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교육

손바닥에 쓰인 시, 간질간질 동시 놀이

이안 2018. 06. 08
조회수 988 추천수 0
동시.jpg »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금붕어
유강희 

단풍잎 한 마리
단풍잎 두 마리
어, 가을이 움직인다 

―〈손바닥 동시〉(창비 2018)

놀이에는 규칙이 있다. 규칙을 익히고 공유한 상태에서 놀이는 시작된다. 어떤 놀이는 규칙의 공유만으로 성립되기도 한다. 숨바꼭질, 얼음땡, 경도놀이 등은 준비물이 따로 필요하지 않다. 좀비놀이는 술래의 눈을 가릴 수건 한 장이면 충분하고, 제기차기는 제기 하나, 공기놀이는 공깃돌 다섯 개면 흥이 다할 때까지 놀 수 있다. 참가자들은 규칙과 함께 놀이에 필요한 기술을 익힘으로써 재미를 더욱 끌어올리고 싶어 한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 하면 일본의 하이쿠를 떠올린다. 하이쿠는 5·7·5자, 모두 17자로 된 일본의 정형시다. 우리에게도 고유의 정형시인 시조가 있지만 지금에 와서는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가 되었다. 하이쿠를 읽을 때마다 우리에게도 이런 짧은 시 양식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심 부러웠다. 십여년 전부터 이를 고민해온 시인이 있다. 유강희 시인은 중국의 절구, 일본의 하이쿠, 우리의 시조 등을 참고하여 짧은 시 양식을 현대에 맞게, 우리 호흡에 맞게 만들어 내고자 했다. 하이쿠가 일본의 전통 시가인 단가에서 발전해 왔듯이, 유강희 시인은 손바닥 동시의 실마리를 우리의 시조에서 찾았다.

시조는 3장 6구 45자 내외를 기본 형식으로 한다. 유강희 시인은 시조의 초장-중장-종장 장별 배행에서 3행 배치를 가져오고 각 장 4음보에서 앞 2음보만을 들어낸, 익숙하지만 새로운 시 양식을 고안해 냈다. 각 행이 2음보로 된 석 줄짜리 시인데, 시인은 이를 ‘손바닥 동시’로 이름 붙였다. 끊어 읽기의 단위인 음보는 보통 3~4자로 구성된다. 시조의 자수가 엄격하지 않은 건 시조가 음수율보다 음보율에 가깝게 운용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손바닥 동시의 규칙은 복잡하지 않다. ① 각각 2음보로 구성된 3행 구조를 기본으로 한다.(3행 구성이 아닌 것은 손바닥 동시가 아니다.) ② 1~3행은 각각 기본 자수에서 2~3자를 넘지 않아야 하는 대신, ③ 글자 수를 줄이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④ 제목을 적절히 활용한다(하이쿠에는 제목이 없다). 제목을 뺀 본문의 분량만 보자면 시조의 절반 정도, 하이쿠보다 조금 길거나 짧은 시가 된다. 이 외에 주(注), 반점·느낌표·물음표 등 문장부호의 효과적 사용, 시조의 감탄사적 투어(“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의 “어즈버” 같은 것. “어즈버”는 감탄사 ‘아’의 옛말)를 적절히 활용할 것 등이 형식을 구성하는 데 참고할 사항이다. 규칙이 정해졌으니 동시 놀이를 시작해 보자. 종이가 없을 땐 손바닥에 써도 된다. 종이가 있어도 가끔은 손바닥에 적어 보자. 동시를 쥔 손이 얼마나 간지럽고 사랑스러울까. 
 

유강희 시인의 손바닥 동시100편으로 묶여 이 달에 출판사 창비에서 출간된다. 가정과 학교에서 재미있는 동시 놀이, 동시 공부의 텍스트로 삼을 만한 동시집이다. 여기에 실린 100편으로 100가지 시 얘기를 할 수 있다. 자수가 가장 짧은 예에 속하는 두 편을 보자.

 

차가 지나갔다

 

웅덩이가

날개를

편다

 

낙숫물

 

울지 않는다

안 운다

!

