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아이를 가졌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른바 ‘기형아 검사’라고 불리는 쿼드 검사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다 20주에 단 한번 이뤄지는 초음파 검사를 했는데, 검사 결과가 조금 특이했다. 의료진은 초음파 상에서 아이의 한쪽 다리가 다른 쪽 다리에 비해 크게 나왔다며 정밀 초음파를 권했다. 하지만 나는 그마저도 하지 않기로 했다. 초음파 상의 이상 소견 외에 다른 문제는 전혀 없이, 40주의 임신 기간이 순조로이 흘러갔다. 하지만 출산 당일, 예정에 없던 수술 끝에 만난 아이는 울퉁불퉁한 다리와 커다란 발, 볼록 솟은 발등, 그리고 붉은 포도주빛 얼룩을 몸 곳곳에 머금은 채 내게 안겼다.

 

생후 몇 시간만에 찾은 아이의 첫 진단명은 ‘클리펠-트레노네이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 시시각각 발전하는 의학기술 탓인지, 덕인지, 이 진단명은 곧 CLOVES(Congenital, Lipomatous, Overgrowth, Vascular Malformations, Epidermal Nevi and Spinal/Skeletal Anomalies and/or Scoliosis)로, 그리고 다시 PROS(PIK3CA-Related Overgrowth Syndrome)로 바뀌었다. 그러나 아무리 이름이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는 건, 아이의 ‘못난’ 신체다. 조막만한 얼굴, 보드랍고 매끄러운 팔, 귀여운 올챙이배. 여느 아이처럼 그저 예쁘기만 하면 좋으련만, 거기까지다. 옆구리, 허리, 엉덩이, 허벅지를 물들인 얼룩은 자칫 학대의 흔적으로 오인될까 걱정될 만큼 선명하고, 그 얼룩 위로 불거져 나오는 푸른 정맥들은 어쩐지 위협적이다. 결정적으로, 아이의 오른쪽 다리는 왼쪽보다 부피가 2배 크고, 길이가 2cm 길며, 발등이 볼록 솟아 있고, 발바닥이 두껍다.

 

이렇게 ‘못난’ 다리지만, 아직까지는 다행히 별다른 기능손실이 없어 일상생활엔 전혀 지장이 없다. 하지만 아이는 어딜 가나 다른 아이들의 시선과 질문에 부딪히고, 그 때문에 상처 입는다. 아이의 다리를 가까이서 보겠다고 빙글빙글 주위를 맴도는 아이들, 그러다가도 이내 징그럽다는 듯 주춤거리며 도망치는 아이들, 그리고 호기심에 정돈되지 않은 질문을 던져대는 아이들 속에서 아이는 때로 화를 내고, 설명을 하려 애쓴다. ‘다리는 태어날 때부터 이랬고’ ‘상처는 수술을 해서 생긴 것이며’ ‘나는 괜찮다, 그러니 그렇게 쳐다보지 말라’고 말하는 아이를 엄마인 나는 그저 멀찍이서 지켜볼 뿐. 그렇게 만 다섯 살의 아이는 이 여름, 자기만의 방식으로 생애 최초의 ‘변론’을 써내려가는 중이다. 때로 상처 받아 몇날 며칠 집에서만 놀며 다른 아이들과 만나지 않으려 하다가도, 이내 다시 털고 일어나 놀이터로, 공원으로 다른 아이들을 만나 다시 부딪혀보려고 길을 나서는 아이. 이 아이를 보며 함께 상처 받고, 함께 애쓰는 나의 여름도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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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은, 그런 나의 뜨거운 여름날에 한 줄기 위로로 다가왔다. ‘잘못된’ 신체를 가진 아이를 낳은 어미로서 늘 저 깊이 간직해 온 어떤 의문과 생각들을 하나 하나 끄집어올려 곱씹을 수 있게 했다. 아이를 낳은 후, 많은 이들이 내게 물었다.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임신 중에 알고 있었느냐’고. 나는 그 질문을 마주할 때마다 늘 속으로 되묻곤 했다. ‘임신 중에 알았느냐’는 질문은 결국, 임신 중에 알았다면 당연히 낳지 않았어야 했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건 아닐까. 솔직히 나조차도 그런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다. 원인 모를 불편감에 잠을 못 이루는 아이를 끌어안고 울던 날, 수술 후 예상치 못한 출혈과 감염 증상에 새벽길을 달려 응급실에 들어가던 날, 이 어렵고 험한 희소질환 환자로서의 삶을 아이에게 주게 된 것이 미안했고,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지난 5년간 이 아이와 살아온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아프지 않은 ‘평범한’ 날엔 이 아이가 얼마나 즐겁고 충만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를. 그렇기에 이 아이의 삶이 가엾거나 불행하기만 한 것이 아님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때로 아프고, 때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상처 받지만, 그건 어떤 질환 없이 평범한 몸으로 살아온 나에게도 종종 생기는 일이지 않은가. 아이의 몸은 ‘잘못된’ 형태로 태어났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아이의 삶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을까. 그러니 아이에게 ‘잘못된’ 삶을 주었다는 죄책감은, 가지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나의 아이는 결국 이 다리, 이 병이 아니었다면 내게 오지 않았을, 단 하나뿐인 존재다. 병으로 인해 힘들어질 것을 생각해 낳지 않는 편이 나았으리라고 생각하기엔, 이 단 하나뿐인 존재로서의 아이가 가진 고유성이 지금의 나에겐 너무나 귀하고 소중하다. 시간이 흘러 아이가 지금보다 더 어려운 시기를 겪게 되면 달라질 지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의 나는 임신 초기 쿼드 검사도, 정밀 검사도 하지 않고 아이를 그저 품어 낳은 데 대해 후회는 없다. 그럼에도 내가 매번 갈등하는 지점이 하나 있는데, 아이의 ‘치료’와 관련된 일이 바로 그것이다. 다양한 치료법과 관리법 중에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선택하지 않을지의 기로에 설 때마다 나는 고민에 빠진다. 늘 ‘아이가 조금이라도 덜 불편하게 살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치료를 선택한다고 믿지만, 때로는 정말 그런가, 나는 혹시 이 아이를 조금이라도 더 ‘고쳐보려고’ 이 선택을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한편으론 간담이 서늘해진다. 이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면서, 나는 왜 이 아이가 가진 병을 되돌릴 가능성이 있는 약물의 개발 소식에 기뻐하는지, 그렇게 기뻐하는 마음 이면엔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다른 어떤 마음이 있는건 아닌지 곱씹곤 한다.

