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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50대 여성들이 모이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갱년기

얼마전에도 그 나이 또래 여성들이 모인 곳에서 누군가 내게 질문을 했다.
"영희 씨는 갱년기 같은 거 모르죠?"
내 대답은 이랬다.
"저요?  저는 평생이 갱년기 같은데요??"

좋게 말하면 사색적이고
있는 그대로 말하면, 나는 뭐든 너무 많이, 깊이 생각한다.
그래서 좋을 때도 있고, 탈일 때는 더 많다.
과거, 현재, 미래를 다 골고루 생각하고 고민하며 또 준비한다.
힘들게 생각한다기 보다, 오히려 그런 걸 즐기는 쪽에 가까운 걸 보면
그렇게 사는 게 내 방식인 것 같다.

그렇다 보니, 몸이 특별히 아픈 데가 없는 걸 제외하면
사는 게 허무하고 모든 게 무의미한 기분에 늘 둘러싸여 있다.
나이가 들고 나니, 그런 기분이 점점 더해 지는데
작년부터 다니기 시작한 직장에서 힘든 일을 겪고 난 뒤부턴
세상과 사람에 대한 신뢰감이 더 떨어져 갱년기와 다름없는 시기를 살게 되었다.
아이들과 남편이 조금만 서운하게 해도, 속이 상하고
사소한 일에도 짜증부터 앞서고
세상 온 천지가 싱그러움으로 가득한 6월인데도
소담스럽게 핀 꽃들을 보면, 금세 눈가가 붉어지고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내가 왜 이러지?'

나만 이러면 다행인데,
우리집엔 나같은 사람이 또 한 사람 있다는 게 문제.
엄마가 40대 중반을 넘어서면,
그 엄마의 아이는 사춘기를 지나고 있거나 지난 시기일 경우가 많다.
우리집도 그래서, 딸아이가 중3이다.
인간이 이렇게 자기밖에 모르고 까칠해 질 수도 있나, 싶은
그런 시기를 살고 있는 아이와 일상을 보내는 일은
매일매일이 살얼음 위를 걷는 것과도 같다.

엄마가 정서적으로 안정된 때라면 그럭저럭 버틸텐데
문제는 내가 가장 힘들 때, 아이도 가장 민감한 사춘기를 겪게 된 것이다.

베이비트리의 오랜 독자분이라면
해마다 6월이면,
신순화 님 글에는 앵두 이야기가
나의 글에는 수국 이야기가 등장한다는 걸 기억하실 것이다.
그렇잖아도 이 글을 쓰기 전에 순화님께서 올리신 앵두이야기를 재밌게 읽었다.

사춘기의 초절정기를 보내고 있는 우리집 딸도
이번 6월에 열여섯 살 생일을 맞았고
아기 때부터 이맘때 항상 찍어왔던 수국 사진도 찍었다.
그런데 올해는 생일이 벌써 지났건만 아직 수국을 배경으로 찍은
딸 사진이 아직 없다.
꽃 사진만 넘치게 찍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해마다 수국 앞에서 포즈를 취해주던 딸은
이제 꽃이나 나무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순화 님의 이번 앵두 글에는 이런 글이 있었는데,

'새콤한 작은 열매는
이제 열여섯 사내아이의 관심 저 밖으로 밀려나 있다'

나는 이 문장을

'소담스럽게 핀 수국 꽃은
이제 열여섯 여자아이의 관심 저 밖으로 밀려나 있다'
로 그대로 옮겨 쓸 수 있을 것 같다.

딸은 사춘기, 엄마는 갱년기
이 조합의 시기는 언제쯤 끝이 날까.
아침이고 밤이고, 시도때도 없이 눈물바람인 이 엄마에 비해
딸아이는 까칠하다가도 틈만 나면 콧노래를 부른다.
그런 유연함과 여유가 나는 너무 부럽다.

심각한 갱년기를 겪고 있다는 50대 직장 선배가 얼마전 그랬다.
"갱년기랑 잘 사귀고 있는 중이야."
나도 그러고 싶다.
우리 딸도 나도,
사춘기와도 갱년기와도 잘 사귄 뒤,
인생의 다음 단계로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음 좋겠다.
그런데, 딸아! 짜증 좀 그만 내면 안 되겠니!
** 여러분, 다들 잘 지내시나요??
육아의 낭만적인 시절은 추억의 책장으로 넘어간 지 오래라,
요즘은 즐거운 이야기가 별로 없네요;;^^
그런데, 힘든 시기가 다 나쁜 것만은 아니어서
사춘기 아이와의 힘든 시간을 버텨내려고,
20대 시절 즐겨했던 수영을 다시 시작했답니다.
근데 이 운동이 몸과 마음의 근육을 아주 단단하게 해 주었습니다.
혹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자기가 좋아하는
운동에 집중해 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어요.
잘 견디는 방법 몇 가지를 준비하는 것,
사춘기 아이 육아를 위해 꼭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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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현재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어린이식당 운동’활동가로 일하며, 계간 <창비어린이>에 일본통신원으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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