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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뼈 부러졌는데…달려올 보건교사가 없었다

베이비트리 2018. 09. 12
조회수 213 추천수 0
시행령 개정 10년 미뤄지며
건강권 지킬 보건교사 충원
교육청 재정·의지에 좌우

지역격차 갈수록 벌어져
전남·강원·제주·충북 등은
초중고 절반에 보건선생님 ‘0’
학교에서 넘어졌던 강정원(가명·7)군의 모습. 강기원씨 제공
학교에서 넘어졌던 강정원(가명·7)군의 모습. 강기원씨 제공

“아이 얼굴뼈가 부러졌는데 5시간 뒤에야 치료를 받았어요.”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의 아빠인 강기원(42)씨는 퉁퉁 붓고 멍이 든 아이 사진을 보여주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강씨는 “다치자마자 병원에 갔으면 얼굴이 이 지경은 안 됐을 게 아니냐. 학교에서 해준 조치는 아이스팩을 대고 있었던 게 전부였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인천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강씨의 아들 정원(가명·7)군은 지난달 26일 오전 10시30분께 교실에서 아이들과 놀다 의자에 왼쪽 얼굴을 부딪쳤다. 코피가 나고 혀의 아랫면과 입의 바닥을 연결하는 설소대가 찢어졌지만 담임 교사는 냉찜질 외엔 다른 응급조치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점심시간에 동생 정원군의 얼굴을 본 4학년 형이 부모한테 전화를 걸어달라고 부탁을 한 뒤에야 강씨는 아들이 다쳤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강씨는 처음엔 그 또래 장난꾸러기에게 생기는 대수롭지 않은 멍 자국 정도로 여겼다고 했다.

그러나 하교 뒤에 확인한 아들의 얼굴은 심각했다. 부랴부랴 찾은 병원에서 얼굴뼈가 부러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원군은 ‘설소대 파열과 안면부 골절 등 전치 3주’ 진단을 받았다. 사고가 난 뒤 5시간가량 입안이 찢어지고 얼굴뼈가 부러진 상태로 방치된 셈이다. 학교 쪽은 “담임 교사가 올해 부임한 초임 교사라서 경험이 부족한 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초등학교는 12개 학급에 190여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지만, 학생의 건강 상태를 돌볼 보건교사가 한명도 없었다.

<한겨레> 취재 결과, 수백명의 학생이 다니는 학교 현장에 보건교사가 한명도 배치되지 않은 ‘초동 의료 사각지대’는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보건교사 배치와 관련된 법안과 시행령이 미비하다 보니 교육 현장에서도 상당한 혼란을 겪고 있었다.

학교보건법 제15조에는 모든 학교에 학생들의 보건교육과 건강관리를 맡는 보건교사를 둬야 한다는 의무규정이 있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일정 규모 이하의 학교에는 ‘여러 곳을 나눠 맡는 순회 보건교사’를 둘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을 뒀다. 하지만 같은 법 시행령은 순회 보건교사에 대한 언급 없이, ‘18학급 미만 초등학교와 9학급 미만의 중·고등학교에는 보건교사 1명을 둘 수 있다’고만 정하고 있다. 의무 규정이 아닌 것이다. 이처럼 상위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시행령 탓에 소규모 학교에서는 순회 보건교사조차 두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됐다. 일선 학교에 보건교사를 두도록 하는 학교보건법 개정이 2007년 이뤄졌지만, 이에 맞는 시행령 개정이 10년 넘게 미뤄지면서 곳곳에 생긴 사각지대가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제도적 미비점이 각 시·도교육청의 재정 여건과 인원 확충 의지에 따른 ‘지역 격차’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겨레>가 확보한 지난해 시·도교육청별 보건교사 배치 현황을 보면, 서울(100.2%)·광주(99.1%)·부산(98.8%)·대구(96.5%) 등 대도시에서는 거의 모든 학교에 보건교사가 배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배치율이 100%를 넘은 서울시의 경우 학급 수가 많은 학교 57곳에 보건시간 강사가 추가로 배치돼 있다. 지난해 배치율 95%를 기록한 경기도는 올해 정원 외 기간제 교사를 채용해 배치율 100%를 만들었다. 경기도 교육청 관계자는 “2015년까지만 해도 보건교사가 배치되지 않은 학교가 200곳이 넘어 학부모들의 민원이 많았다”며 “‘1학교 1보건교사’에 대한 교육감의 강한 의지가 없었다면 인력 확충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의 안전권과 건강권이 교육감의 의지나 교육자치단체의 예산 사정에 따라 달라지고 있는 셈이다.

