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냥 즐거운 시간만은 아니었지만

자신도 바뀌고 가족관계 더 깊어져

 

기대치 달라 생긴 부부 갈등 점차 조정

아이와도 더 싸운 만큼 더 가까이

전업주부 스트레스도 뭔지 알게 돼 

 

아이들이 뭘 하는지도 궁금하고

스킨쉽 늘어 아이와 놀고 싶게 돼

 

주말부부로 아이 분리불안 커 선택

즐겁기도 했고 힘들기도 한 ‘양가 감정’

족에 적합한 생활 패턴 찾아 안정

 

육아휴직을 하는 남성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집계한 남성 육아휴직 급여자 수(공무원·교사 등 고용보험 미가입자 제외)의 추이를 살펴보면, 2007년 310명에 불과하던 남성 육아휴직 급여자 수가 2011년 1402명으로 늘더니 2017년에는 1만2043명을 기록했다. 여전히 남성 육아휴직자는 전체 육아휴직자 10명 가운데 1명에 불과하지만, 10년 만에 휴직자 수가 40배 가까이 증가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일과 생활이 균형을 이루고 ‘독박 육아’가 아닌 ‘평등 육아’ 문화가 정착하려면, 남성 육아휴직 활성화는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실제 육아휴직을 해본 남성들은 자신의 경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한겨레> 육아웹진 ‘베이비트리’는 아빠들의 생생한 육아휴직 경험담을 모아봤다. 그리고 그 경험들이 갖는 의미에 대해 전문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눠봤다.

  

그 전엔 아이들이 좋은 모습만 봤지만…


“집안일도 나름 했고 아이랑 잘 놀아주는 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자신이 ‘독박 육아’를 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더군요. 처음에는 화를 내다가 육아휴직을 해보겠다고 생각했지요.” 

 

사회적협동조합에서 근무하는 유군선(47·경기도 의왕시)씨는 지난 2월 육아휴직을 신청해 10살, 6살 두 딸을 돌보고 있다. 7개월째 두 아이를 주양육자로서 돌보고 있는 그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아이들이나 아내와의 관계가 더 깊어졌어요. 아이들의 다양한 측면을 보게 돼 아이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고요. 아내가 왜 힘들어했는지도 알게 됐지요.” 

 

유씨는 “좋아졌다”가 아니라 “깊어졌다”라고 했다. 그가 이런 표현을 한 이유는 육아휴직 뒤 마냥 즐거운 시간만 보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결혼 뒤 신혼 초기에 탐색하고 갈등하면서 역할이나 관계가 정립되듯, 휴직 뒤에도 흔들리는 시기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아내는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자 그동안 하지 못했던 외부 활동이나 공부 등을 더 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가 두 아이의 주양육자가 되어보니 아내가 해줬으면 하는 일들이 많았다. 서로 다른 기대치로 부부는 처음엔 갈등했고, 차차 역할을 재조정해 나갔다. 

 

전문가, 직장에도 긍정적 영향 강조

남 돌보고 배려하는 법 익혀

직장 복귀 때 동료와 잘 협력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이전에 그는 자신의 리듬에 맞춰 아이와 함께 산에 가고 요리를 해주었다.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아빠의 좋은 모습만 봤다. 그러나 휴직 뒤 그는 아내나 아이 리듬에 맞춰 생활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아이들에게 화도 내고 짜증도 냈다. 유씨는 “이전보다 아이들과 더 싸우게 됐지만, 또 그만큼 더 가까워졌다”며 “아이들과 더 교감할 수 있게 됐고, 전업 주부의 스트레스가 뭔지도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고 말했다.

 

롯데호텔에 근무하는 신장수(39·서울 서초구)씨도 육아휴직 뒤 아이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더 커졌고 결과적으로 양육 참여도 늘었다고 말했다. 5살, 2살 두 아이가 있는 그는 아내가 육아휴직을 끝내고 직장에 복귀한 지난해 12월, 육아휴직을 한 달 신청했다. 롯데그룹에서는 통상 임금의 100%를 지급하며 최소 1개월 이상 남성 육아휴직을 의무적으로 하도록 한다.