 

행의 전개에 따라 자수를 줄여나갔다. ‘차가 지나갔다3행 끝에서 제목 끝 글자까지를 선으로 이으면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올라가는 포물선이 만들어진다. 웅덩이는 3행의 아래 놓여 있고 그곳을 차바퀴가 밟고 지나간다. 촤르르 웅덩이 물이 튀어 오른다. 제목과 각 행의 자수가 6-4-3-2로 줄어들며 이런 절묘한 모양을 만들어냈다. 제목과 본문 간 접속의 밀도가 매우 높게 설정된 예다. ‘낙숫물도 마찬가지다. 행의 전개에 따라 자수가 5-3-1로 줄어든다. 단위 시간 당 줄어들며 떨어지는 빗방울의 개수를 기입해 놓은 것 같다. “그치는 마지막 빗방울을 느낌표(“!”)로 시각화했다.

 

개구리 눈

 

연못에 숨어

물 바깥 보려고

조금씩 밀어 올린 걸까

 

천둥

 

나뭇잎들

깜짝깜짝 놀라서

어서 푸르러지라고

 

개구리 눈이 큰 것을 연못에 숨어/ 물 바깥 보려고/ 조금씩 밀어 올린 걸까궁금해 하는 표현에는 개구쟁이 아이의 천진한 동심이 담겨 있다. 조금씩 커지는 개구리 눈을 나타내기 위해 자수가 5-6-9로 늘어났다. ‘천둥도 마찬가지다. 조금씩 푸르러지는 나뭇잎의 성장을 이야기하는 것이기에 자수가 자연스럽게 증가되는 식으로 행이 배치되었다. 내용이 어떠한가에 따라 형식이 긴밀히 연동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천둥과 나뭇잎의 관계식도 눈길을 끈다. 성장을 채근하고 깨우치는 죽비소리처럼 표현되었다.

 

 

뾰뾰뾰 뾰뾰뾰뾰

뾰뾰뾰 뾰뾰뾰뾰

뾰뾰뾰, 뾰뾰뾰뾰뾰

 

화음(和音)

 

여름비가 촐촐촐

비둘기가 꾹꾹꾹

여우팥이 캥캥캥

 

국수 가족

 

호로로호로록

후룩후루루룩

뾰록뾰로로뾱,

 

은 글자 하나의 모양(, )으로 깨어나고 자라는 봄의 생명력을 왕성하고도 역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뾰뾰뾰를 소리로 읽으면 봄의 동물성이, 모양으로 보면 식물성이 느껴진다. ‘의 글자 형태는 몸에 싹()이 돋은 모양이다. 제목 의 자음 이 본문에서는 으로, 모음 로 늘어났다. 3행의 반점은 잠깐의 쉬어감이다. 잠깐 쉬고 났더니 봄의 속도가 더 빨라졌다. 반점 뒤에 이어지는 1-2행보다 하나 더 늘어난 게 그 증거다.

화음1-3행에서는 모두 가 감각된다. 1행의 여름’, 2행의 둘기, 그런데 3행에는 왜 비가 나오지 않았을까. 여우팥은 주로 남부지방에 많이 나며 여름에 꽃이 피는 식물이다. 여우는 과도 결합하지만 와도 결합한다. 3행의 여우팥은 자연스레 여우를 떠올리게 한다. “여름비라는 자연현상이 동물(“비둘기”), 식물(“여우팥”)과 더불어 조화를 이룬 소리를 시인은 화음으로 들은 것이겠다.

국수 가족에서는 한자리에 둘러앉아 국수를 먹는 가족의 모습이 떠오른다. 사람들 말소리, 국수가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국수 면발이 감촉되고, 시각과 청각과 미각과 후각이 자극된다. 1-3행의 국숫발의 변주는 3행의 ,”에 이르러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완성된다.

 

공기놀이는 공깃돌 다섯 개면 충분하다. 기본 규칙과 재주를 익히면 얼마든지 재미나게 놀 수 있다. 손바닥 동시는 각각 2음보로 짜인 322자 내외의 간략하고 소박한 시다. 재미와 감각만 담아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세계의 깊이와 모순, 가난한 이웃의 현실까지 폭넓게 담아낼 수 있다. 자연과 인생과 성스러움의 깊이 있는 표현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작은 손바닥 안에서 인생의 길흉화복을 읽어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거위벌레에겐/ 도토리 한 알도/ 위대한 왕국,”(작은 왕국)인 것처럼, 동시 놀이의 참가자들에겐 손바닥 동시가 동시 놀이의 위대한 왕국일 수 있다. 새로운 동시 놀이의 형식이 탄생했다. 자전거 타기(“길을 감았다/ 풀기만 하면 돼/ 중요한 건 방향이야!”)처럼, 중요한 건 동시 놀이의 방향이다. 세 편 더 소개한다.