 

그런 갈등의 순간을 맞이할 때마다, 힘이 들지만 끝내 내가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게 하나 있다. 바로 이 다섯 살 꼬맹이의 생각과 마음을 들여다보며, 아이의 의사를 묻고, 함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나의 이 노력이 아이와 나, 그리고 우리와 수많은 타인들 사이에 ‘존엄의 순환’ 고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이 아이가 자신의 ‘못난 다리’를 벌충하기 위해 어떤 특별한 매력을 가꾸려고 애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어디에 살든, 누구와 함께 있든, 무엇을 하든, 사람들과 어울려 인격적으로 존중 받으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때로는 자신의 그 ‘못난 다리’를 미워하더라도, 그런 날은 또 그런 날대로 그렇게 넘겨가며 살아가면 좋겠다. 그런 내 아이가 살아갈 곳은 모두가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사랑받고, 존중받는 세상이라면 좋겠다. 어떤 ‘자격’을 갖추어야만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세상이 아니라, 어떤 기준, 어떤 자격 조건 없이도 누구나 그 자체로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세상이라면 좋겠다. 그리하여 그 어떤 삶도 ‘실격’당하지 않는 세상이라면 좋겠다. 그래서 이 책,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모두에게 권한다. 장애가 있든 없든, 우리는 모두 살면서 한번쯤은 내가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나의 삶이 ‘자격’이 있는 삶인지 묻곤 하니까.

 

가게 계산대에서 일하는 뇌성마비 점원을 처음 보았던 날, 아이는 발음이 불분명한 점원을 향해 ‘왜 말을 그렇게 해요?’ 하고 큰 소리로 서슴없이 물었다. 하지만 그를 두 번째 보았던 날, 아이는 잠자코 내 곁에 서서 그의 불분명한 말을 이해하고 대화를 나누는 나를 지켜보았다. ‘못난’ 다리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와 5년을 살면서, 나는 이전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의미없는’ 소리를 반복해서 내는 자폐 청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던 5년 전의 나는 이제, 수영장에서 즐겁게 소리 내며 노는 자폐 아동을 보며 같이 웃고, 궁금해 하는 나의 아이에게 ‘사람마다 마음과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른 거’라고 설명한다. “조금 더 긴 시간을 들여 상대방의 ‘초상화’를 그려보려는 미적•정치적 실천.” 나는 그것을 이제 조금씩 시작하고 있다. 비록 ‘잘못된 몸’을 낳은 엄마이지만, 그래서 누군가에겐 엄마로서 ‘실격’된 존재로 비칠지 모르지만, 바로 그로 인해 나는 비로소 타인을 조금 더 섬세하게 응시하고자 애쓰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은, 그런 실천에 동참하고자 하는 이들을 서로 만나게 할 것이다. 그렇게 만나고, 이어진 우리가 만들어낼 세상은 분명, “인간의 존엄성이 모든 이념의 중심에 오는 세상”에 성큼 더 가까워질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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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 김원영,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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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슬
'활동가-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막연했던 그 꿈에 한발 더 가까워진 것은 운명처럼 태어난 나의 아이 덕분이다. 아이와 함께 태어난 희소질환 클리펠-트리나니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의 약자 KT(케이티)를 필명으로 삼아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 라는 제목의 연재글을 썼다. 새로운 연재 <아이와 함께 차린 글 밥상>은 아이책, 어른책을 번갈아 읽으며 아이와 우리 가족을 둘러싼 세계를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내 아이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함께 잘 키워내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글과 삶을 꾸려내고 싶다.
이메일 : alyse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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