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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유치원 퇴짜…식품 알레르기 아이 어쩌나

양선아 2018. 06. 05
조회수 2595 추천수 0
어린이집·유치원 퇴짜
당국 엉성한 매뉴얼만
식품 알레르기 아이 어쩌나 

512 (3).jpg » 식품 알레르기로 병원을 찾은 환아를 이수영 아주대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진료하고 있는 모습이다. 식품 알레르기는 과거 증상, 혈액 검사, 피부 반응 검사, 식품 유발 검사 등을 통해 진단한다. 아주대병원 제공.

“6살 아이(만 5살)가 밀 알레르기가 있고 알레르기성 쇼크 위험이 있다고, 유치원에서 가정 보육을 권합니다. 비슷한 처지지만 어떤 아이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즐겁게 다니기도 합니다. 어떤 교사나 기관을 만나느냐에 따라 교육을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되는 것은 문제 아닌가요? 식품 알레르기가 있는 우리 아이가 죄인인가요?”

두드러기·설사 등 가벼운 반응에서 
저혈압·호흡곤란 등 중증까지  

증상 보이는 아이 갈수록 늘어
예방은 관련 식품 차단뿐 

민수(가명)의 어머니 현아무개씨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민수는 밀가루가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두드러기가 나고 기도가 부어서 마른 기침과 함께 호흡 곤란 증상 등 아나필락시스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민수처럼 식품 알레르기 증세를 보이는 아이들이 전 세계적으로 늘고 있다. 국내에서도 점점 느는 추세다. 알레르기는 외부 물질이 우리 몸에 들어올 때 해롭지 않은데도 위험하다고 판단해 몸이 과도한 면역 반응을 보이는 것을 말한다. 식품 알레르기는 계란, 우유, 밀, 땅콩, 견과류, 생선, 조개류, 키위 등 식품에 주로 반응을 보인다.

올해 1월 국내 학회지인 ‘알레르기천식호흡기질환(AARD)’에 게재된 ‘국내 소아 식품 알레르기의 역학’ 연구를 보면, 여러 조사에서 한국 어린이들의 식품 알레르기 유병률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5년부터 2012년까지의 서울 지역 초등학생의 식품 알레르기 유병률을 보면, 1995년 4.6%, 2000년 5.2%, 2005년 6.4%, 2008년 5.5%, 2012년 6.6%로 증가 추세다. 

쉽게 가정 보육 권하고 발 빼

식품 알레르기의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정경욱 아주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유전적 요인, 서구화한 식습관, 미세먼지 증가 등 환경 오염, 항생제 남용, 비타민 D 부족 등이 원인으로 꼽히지만 아직까지는 확실한 기전이 밝혀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식품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는 두드러기, 발진, 홍조, 설사 등 가벼운 반응에서 저혈압이나 호흡곤란 등 심한 반응까지 보일 수 있다. 민수가 앓고 있는 아나필락시스는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에 해당된다.

아나필락시스 증상이 있으면, 원인 물질에 노출된 뒤 짧은 시간 동안에 호흡곤란, 어지럼증, 저혈압과 같은 중증 증상들이 나타나며 쇼크가 발생할 수 있다. 국내 아나플락시스 환자도 늘고 있는 추세다. 더불어민주당 김민기 의원실이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요청해 받은 자료를 보면, 식품 알레르기로 인한 아나필락식스 0~19살 진료자 수는 2012년 153명에서 2016년 389명으로 늘었다. 특히 이 가운데 0~9살 진료자 수는 2012년 81명에서 2016년 278명으로 3.4배 늘었다.

이런 아이들에게 확실한 치료이자 예방 방법은 원인 식품을 철저하게 제한하는 것이다. 식품 알레르기는 전반적으로 나이가 들면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만약 아나필락시스 환자가 반응을 보이면 응급 대처가 중요하다. 기관지를 확장해서 숨을 잘 쉴 수 있도록 해주는 에피네프린 약물을 투약한 뒤 응급실로 옮겨야 한다.

식품 알레르기 및 아나필락시스 환자가 늘고 있는 만큼 이런 아이들을 위한 적절한 사회적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유아에게도 이런 증상이 많이 나타나고 유아들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으니 관련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이런 아이들이 입소하면 당국에 보고하고, 적절한 보조 인력 배치 등 지원해주는 시스템이 필요해 보이는데, 현재는 구체적인 매뉴얼이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런 아이들을 사회적으로 함께 돌보기보다 민수의 경우처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가정 보육을 권하는 경우가 있어 부모들의 한숨 소리가 깊어져가고 있다.

