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교육

모든 걸 버리고… ‘경험’을 찾아 떠난 개

권귀순 2018. 09. 10
조회수 167 추천수 0
모리스 샌닥의 ‘히글티 피글티 팝!’
단색 펜화에 담긴 고전의 위엄
‘오늘 참 예쁜 것을 보았네’
세로글줄로 독자 시선 붙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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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글티 피글티 팝!
모리스 샌닥 글·그림, 홍연미 옮김/시공주니어·1만2000원

오늘 참 예쁜 것을 보았네
모리야마 미야코 글, 다카하시 가즈에 그림, 박영아 옮김/북극곰·1만5000원

클래식의 귀환인가. 서점 어린이책 코너에 이 책이 꽂혀 있다면 눈에 띌까 싶다. 한 손아귀에 편안하게 잡히는 17㎝ 정사각형 판형의 <히글티 피글티 팝!>은 점점 커지고 ‘작품집’이 되어가는 그림책 트렌드를 역행한다. 일본 작가의 <오늘 참 예쁜 것을 보았네>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책장을 넘기는 세로쓰기 형식을 취해 시간을 거스르는 장정을 선보인다.

‘괴물 시기’를 통과하는 아이들에게 반백년 인기를 누리는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작가 모리스 샌닥의 1967년 초기작 <히글티 피글티 팝!>이 옛 디자인 그대로 국내에서 처음 번역 출간됐다. ‘히글티 피글티 팝!’은 영미권 어린이들이 말놀이 시기에 듣는 옛이야기 ‘마더구스’ 중 하나다. ‘히글티 피글티 팝/ 개가 대걸레를 먹었네/ 돼지가 몹시 서두르네/ 고양이는 정신이 없네/ 히글티 피글티 팝’. 샌닥이 어린시절 노래처럼 들었을 읊조림은 환상문학의 뼈대를 이루며 기이한 이야기로 재탄생됐다.

“안 먹어”를 외치며 6명의 보모를 사자밥이 되게 한 아기와 7번째 보모가 된 제니의 만남 장면. 어른의 얼굴을 한 아기 모습이 기이하다.
“안 먹어”를 외치며 6명의 보모를 사자밥이 되게 한 아기와 7번째 보모가 된 제니의 만남 장면. 어른의 얼굴을 한 아기 모습이 기이하다.

사자 입에 머리를 넣은 ’경험’을 얻고 온 제니를 마더구스 극장의 배우들이 주인공으로 맞이하고 있다.
사자 입에 머리를 넣은 ’경험’을 얻고 온 제니를 마더구스 극장의 배우들이 주인공으로 맞이하고 있다.

‘모든 걸 다 갖춘 개’ 제니는 “삶에는 뭔가 또 다른 게 있을 거야”라며 바깥 세상으로 떠난다. 돼지는 마더구스 극장의 주연 배우를 모집한다. 배우가 되는 데 필요한 ‘경험’을 얻으려 제니는 “안 먹어!”를 외치며 먹지 않는 아기의 일곱 번째 보모가 된다. 아기를 먹이는 데 성공해야 사자에게 잡아먹히지 않지만, 실패로 끝난다. 결국 ‘경험’은 못 얻은 걸까? 흥미를 돋우는 모험 여정에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겠지만, 어른들은 결코 가볍지 않은 철학적 주제에 머리가 묵직해진다. 고한빈 시공주니어 편집자는 “다른 그림책보다 분량이 많고 심오하다. 50년이 지나도 책 모양은 그대로이지만 어른이 되어 다시 읽으면 또다른 감동을 받는 고전 명작의 강점을 살렸다”고 말했다.

제니는 원래 샌닥이 키우던 요크셔테리어 반려견으로, 다수 작품에 ‘카메오’로 등장하는 등 영감의 원천이었다고 한다. 이 책은 제니의 죽음 뒤에 쓰였는데, 죽은 반려견이 ‘무언가를 찾아 떠났다’며 스스로를 위로한 것으로 읽힌다. 마지막 장 제니의 편지를 보면 말이다. “가장 좋아하는 살라미 소시지로 만든 ‘대걸레를 매일 먹으니’ 걱정 말아요.” 조밀한 필치의 단색 펜화가 고전의 위엄을 뿜는다. 8살 이상.

‘좋은 냄새’의 한 장면. 세로쓰기 글줄이 가만가만 읽게 만든다.
‘좋은 냄새’의 한 장면. 세로쓰기 글줄이 가만가만 읽게 만든다.

‘완두콩 한 알’의 한 장면. 다카하시 가즈에 그림작가의 그림이 앙증맞다.
‘완두콩 한 알’의 한 장면. 다카하시 가즈에 그림작가의 그림이 앙증맞다.

‘누군가의 가방’의 한 장면.
‘누군가의 가방’의 한 장면.

‘하늘색 물색’의 한 장면.
‘하늘색 물색’의 한 장면.

<노란 양동이>로 알려진 모리야마 미야코의 <오늘 참 예쁜 것을 보았네>는 어른들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아이들 눈에 잘 보이는 작고 예쁜 것에 관한, 문학성 짙은 이야기 다섯 편을 담았다. ‘완두콩 한 알’로 넌지시 알려주는 구구단, 전학 온 친구의 ‘하늘색 물색 우산’ 등 착한 마음을 키우는 서정적인 글과 포근한 그림이 시화처럼 어우러진다. 이지혜 북극곰 편집자는 “일본 그림작가의 원화를 존중하려고 세로글줄의 편집을 처음 시도했다. 옛 방식인 세로글줄의 불편함 덕분에 아름다운 글에 좀 더 오래 머무르도록 하려는 의도를 담았다”고 말했다. 3살 이상.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그림 시공주니어·북극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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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귀순 한겨레신문사
일찌감치 결혼했으나, 아이 없이 지낸지 13년. ‘룰루나 행성’에서 꽃을 키우며 지내던 앙큼군은 우주 폭풍을 만나 어느날 지구별로 떨어졌다. 아이가 없는 집을 둘러보다 우리집으로 왔다. 어딜 가나 엄마들한테 ‘언니’라는 호칭으로 통하는 ‘늙은 엄마’이지만, 앙큼군은 “엄마가 우리 엄마여서 다행이야”를 달고 사는 여섯 살 소년으로 자랐다. 곰팅맘은 현재 한겨레 편집 기자이며, 책과 지성 섹션에 어린이청소년 책을 소개하는 기사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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