 

“휴직 이전에는 첫째 아이가 있어도 주말에 학회에 가서 공부를 하고 자기 계발을 했어요. 아이랑 놀고 싶다는 생각 자체를 안했어요. 그런데 육아휴직 뒤엔 저절로 아이랑 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꾸 아이들이 뭘 하는지도 궁금하고요. 매일 아이랑 놀이터에 놀러가고, 함께 자고, 스킨십을 많이 했기 때문 아닐까요?”

 

“직장일이 훨씬 더 편했다” 우스개


유씨와 신씨가 가족과의 관계가 깊어졌다고 말한다면, 공무원인 김근원씨는 육아 휴직 덕분에 가족에게 발생할뻔한 위기의 순간을 피했다고 말한다. 춘천교도소에서 근무하는 김씨는 주말 부부였다. 아내가 2014년 2월 철원으로 발령이 났고, 일주일에 한두 번 집에 왔다. 당시 5살이었던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며 김씨가 보살폈다. 그런데 엄마와 갑자기 떨어지게 된 아이의 분리 불안은 심해졌고, 김씨는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7개월 정도를 버티던 김씨는 결국 1년 육아휴직을 했고 직접 아이를 보살폈다.

 

“감정적으로 무딘 편이라 육아휴직 동안 아이랑 관계가 엄청 좋아졌다고는 말 못하겠어요. 즐겁기도 했고 힘들기도 한 ‘양가 감정’이었다는 말이 더 솔직한 대답일 거예요. 그런데 이것은 분명해요. 육아휴직을 안했다면, 아이의 분리 불안도 더 심해졌을 것이고 우리 가족 상황은 더 안 좋아졌을 거예요. 육아휴직 동안 우리 가족에게 적합한 생활 패턴을 찾을 수 있었고, 지금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육아휴직을 해본 아빠들은 육아휴직을 한다고 갑자기 무엇인가 확 달라지거나 좋아진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직장일을 하는 게 훨씬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됐고,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올라갔다”는 말을 우스갯소리처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사람 모두 “남성 육아휴직을 법적으로 강제화하거나 더 활성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만큼 자신의 삶과 가족들의 삶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고, 다른 남성들도 꼭 해볼 만한 가치있는 경험이라고 말했다.

 

이영환 전북대학교 아동학과 교수는 “경쟁과 성과 위주의 문화 속에서 돌봄이나 배려에 익숙하지 않던 남성들은 육아휴직을 통해 타인을 돌보고 배려하는 법을 익히면서 인간으로서 더 성숙해지는 것”이라며 “육아휴직은 단순히 개인뿐만 아니라 조직, 사회에 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아빠 개인에게는 아이와의 애착을 잘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이 교수는 “신씨가 아이와 놀고 싶다는 생각조차 안 든 것은 그만큼 아이와 애착이 형성되지 않은 것”이라며 “아빠가 아이와 애착을 형성하려면 여성보다 더 노력해야 하는데 육아휴직을 통해 신씨는 그런 기회를 얻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빠3.jpg » 엄마와 아기가 애착관계를 형성해야 하는 것 만큼이나 아빠와 아기와 사이의 애착관계도 중요하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엄마와 달리 애착 형성 기회 적어


여성들은 뱃속에 아이를 열 달 동안 품으면서 자연스럽게 아이와 정서적 교감을 하고 모유수유 등을 하며 스킨십을 통해 자연스럽게 애착이 형성된다. 그러나 남성들은 생물학적으로, 사회문화적으로 타인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애착을 형성할 기회가 적다. 그런데 육아휴직을 하면 아이와 ‘상호작용의 역사’를 형성할 수 있고, 그렇게 애착이 형성된다. 

