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교육

한 오백년 푹 자고 났더니 강남이 왜 이래?

권귀순 2018. 07. 27
조회수 291 추천수 0
잠도 잘 자고 놀기 잘 하는
잠귀신 노리의 강남 ‘출타기’
잠 못자는 사람 다 모여라
00503952_20180726.JPG
한밤중에 강남귀신
김지연 글·그림/모래알·1만3000원

역시 이 기록적인 더위에는 귀신이 반갑다. 빌딩 숲의 열기가 이글대는 서울 강남에 귀신이 나타났다니, 기왕 온 거 오싹한 냉기라도 뿜어주면 고맙겠다. 그나저나,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며 재미난 이야기보따리를 꿰차고 다니는 귀신이 어인 일로 불빛 현란한 강남까지 납셨을까?

<한밤중에 강남귀신>은 밤이 깊어도 잠을 잘 수 없는 인간들을 위해 귀신들이 해결사로 나선다는 재미난 발상의 그림책이다. 학습 과잉의 나라, 일 중독의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버거운 일상을 해학적인 귀신 이야기로 풀어냈다. 열대야를 식혀줄 으스스한 귀신을 기대했다면 실망이겠다. 강남귀신은 “한번 놀면 밤이 새도록 놀고 한번 자면 한 오백년 자는 잠귀신”이다. 잠도 잘 자고 놀기도 잘하는, 요즘 어린이들이 잃어버린 미덕을 갖춘 귀신이다. 잠을 잘 자서인지 성격도 곱고 때깔도 좋다.

잠귀신 노리가 한숨 푹 자고 일어나 강남쪽에 와보니, 500년 전 배추밭이 빌딩 숲으로 변했다. 그저 한숨 잤을 뿐인데, 조선 산골짝에서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로 건너온 잠귀신 노리에게 펼쳐지는 건 이상한 일투성이다. 가장 놀라운 건 사람들이 밤에 잠을 안 잔다는 것. 사람들은 낮에 놀고 귀신들은 밤에 놀아야 하는데, “사람들이 밤에 잠을 안 자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00503951_20180726.JPG

강남이 어떤 곳인가? 영어, 수학은 물론 대입으로 귀결되는 모든 종류의 학원과 경쟁사회의 정점을 찍는 최첨단 사무실이 즐비한 곳. 아이들이나 직장인들이나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 모습은 지쳐 쓰러지기 직전이다. 퀭한 눈을 하고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학원 ‘뺑뺑이’를 도는 아이들의 모습이 흐느적거린다.

같이 놀 친구를 찾아 헤매던 노리가 발견한 자미도 인간인지 귀신인지 모를 몰골이다. 학원 숙제하느라 자정이 되도록 잠을 못 잤는지 걸으면서 졸고 있다. “얘, 나랑 밤새 놀래?” 잠귀신 노리의 솔깃한 제안을 따라 강을 건너 귀신의 세계로 들어간 자미를 각시귀신, 몽달귀신, 아기귀신, 억울귀신이 반겨준다.

실컷 놀지 못하고 푹 단잠도 자지 못하는 자미를 귀신들은 진심으로 걱정한다. “인간들은 일도 공부도 너무 많이 한다”면서 자미가 밤에는 잠을 잘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한다. 지은이는 이 대목에서 사람들을 보듬고 공감할 줄 아는 귀신들 또한 미완성의 삶을 마감한 약자란 사실을 깨닫게 한다.

책은 귀신은 판화로 표현하고 강남의 현실은 수채화로 그려 전통미와 현대미를 조화시켰다. 한국적 정서가 깃든 판화작업을 그림책에 이식해온 김지연 작가는 “에지가 강한 판화로 귀신의 센 이미지를 살리고 회화로 자장가의 따스함을 살리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5살 이상.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그림 모래알 제공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권귀순 한겨레신문사
일찌감치 결혼했으나, 아이 없이 지낸지 13년. ‘룰루나 행성’에서 꽃을 키우며 지내던 앙큼군은 우주 폭풍을 만나 어느날 지구별로 떨어졌다. 아이가 없는 집을 둘러보다 우리집으로 왔다. 어딜 가나 엄마들한테 ‘언니’라는 호칭으로 통하는 ‘늙은 엄마’이지만, 앙큼군은 “엄마가 우리 엄마여서 다행이야”를 달고 사는 여섯 살 소년으로 자랐다. 곰팅맘은 현재 한겨레 편집 기자이며, 책과 지성 섹션에 어린이청소년 책을 소개하는 기사도 쓰고 있다.
이메일 : gskwon@hani.co.kr      
블로그 : http://plug.hani.co.kr/ghkwon

최신글




  • 행운 눈앞에 있잖아행운 눈앞에 있잖아

    권귀순 | 2018. 08. 10

     행운 전달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 글·그림, 김경연 옮김/풀빛·1만2000원<난 커서 바다표범이 될 거야>의 독일 그림책 작가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의 신작 그림책 <행운 전달자>가 나왔다. 인간으로 변신했다 바다표범 가죽을 잃어버리...

  • 마음이 아프지 않나요?마음이 아프지 않나요?

    베이비트리 | 2018. 08. 10

    [책과 생각] 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이상하게 파란 여름케이트 디카밀로 지음, 김경미 옮김/비룡소(2016)가끔 현실이 더 비현실 같은 순간이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까 싶은 불행, 믿었던 사람의 믿을 수 없는 행동, 그러나 이것...

  • 별과 별 사이에서 ‘안녕’을 묻는 마음별과 별 사이에서 ‘안녕’을 묻는 마음

    베이비트리 | 2018. 08. 10

    안녕달 작가의 새 그림책버려진 강아지와 소시지 할아버지홀로 있는 존재들의 조용한 안부 안녕-안녕달 그림책안녕달 지음/창비·2만2000원안녕? 안녕! 안녕… 반갑고 고맙고 슬픈 말. 안녕.어느 별인지, 무슨 사연인지 알 수 없지만 이곳에선 찻잔, 크레...

  • [7월 27일 어린이·청소년 새책] 굿 나이트 스토리즈 포 레벨 걸스 외[7월 27일 어린이·청소년 새책] 굿 나이트 스토리즈 포 레벨 걸스 외

    베이비트리 | 2018. 07. 27

     굿 나이트 스토리즈 포 레벨 걸스-세상에 맞서는 100명의 여자 이야기 세상에 맞서 싸운 100명의 여성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 뉴질랜드의 비밀 첩보원 낸시 웨이크, 브라질의 파도타기 선수 마야 가베이라, 중국의 관현악단 지휘자 장셴...

  • 미래에 대비하는 통계라는 무기미래에 대비하는 통계라는 무기

    베이비트리 | 2018. 07. 27

    통계랑 내 인생이 무슨 상관이라고-청소년을 위한 통계 이야기김영진 글, 송진욱 그림/책숲·1만3000원사람들이 가장 알고 싶어하는 것은 미래다. 미래를 안다면 다가올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유리한 조건을 먼저 확보할 수 있다. 그래서 옛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