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교육

특별한 날 특별 음식, 맛이 춤춘다

이안 2018. 08.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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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 요일
방주현 

오늘 급식은 짜장면이다! 

호로록, 한 입 먹으면
콧잔등에
맛있는 짜장 점 일곱 개 

호로록 호로록, 두 입 먹으면
입가에
맛있는 짜장 수염 두 가닥 

마주앉은 친구가
웃는 소리도
짜장짜장 하는 날

―〈동시마중〉(2017년 5·6월호)

짜장면이 표준어로 된 것은 2011년부터다. 그전에는 ‘자장면’으로 쓰고 ‘짜장면’으로 읽었다. 자장면이란 말에서는 도무지 짜장면 특유의 맛이 나지 않아서다. 김유정의 〈봄봄〉에 나오듯이 ‘짜장’은 ‘과연 정말로’라는 뜻을 지닌 부사이기도 하다. 짜장면은 길거리 아무데서나 코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짜장 힘이 센 음식인 것이다.

방주현의 ‘짜장 요일’은 명랑하고 발랄하고 사랑스럽다. 시를 여는 “오늘 급식은 짜장면이다!”라는 반가운 외침은, 짜장면이어서 낼 수 있는 효과다. “호로록,” “호로록 호로록,” 소리는 국수로도 낼 수 있지만 콧잔등이나 입가에 맛있는 점을 찍거나 수염 가닥을 그리는 건 짜장면이 아니면 할 수 없다. 혼자 먹지 않고 “마주앉은 친구”와 함께, “짜장짜장” 떠들고 웃으며 먹기에 이 짜장면은 특별한 요일의 특별한 음식, ‘짜장 요일’의 주인공이 된다.  

같은 식구라도 서로 말이 통하고 뜻이 맞지 않으면 화목하기 어렵다. 음식도 그렇다. 식구마다 좋아하는 음식이 다르면 그것만큼 난처한 일도 드물다.  

우리 집 음식 달력을 만들어 보자. 할아버지 생일, 엄마 생일, 아이 생일,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 첫눈 오는 날, 방학식 날, 오랜 가뭄 끝에 비 오는 날…어떤 음식 앞에 둘러앉으면 더 특별한 날이 될까. 더 다정한 사이가 될까. 엄마는 닭볶음과 김치찌개, 아빠는 북엇국과 된장찌개, 맏이는 오징어삼겹살불고기, 둘째는 달걀말이, 식구마다 만들고 싶은 음식을 한두 가지씩 익혀 두었다가 특별한 날 차려 내도 좋겠다.  

음식을 만들 때는 더디고 성가시더라도 아이를 불러 이런저런 이야기도 주고받으면서 같이 하는 게 좋다. 눈썰미가 좋아지고 손이 야물어진다. 조심스러움과 때의 감각을 익히게 된다. 무엇보다 먹고사는 일의 수고로움을 이해하고 음식 앞에서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지 않겠는가.   

음식 만들기는 시 쓰기와 비슷하다. 재료 준비에서 간 맞추기, 상차림까지, 정성과 안목, 절제와 균형, 종합적인 예술 감각이 필요하다. 이처럼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 오감이 한꺼번에 사용되는 일은 흔치 않다. 물론 다른 점도 있다. 잘못 쓴 시는 버리면 그만이지만 음식이 잘못되었다고 후딱 내다 버릴 순 없다. 맛이 덜해도 표나지 않게 먹어 주는 게 음식에 대한 예의다. 

의식주는 식주의로 바꿔야 순서가 맞다. 먹는 일과 사는 일이 직결되었기에 ‘먹고’와 ‘살다’란 말이 ‘먹고살다’로 딱 붙었는지도 모른다. 음식이 시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것 역시 이와 관계될 터이다. 시에 자주 등장하는 정도를 따져 보아도 음식-집-옷 순이다. 국수를 생각하면 백석의 〈국수〉나 이상국의 〈국수가 먹고 싶다〉가 떠오르고, 간장게장 앞에선 안도현의 〈스며드는 것〉이 떠오른다. 동시로는 류선열의 〈국수 꼬리〉, 이상교의 〈아름다운 국수〉, 권오삼의 〈라면 맛있게 먹는 법〉, 유희윤의 〈잡채는 말도 예쁘게 해〉, 안도현의 〈밀가루 반죽〉, 장영복의 〈엄마도 모르는 엄마 얼굴〉, 유강희의 〈국수 가족〉, 〈새벽 편의점〉(컵라면), 정유경의 〈갈치〉, 송선미의 〈사과 아삭〉, 김개미의 〈커다란 빵 생각〉, 송진권의 〈트라이앵글〉(국수), 박해정의 〈뱀〉(떡볶이), 김성민의 〈장아찌〉, 신민규의 〈콜라〉, 강정규의 〈간장종지〉, 강기원의 〈김을 재우다〉, 곽해룡의 〈삼각 김밥〉 등이 떠오른다. 