 

새벽 편의점

 

컵라면 뚜껑 위에

두 손 얹고 잠시,

눈 감은 막일꾼

 

 

개 삽니다 대신

사람 삽니다, 하면

얼마나 무서울까

 

탱자나무

 

서로 껴안고

있으면서 어떻게

찌르지 않을 수 있지?

 

이안 시인, <동시마중> 편집위원 aninun@hanmail.net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이안
시집 두 권 내고 나서 동시의 매력에 조금씩 빠져들었다. 20년 가까이 동시를 껴안고 사는 동안, 시 앞에 붙은 '동'이 사랑이란 걸 알게 되었다. 언제나 어린이=시인의 상태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며, 쓰고자 한다. 격월간 동시 전문지 <동시마중>(http://cafe.daum.net/iansi)을 만드는 편집자, 동시 전문 팟캐스트_이안의 동시 이야기(http://www.podbbang.com/ch/8204)를 진행하고, 찾는 곳 어디든 동시의 씨앗을 뿌리고 다니는 동시 전달자. 그리고 무엇보다 동시의 시대를 활짝 꽃피우고 싶은 사람이다. 1999년 등단하여 시집 <목마른 우물의 날들> <치워라, 꽃!>, 동시집 <고양이와 통한 날> <고양이의 탄생> <글자동물원>, 동시 평론집 <다 같이 돌자 동시 한 바퀴>를 냈다.
이메일 : aninun@hanmail.net      

최신글




  • 특별한 날 특별 음식, 맛이 춤춘다특별한 날 특별 음식, 맛이 춤춘다

    이안 | 2018. 08. 08

    짜장 요일방주현 오늘 급식은 짜장면이다! 호로록, 한 입 먹으면콧잔등에맛있는 짜장 점 일곱 개 호로록 호로록, 두 입 먹으면입가에맛있는 짜장 수염 두 가닥 마주앉은 친구가웃는 소리도짜장짜장 하는 날―〈동시마중〉(2017년 5...

  • 보나 마나 그렇다는 그대로, 보니 그랬다보나 마나 그렇다는 그대로, 보니 그랬다

    이안 | 2018. 07. 04

    감자꽃권태응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감자꽃〉(창비 1995)정말일까? 자주 감자를 심으면 자주 꽃이 피고, 자주 꽃 핀 밑을 파면 자주 감자가 나올까. 당장이라도 ...

  • 놀라운 발견·낯선 질문 이끄는 은유놀이놀라운 발견·낯선 질문 이끄는 은유놀이

    이안 | 2018. 05. 09

    내일 이사할 집이장근 달력은 아파트야2016아파트 7동 14호오늘 이사한 집이야어제 집은 정말 최악이었어수학 시험을 봤고30점을 맞았고엄마는 귀신보다 무서운 얼굴로말없이 나를 쳐다봤어하루 한 번 이사를 하지 않았다면난 그 집에서살아서 나오...

  • 갖지 않고 갖는, 갖고도 갖지 않는갖지 않고 갖는, 갖고도 갖지 않는

    이안 | 2018. 04. 11

    모두 내 꽃김미혜 옆집 꽃이지만모두 내 꽃. 꽃은보는 사람의 것. 꽃 보러 가야지 생각하면내 마음 가득 꽃이 환하지. 하지만 가꾸지 않았으니까잠깐&...

  • 질투나게 감동적인 초등 3학년 시질투나게 감동적인 초등 3학년 시

    이안 | 2018. 03. 14

    청개구리백석현 청개구리가 나무에 앉아서 운다.내가 큰 돌로 나무를 때리니뒷다리 두 개를 펴고 발발 떨었다.얼마나 아파서 저럴까?나는 죄 될까 봐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