추고 하루라도 더 빨리 다른 재주까지 갖출 것을 요구한다. 아이가 느끼는 중압감은 갈수록 커지고, 생존의 테크닉만 가진 아이들이 양산된다.
 
결혼.JPG »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을 쓴 오찬호 사회학자는 출산·육아 박람회를 통해 ‘소비하는 부모’가 만들어진다고 비판한다. 사진은 한 임신출산육아용품 전시회에 참관객들이 몰려들어 물건들을 둘러보는 모습이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무심코 내뱉는 차별과 배제의 말들
“모두가 시민을 기른다고 자부하잖아요. 어떤 부모도 나는 시민에 관심 없어요 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우리의 결혼, 출산, 육아 과정을 쭉 살펴보면 우리가 진심을 다해 육아를 해도, 이 아이는 시민이 아닌 거예요. 저는 저를 포함해 우리 모두가 성찰해보자고 말하는 거예요.”
 
부모 나서 아이 문제 해결 강조 위험
사회가 갈수록 더 개인에게 굴레
부모도 쫓기고 아이도 내몰려

‘헬조선’ 열패감 사로잡히지 말고
불평불만 드러내고 비판하다 보면
정치의 힘 작동하고 대안 만들어져

서울 강서구에서 장애인학교 설립을 반대한 사람들이나 부동산에 전화 걸어 ‘7억 돌파해봅시다’라고 집값을 담합하는 사람들이 유별난 사람들일까? 그는 “그런 사람들이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며, 그들 역시 정성껏 아이를 키우고 있다”며 “‘사랑이 가득한’ 가정 내에서 차별과 배제의 가치관, 자본주의 가치관이 아이에게 전수되고 있다”고 말했다. 가족끼리 모여 앉아 텔레비전를 보며 “비정규직 저 새끼들, 공부도 안 했으면서 정규직 시켜달라고 한다”라고 욕하는 아빠나 “우리가 뼈빠지게 고생해서 겨우겨우 산 집인데, 집값은 절대 떨어지면 안 된다”고 말하고 수시로 집값을 검색해 옆집과 우리집 집값을 비교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아이도 그런 부모를 닮아간다는 것이다.“우리는 진심을 다해 살고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하는데 과연 결과가 좋을까 하고 묻고 싶어요. 지금 우리가 시민을 양성하고 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질문을 던지는 거죠.”

이쯤 되면 “그래서 어쩌자는 것이냐?”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오씨가 항상 받는 질문이다. 그는 결국 이러한 사회비판이 의미가 있으려면 정치 및 행정으로 연계돼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한다고 말한다.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거나 ‘헬조선’이라며 열패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답은 아니다. 사회비판이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려면 정치의 힘이 필요하다. 정치가 잘 작동하려면 비판적 담론이 더 잘 형성돼야 한다고 본다. 그것이 출발점이다.

투덜거리는 아이에게 귀 기울여야
“대안이 없으면 비판하지 말라는 말들을 합니다. 저는 그런 말들이 정치적 효능 체험을 가로막는다고 봐요. 대안이 없어도 비판을 하다 보면, 그 비판들이 모여 대안이 형성되거든요. 그 과정이 굉장히 지루하고 길어요. 단번에 어떤 해결책을 마련할 수는 없어요. ‘왜 학교가 두발 단속해?’하는 목소리는 예전부터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인권 조례에 명시될 때까지 수십 년이 걸렸죠. 대안이 없어도 불평불만을 갖고, 역사의 흐름에서 여론이 되고 제도가 만들어져서 내가 아니더라도 어떤 세대가 수혜를 볼 때 그것이 정치적 효능감이죠. 우리 사회는 그런 경험이 부족하죠. 더 불평불만을 가지고 더 많이 쏟아내야 합니다.”

투덜이 사회학자라는 별명을 가진 그답다. 그는 그런 측면에서 부모도 아이가 불평불만을 있을 때 잘 들어주고, 아이가 정교한 언어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래서 어쩌라고?”, “거 참 말 많네”라고 하거나 “그런다고 바뀌겠어?”라는 식으로 변화의 싹을 잘라버리는 일을 부모가 먼저 나서 하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양선아 기자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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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한겨레신문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현재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쓰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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