밀가루 반죽
안도현  

칼국수 만든다고
엄마가 밀가루 반죽을 주물러요
―나도 좀 만져 봤으면
저리 물러가 앉으라고
엄마는 손사래를 쳐요
―주먹만큼만 떼어 줬으면
손에 묻히면 안 된다고
엄마는 고개를 저어요
―탁구공만큼만 떼어 줬으면
축구공만 한 반죽을
엄마는 혼자서만 굴려요
―나는 하느님처럼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데
엄마는 밀가루 반죽으로
칼국수밖에 못 만들어요  

―〈냠냠〉(비룡소 2010)


그런데 이 아이의 엄마가 걱정한 것이, 고작 밀가루를 여기저기 묻히고 다니는 정도가 아니라 정작은 밀가루 반죽으로 “하느님처럼” 정말 “무엇이든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고 살짝 어긋나게 상상해 보는 건 어떨까. 그러면, 어른은 정해진 것밖에 못 만들지만 아이는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는 얼마간 싱거운(그러나 사실이 아닌 것도 아닌) 마무리에서 조금쯤 벗어나게 될지도 모른다. “하느님처럼/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데”도 참여를 거부당한 아이는, 밀가루 반죽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빗줄기로 국수 만드는 법’을 상상한다. 

빗줄기로 국수 만드는 법
안도현  

좍좍 퍼붓는 굵은 장대비로는 칼국수를 만들자  

가랑가랑 내리는 가는 가랑비로는 소면을 만들자  

오고 또 오는 질긴 장맛비로는 쫄면을 만들자  

―〈냠냠〉(비룡소 2010)


토란잎에 앉은 빗방울을 그늘에서 잘 말려 영롱한 펜던트를 만들겠다(이안, ‘빗방울 펜던트’)는 것만큼이나 엉뚱하고도 불가능한 얘기지만, 비 오는 날 많이 찾는 음식이 면류인 걸 보면 빗줄기와 국수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시란 당연하고 가능한 세계의 재현이라기보다 불가능한 가능 세계를 건축하는 일에 속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만약 이 아이의 엄마가 밀가루 반죽을 “탁구공만큼만”이라도 떼어 주었더라면 아이가 자라 이렇게 무용한 직업의 시인이 되지 않고 좀 더 실용적인 직업의 종사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농부는 벼이삭을 거두지만 시인이 탐하는 것은 실용의 벼이삭이 아니다. 시인은 벼이삭보다 벼잎의 그 무용한 연둣빛을 탐하는 것이며, 실제로 시인에게는, 또 시에게는 그것이 더 유용한 것이 되기도 한다. 


엄마도 모르는 엄마 얼굴
장영복  

엄마가 굴을 사 왔네
콩나물굴밥을 할까
생굴을 상에 올릴까
반반 나눌까, 고민하겠네
아빠는 익힌 굴을 좋아하고
누나는 생굴을 좋아하고
아빠는 콩나물굴밥을 좋아하고
누나는 생굴만 좋아하고  

나는 엄마가 고민하는 모습을 좋아하지
장보기 겁난다고 빈손으로 와선
김치랑 장아찌만 상에 올릴 때
그 얼굴이랑 너무 다른  

나는 싱싱한 생굴도 좋고
고들고들 익힌 굴도 좋아하지만
더 좋은 건
반찬 만드는 엄마 얼굴
밥상 그득 반찬 올리는 얼굴
직장에서 늦는 아빠가 모르는
학원에서 늦는 누나도 모르는
반찬 만드는 엄마도 모르는
엄마 얼굴  

―〈아동문학평론〉(2016년 겨울호)


“굴”을 ‘글’로 바꾸어 읽어 본다. 엄마가 시인이라면 아빠와 누나, ‘나’는 독자다. ‘굴’을 어떻게 요리하여 밥상에 올릴지 고민하는 엄마와 ‘글’을 어떻게 써서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전할지 고민하는 시인의 모습은 닮았다. “익힌 굴”과 “콩나물굴밥”을 좋아하는 아빠와 “생굴만” 좋아하는 누나가 취향이 강한 독자의 모습이라면, “싱싱한 생굴도” “고들고들 익힌 굴도” 좋아하는 “나”는 좀 더 유연한 독자를 닮았다. 싱싱한 생굴은 생그럽고, 익힌 굴은 고들고들 고소하다. 잘 차려 내기만 하면 다 맛있다. 서로 다르게 맛있을 뿐, 우열을 따질 수 없다. 글 또한 그렇다. 신선한 재료, 만드는 이의 정성, 더도 덜도 아닌 딱 맞춤함을 놓치지 않는 안목. 요리 프로그램에 수없이 등장하는, 언제 들어도 알 듯 모를 듯하지만 그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적당량’과 ‘적당히’는 시 쓰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적당한 때에, 적당량 집어넣고, 적당한 불에 적당 시간 끓이고 뜸 들이는 기술. 손맛(시인)은 손이 애쓴 끝에 낼 수 있는 맛이고, 입맛(독자)은 입이 애쓴 끝에 얻을 수 있는 맛이다. 거저 주어지는 것은 없다. 애쓴 끝에는 무엇이든 얻음이 있게 마련이다. 