 

이 교수는 또 조직에도 긍정적이라고 말한다. 이 교수는 “육아휴직이 잘 정착된 스웨덴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그들은 남성들의 육아휴직 경험이 나중에 회사로 복귀했을 때 동료들과 협력하고 배려하는 문화로 이어진다고 보고 적극 독려했다”며 “우리 기업들도 회사의 업무 공백을 우려하기보다 보다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남성의 육아휴직에 대해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또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민주시민으로서 가장 필요한 덕목이 배려와 협력인데, 남성에게 육아휴직 경험은 그런 자질을 키워줄 수 있다”며 “남성 육아휴직이 더 활성화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선아 기자anmadang@hani.co.kr

 

 

아빠들이 말하는 ‘아빠 육아휴직 활성화 되려면…’ 

 

남성 육아휴직자들이 늘고 있는 추세지만, 여전히 남성 육아휴직 비율은 낮은 편이다. 남성 육아휴직이 활성화되기 위해서 아빠들은 어떤 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할까? 

 

세 아빠 공통적으로 무엇보다 남성 육아휴직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군선씨는 “주변 남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육아휴직하겠다는 남성에게 ‘성공하지 싶지 않냐?’ ‘무책임한 것 아니냐?’ ‘육아휴직하고 돌아오면 네 자리 없어질텐데 그래도 하겠냐?’라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유씨는 “이런 분위기가 개선되지 않으면 누구도 선뜻 육아휴직을 하지 못할 것”이라며 “정부가 사회적 인식 개선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근원씨는 “2015년 육아휴직을 할 때만 해도 현재 직장에서 육아휴직을 하는 남성이 많지 않았는데, 최근 3년 새 15~20명 정도까지 늘었다”며 “전반적인 사회 인식 외에도 구체적으로 내 옆에 있는 누군가가 육아휴직을 가는 것이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어쨌든 직장 내에서 남성 누군가가 육아휴직을 하는 첫 사례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을 고려할 때, 신장수씨는 롯데 그룹처럼 기업들이 단 1개월이라도 아빠들에게 육아 휴직을 의무적으로 강제화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회사의 강제적인 제도가 아니었다면 나 자신조차도 자리가 불안하고 윗사람이 불편해할까봐 육아휴직할 생각을 못했을 것”이라며 “롯데에서는 한 달치 월급을 보전해주는데다 누구나 다 가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휴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빠들은 또 육아휴직 급여가 보다 현실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근수씨는 “당시 내가 육아휴직을 할 때만 해도 육아 휴직 급여 최대치가 100만원이었다”며 “매달 통장에서 나갈 돈을 생각하면 많은 아빠들이 육아휴직을 하려다가도 멈칫할 수 밖에 없으니 육아휴직 급여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육아휴직 급여는 2001년 11월에 처음 도입된 제도로 만 8살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 자녀가 있는 남녀 근로자가 영아의 양육을 위해 휴직하는 기간에 받는 급여를 말한다. 2017년 9월 육아휴직 급여가 한차례 상향 조정되면서 육아휴직 시작일부터 3개월까지는 통상임금의 80%(상한액 월 150만 원, 하한액 월 70만 원)을 받을 수 있고, 육아휴직 4개월부터 종료일까지 9개월 동안은 통상임금의 40%(상한액 월 100만원, 하한액 월 50만 원)을 받을 수 있다. 2019년이 되면 육아휴직 급여가 인상되는데,  육아휴직 4개월부터 종료일까지 9개월 동안 통상임금의 40%인 급여가 50%로 인상되며, 이에 따라 상한액은 월 100만 원에서 120만 원으로, 하한액은 50만 원에서 70만 원으로 오른다. 

 

정부는 또 ‘아빠의 달’이라는 육아휴직 특례 조항을 마련해 같은 자녀에 대하여 부모가 순차적으로 모두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경우, 두번 째 사용하는 사람의 육아휴직 3개월 급여를 통상임금의 100%로 상향해서 준다. 현재 이 상한액은 200만원인데, 내년부터는 250만원으로 오른다. (육아휴직 관련 제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고용보험 홈페이지를 참고) 

 

이외에도 육아휴직을 한 뒤 근속 승진 등에서 밀리는 등 ‘피해 아닌 피해’를 겪는 점이 개선돼야 하고, 대체 인력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