반면 전남(55.2%)·강원(56.3%)·제주(58.9%)·충북(60.1%) 등은 전체 학교의 절반 가까이에 보건교사가 배치되지 않고 있다. 경남(61.2%)에서는 30학급이 넘는 13개 중·고등학교에 올해 처음으로 보건교사가 배치됐다. 학급당 보통 30명으로 계산했을 때 약 1천명의 학생이 보건교육과 응급처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던 셈이다. 경남 지역의 26학급이 넘는 중학교 3곳에는 여전히 보건교사가 배치되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방과 도서 지역 등에서는 학생들이 상처를 입은 뒤 응급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쳐 부상을 키우는 경우도 많다. 충남 천안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보건교사가 없어 팔이 부러진 학생에게 응급조치를 해주지 못하는 사고가 있었다. 당시 넘어져 팔을 다친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은 아무런 조치를 받지 못했고 몇개월 뒤 같은 부위를 또 다쳐 병원에 갔다가 팔뼈가 어긋난 채로 붙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하기도 했다. 경남 양산시의 한 중학교에서도 최근 팔에 상처가 난 학생이 연고만 바르고 있다가, 하교 뒤 뒤늦게 병원을 찾아 여덟바늘을 꿰맨 사례도 있었다. 이 학생의 담임 교사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아이의 상처가 그렇게 깊은지 몰랐다”고만 말했다. 사고 당시 학생도 교사도 부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판단할 능력이 없었던 셈이다. 보건교사 이선희(52)씨는 “보건교사가 있었다면 팔이 얼마나 붓는지, 이후 통증이 계속되는지 확인했을 것”이라며 “관련 전문성이 없는 일반 교사로서는 겉으로 보기에 상처가 깊지 않으면 상태를 정확히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보건교사의 돌봄에서 소외된 학생들은 응급 치료는 물론 위생 교육과 심리 상담 등에서도 뒷전에 놓일 수밖에 없다. 충남 지역에서 24년간 보건교사로 근무한 문성원(50)씨는 “보건시간에 손을 왜 깨끗하게 씻어야 하는지, 세균이 얼마나 많은지 알려주니까 학생들이 우르르 손을 씻으러 달려가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웠다”며 “지방의 작은 학교일수록 여러 사정으로 가정에서 기본적인 보건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맞벌이 부부나 조부모가 키우는 가정의 학생들 가운데 성폭력이나 가정폭력 등 심리 상담을 보건실에서 털어놓는 경우가 많아, 도서 산간 지역일수록 보건교사가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윤정 경인여대 교수(간호학)는 “감염병과 흡연, 성폭력 예방 교육 등은 물론 자살이나 우울, 스트레스 등 심리적 상태와 관련해서도 보건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보건교사가 없는 학교는 체육교사 등이 이를 담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실질적인 보건교육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차미향 전국보건교사회장은 “아동·청소년기는 건강한 생활습관을 형성하는 중요한 시기”라며 “학급 수가 적고 지방에 있다는 이유로 학생들의 건강 불평등이 심화하거나 안전의 사각지대에 놓여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순회 보건교사마저 없으면 일반 교사가 아찔한 약 처방

일선 학교에 보건교사를 배치하기 힘든 시도 교육청은 교육 현장의 ‘보건·위생 공백’에 대처하기 위해 보건교사 한명이 여러 학교를 맡는 ‘순회 근무제’와 일반교사가 보건 업무를 겸직하는 ‘보건겸직 교사’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업무에 대한 전문성과 집중력 등에서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인천 백령도에서 근무하는 박숙희(41)씨는 섬 안에 유일한 보건교사다. 그는 백령도 안 초등학교 2개와 중학교 1개, 고등학교 1개 등 4개 학교의 보건 업무를 맡고 있다. 그는 고등학교에 상주하며 1학기는 ㄱ초등학교에, 2학기는 ㄴ초등학교에 일주일에 하루씩 순회 근무를 나간다. 박씨는 지난 학기 ㄱ초등학교에 순회 근무를 나갔다가 다리를 저는 학생을 마주쳤다.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해 병원에 갈 것을 권유했지만 학생은 “침을 맞으면 괜찮다”며 웃어넘겼다. 박씨의 강권으로 찾은 병원에서 그 학생은 무릎 인대가 파열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상처를 입은 지 사흘 만이었다. 박씨는 “섬이 워낙 넓어서 수시로 순회하기도 어렵고, 4개 학교의 학생 수만 380명이 넘는다”며 “순회 날짜에 맞춰 응급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어서 학생들의 부상에 제때 대응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박씨처럼 여러 학교를 맡는 보건교사가 학교에 들르지 않는 날은 일반교사 가운데 한 사람이 보건겸직 교사 역할을 맡는다. 응급처치 등 보건 관련 자격증은 요구되지 않는다. 학생 수가 220명 정도인 인천의 ㅇ초등학교는 전임 보건교사나 순회 교사가 없었다.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침대 2개와 상비약을 배치한 간이 보건실을 만들어 일반교사들이 응급 상황에 대비해왔다. 전문 지식이 없는 일반교사들이 부담감을 호소했고, 지난해부터 근처 고등학교 보건교사가 일주일에 한번 학교에 온다. ㅇ초등학교 교무부장은 “하루 평균 4명이 넘는 아이들이 보건실을 찾는데, 보건겸직 교사들 입장에선 진통제나 해열제를 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전임 보건교사를 시·도 교육청 자체 예산으로 채용하다 보니 고용이 불안정한 1년 단위 계약직 교사가 많은 점도 학교 보건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꼽힌다. 서울시와 경기도 교육청 등은 학교마다 100% 가까이 보건교사를 두고 있지만 태반은 1년 단위 기간제 교사다. 경기도 여주에서 15년째 기간제로 일하고 있다는 한 보건교사는 “(재계약 시점인) 매년 11월마다 내년에도 내 자리가 있을까 가슴 졸인다”며 “재계약을 따내기 위해 눈치를 보느라 학교 행정직의 업무를 떠맡고, 그 때문에 아이들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털어놨다.

우옥영 보건교육포럼 이사장은 “학생들이 언제 아프고 다칠지 모르기 때문에 보건교사 한명이 여러 학교를 떠맡는 순회 근무제는 보건교사 공백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신종호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자격증도, 보건 교육도 받지 않은 일반교사가 학생들에게 약을 내주는 자체가 위험한 상황”이라며 “특히 경험이 없는 초임 교사에게 보건 겸임을 가욋일로 맡기는 경우가 많아 학생들의 위험이 가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지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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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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