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다 보면 가끔씩 남들한테 “불쌍하다”라는 말을 듣는다. 같은 일을 하는 남성 동료에게도 듣기도 하고, 내가 일하고 있는 여성 조합원들(주로 나이가 50대를 넘긴)에게도 종종 듣는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50대말 여성 조합원은 내가 1인 4역을 하고 있다고 자주 말한다. 노동조합 간부, 주부, 아빠, 남편 등.
집에서 주로 내 역할은 아침밥 하기, 아이들과 놀아주기, 아내보다 먼저 퇴근 하면 저녁밥 하기, 쓰레기 버리기, 그리고 아이들 재우기 등이다. 청소와 빨래는 주로 아내가 한다. 감히 말하지만 나와 아내는 가사와 돌봄노동을 누구 몫으로 전가하지 않고 공평하게 한다. ‘평등육아’를 한다.
개인적인 시간은 별로 없다. 일 마치고 동료들과 함께 시원한 맥주나 소주 한잔 먹으러 가는 날은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 주로 올곧이 나만의 시간은 아이들 재우고 나서다. 그마저도 업무가 많으면 누리지 못한다. 아이들 재우고 졸린 눈을 비비며 일을 한다.
예전에 모 방송국 프로그램인 비정상회담에 초대손님으로 구글코리아 대표가 나온 적이 있다. 구글코리아 대표는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남자다. 당시 비정상회담 프로그램의 주제는 육아였다. 구글코리아 대표는 구글 직원들은 야근을 잘 하지 않는다고 했다. 본인도 구글 본사에서 일할 때 육아 때문에 칼퇴근을 했다고 말했다. 남자들도 회사 일이 있으면 아이들 재우고 한다고.
육아 기준으로만 본다면 나는 구글 직원들과 생활 패턴이 비슷하다. 나름 글로벌 스탠다드라고나 할까. 해고의 기준을 이야기할 때 사용자들은 미국의 극단적인 해고 유연성을 부러워하지만(미국은 사장이 어느 날 당신 해고야 하면 바로 해고다), 육아의 기준을 이야기할 때는 글로벌 스탠다드는 없어진다.
장시간 노동사회인 한국에서는 육아와 가사는 당연히 여성의 몫이다. 누군가 육아와 가사노동의 책임을 옴팡 뒤집어써야 장시간 노동사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여성들 스스로도 이걸 내면화하고 있다. 평등사회를 위해서 일한다는 많은 남성 또는 여성 사회운동가들도 비슷하다.
그래서 나는 “불쌍하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 불쌍함이 어디서 시작됐을까? 아내가 연애하던 시절 결혼하면 나에게 뭐해줄거냐고 물었다. 난 호기롭게 아침밥을 차려주겠다고 말했다. 직업의 특성상 야근이 많아 저녁에 뭐 해줄 수는 없겠고, 그럼 아침에 일찍 일어나 밥을 해주면 되겠다고 생각한 것. 결혼 하고 나서 땅을 칠 정도는 아니지만 조금은 후회를 했다. 차려진 밥상을 내 발로 찬 것이었다. 아내가 밥상을 차린다는 것은 고대 이래 끈끈히 내려온 가부장적인 남성의 권리였는데 말이다.
그래서 나 스스로 “불쌍하냐”고 생각하냐고. 전혀 그렇지 않다. 육아와 가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남편은 부부관계도 좋고, 음.. 성관계 횟수도 그렇지 않은 부부보다 많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흐흐. 쉽게 말하면 아내에게 사랑 받고 산다는 것이다.
5살 작은 아들 은유는 크면 “아빠랑 결혼하겠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아내는 “아빠랑 결혼하겠다는 아들은 찾아보기 힘들건데”라고 말했다. 은유는 종종 “아빠가 좋아. 아빠가 따뜻해”라고 말한다. 평등육아 덕분에 아내와 아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 산다.
아들의 이런 이야기를 들은 우리 노조 여성 간부는 “그거 문제 있는 것 아니냐”며 “아이는 엄마를 좋아해야하는뎨”라고 말한다. 그 분은 보육교사 자격증도 있는 분이다. 그래서 나는 “유아교육 내용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주 양육자를 엄마로 정해놓고 모든 걸 설명한 교과서 내용이 나는 오히려 잘못된 거다라고 답변했다.
최근에 도서관에서 ‘이상한 정상가족’을 빌려서 읽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읽어서 유명해진 책이다. 책 서문에 이런 내용이 있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결혼제도 안에서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핵가족을 이상적 가족의 형태로 간주하는 사회 및 문화적 구조와 사고 방식을 말한다. 바깥으로는 이를 벗어난 가족형태를 ‘비정상’이라고 간주하며 차별하고, 안으로는 가부장적 위계가 가족을 지배한다. 정상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로 가족이 억압과 차별의 공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전에 제주에서 육아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다. 참석자 대부분이 엄마였는데, 그 중 한 엄마가 나한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아이들이 커서 어떻게 자랄지 궁금하다”고.
나는 바란다. ‘이상한 정상가족’ 서문에 씌여진 것처럼 우리 아이들이 자율적인 개인이면서 공감하는 시민으로서 자라길 바란다. 그렇게 성장하는데 내가 제대로 역할을 한다면 부모로서 나는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 있겠다. 혐오와 차별이 넘치는 이 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이 잘 크기를 바라고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