시가 시대를 담아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음식은 시대적 표정을 대표하기도 한다. 

삼각 김밥
곽해룡  

얇은 비닐 벗겨 내면 뚝딱
밥 한 그릇 되는 삼각 김밥
볶은 김치 다진 양파 참치 마요네즈
적당히 버무려진 삼각 김밥  

이미 식어서 후 불지 않아도 되고
밥상 없이도 먹을 수 있는 삼각 김밥
젓가락 없이도 먹을 수 있고
국물 없이도 삼킬 수 있는 삼각 김밥  

뛰어가면서도 먹을 수 있는 삼각 김밥
내가 학원을 하나 더 다닐 수 있도록
시간을 아껴 주는 삼각 김밥
엄마가 마음 놓고 밤늦게까지
내 학원비를 벌 수 있게 해 주는 삼각 김밥  

불 꺼진 집을 떠올리다가 울컥
목이 메기도 하는 삼각, 고두밥  

―〈전봇대는 혼자다〉(장철문 외, 사계절 2015)  


이 시의 “적당히”는 ‘정도에 알맞게’가 아니라 ‘대충대충’ ‘얼렁뚱땅’의 뜻으로 쓰였다. 이미 식은 밥, 밥상도 젓가락도 국물도 필요치 않은 밥, “뛰어가면서도 먹을 수 있는” 밥은 그 자체로 정상적인 식사, 관계 맺기와 거리가 멀다. “내가 학원을 하나 더 다닐 수 있도록/ 시간을 아껴” 주고, “엄마가 마음 놓고 밤늦게까지/ 내 학원비를 벌 수 있게 해 주는 삼각 김밥”이란 말은, 이 시대의 일상이, 먹고삶이, 가장 따뜻하게 보호받아야 할 가족 관계가 자본의 냉혹한 기획 아래 낱낱이 해체되어, 저렴하고 단순하게 관리되고 있음을 폭로한다. ‘삼각 김밥’의 ‘삼각’은 정상적인 관계(원, 둥근 밥상, 둥근 그릇)가 하나둘 잘리고 떨어져나가 훼손된 끝에 남은, 최저한의 생존 도형이다. 

새벽 편의점
유강희  

컵라면 뚜껑 위에
두 손 얹고 잠시,
눈 감은 막일꾼  

―〈손바닥 동시〉(창비 2018) 


유강희의 ‘새벽 편의점’ 역시 이 시대의 상징인 편의점과 컵라면을 통해 고단한 서민 현실의 막막한 시간대를 포착해 보여 준다. 이 작품에 이르면, 새벽은 더는 희망의 시간이 아니다. 새벽은 우리 시에서 일찍부터 희망과 연계돼 온 이미지이자 상징이다. 그런데 시인은 “새벽”과 모순되는 “눈 감은”이란 말을 가져와 둘을 충돌시키고 결합한다. 밝아오는 오늘의 희망 없는 막막함, 눈을 뜬다고 해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 이 시대의 표정이다. 

방주현 시인은 2016년 〈동시마중〉에 ‘주전자’, ‘수저통 귓속말’ ‘모탕’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개성적인 각도와 방향, 시선의 깊이와 체온을 지닌 첫 동시집이 내년에 나온다. 등단작이자 제1회 동시마중 작품상 수상작이기도 한 ‘주전자’를 소개한다. 구수한 보리차 향을 솔솔 풍기며 “뿌― 뿌―” 숨 가쁘게 달려올 ‘주전자’의 계절이 간절하게 기다려지는 여름이다.   

주전자
방주현  

바다에 나가
고기를 한가득 싣고 올
꿈을 꾸던 쇠는,
주전자가 되어
보리차를 끓일 때마다
항구에 돌아오는
배가 된다

내가― 왔다―  

뿌― 뿌― 
뿌― 뿌―  

―〈동시마중〉(2016년 7·8월호) 


이안 시인, <동시마중> 편집위원 anin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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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시집 두 권 내고 나서 동시의 매력에 조금씩 빠져들었다. 20년 가까이 동시를 껴안고 사는 동안, 시 앞에 붙은 '동'이 사랑이란 걸 알게 되었다. 언제나 어린이=시인의 상태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며, 쓰고자 한다. 격월간 동시 전문지 <동시마중>(http://cafe.daum.net/iansi)을 만드는 편집자, 동시 전문 팟캐스트_이안의 동시 이야기(http://www.podbbang.com/ch/8204)를 진행하고, 찾는 곳 어디든 동시의 씨앗을 뿌리고 다니는 동시 전달자. 그리고 무엇보다 동시의 시대를 활짝 꽃피우고 싶은 사람이다. 1999년 등단하여 시집 <목마른 우물의 날들> <치워라, 꽃!>, 동시집 <고양이와 통한 날> <고양이의 탄생> <글자동물원>, 동시 평론집 <다 같이 돌자 동시 한 바퀴>를 냈다.
이메일 : anin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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