 급식사진.jpg » 경남의 한 초등학교에서 이 학교 소속 학생들이 급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어린이집이나 병설 유치원 등에서는 급식을 할 때 알레르기 유발 물질들을 표시하고 알리도록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입소 상담 거절 안 받는 요령’ 팁도

민수도 밀 알레르기와 아나필락시스라는 진단이 유치원 퇴소와 재입학 불가 판정에 영향을 미쳤다. 민수는 지난해 12월 초 전라남도 화순에 있는 한 공립 초등학교 내 병설 유치원에 입소했다. 어머니 현씨가 유치원에 전화로 민수의 알레르기에 대해 이야기면서 입소 문의를 했고 유치원쪽으로부터 가능하다는 회신을 받았다. 당시 담임 교사는 반찬은 대체식을 보내주고 간식은 유치원에서 구입해 제공하겠다고 했다. 민수는 3개월 간 유치원 생활을 즐겁게 했다.

급식이나 응급상황 관련 지침 있지만
당국, 입소 관련한 구체 방침 없어 

인력 등 지원 요청에 묵묵부답
원장 등 개별적 판단에만 맡겨 

유아기관-당국 보고-지원 체계 필요 

그런데 새 학기가 되어 담임 선생님이 바뀌고 아나필락시스라는 진단명이 원장(교장)에게 인지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양아무개 원장은 “단순 밀 알레르기라고만 생각했는데 3월에 아나필락시스라는 것을 알았다. 응급 상황 발생시 유아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전문가에게 컨설팅을 받고 군청에 보조 인력 지원을 요청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시도했다. 그런데 그 어디에서도 인력 지원 답변을 못 받았다. 유치원이 이 아이의 안전을 책임질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이런 논란 속에서 현씨는 민수의 유치원 퇴소 결정 뒤 유치원쪽에 재입학 요구를 했다. 현씨는 “현행법 상 응급 조치를 취해야 하는 초등학교 보건 교사가 존재하는 병설 유치원마저도 우리 아이가 입소할 수 없다면, 이 아이는 어디에서 교육을 받아야 하느냐”고 하소연했다.


경기도 오산시에 사는 어아무개(33)씨 역시 우유 알레르기로 인한 아나필락시스를 앓는 만 3살 차영(가명)이를 키우고 있다. 어씨 역시 차영이를 현재 다니는 유치원에 입소시키기 전까지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각각 한 번씩 입소 거부를 경험했다. 어씨는 “아이를 불편해하거나 무조건 가정에서 돌볼 것을 권하는 어린이집·유치원 원장이 있는가 하면, 현재 다니는 유치원처럼 영양 교사와 담임 교사, 부모가 협력해 아이가 유치원에 잘 다니기도 한다”며 “유아 기관 관계자들의 인식 개선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이 만든 인터넷 카페에서는 심지어 ‘유치원 상담 거절 안 받는 요령’이라는 팁이 올라올 정도다. 어씨는 “일본과 같은 급식 선진국에서는 학교에서 알레르기 학생을 위한 점심을 따로 제공하는 등 사회적 시스템이 잘 마련돼 있다”며 “국가나 사회가 아이를 함께 키우겠다고 말로만 하지 말고, 건강 취약층 어린이를 위한 시스템을 제대로 갖췄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식품 알레르기가 있고 아나필락시스가 있는 아이는 기관 생활이 불가능하고 사고 예방을 위해서 가정 보육을 해야하는 것일까? 대한 소아알레르기 호흡기 학회의 연구이사이자 아토피피부염 식품알레르기 연구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안강모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식품알레르기 환자들을 대상으로 해당 식품의 섭취 혹은 접촉을 철저히 제한하는 관리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적절한 보육 시스템이라는 것이 반드시 가정 보육 혹은 공공 기관을 통한 보육 중 선택해야 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일반 가정 이나 공공 기관에서 적절한 식품 관리가 가능하도록 제대로 된 교육과정이나 관리 비용 등을 우리 사회에서 인정하고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것이 필요한 일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 부서와 대책 논의 중”

식품 알레르기나 아나필락시스 환자를 위한 국내 대책이 전무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4년부터 포장 식품에 대한 알레르기 식품 표시제를 법제화됐다. 또 학교 급식에서도 알레르기 유발 식품이나 식품첨가물에 대해 표시하도록 하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해 11월 학교보건법을 개정해 학교 내 보건교사가 아나필락시스 쇼크 또는 제1형 당뇨로 인한 저혈당 쇼크로 인해 생명이 위급한 학생에게 투약 행위 등 응급 처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교장이 질병이나 장애로 인해 특별히 관리·보호가 필요한 학생을 위해 보조 인력을 둘 수 있도록 했다.

개정된 학교보건법과 시행규칙이 지난달 29일부터 시행됐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여전히 초등학교 소속 보건 교사가 유치원 원아까지 맡느냐 여부를 두고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보건 교사가 당연히 병설 유치원의 응급 환자까지 담당해야 한다고 보는 쪽과, 미세먼지, 식수 관리 등 갈수록 보건 교사의 업무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병설 유치원의 경우 별도 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민수가 다녔던 유치원 원장 및 초등학교 교장도 “초등학교 보건교사가 유치원 원아까지 책임지라고 할 수 없다. 현재 업무 부담이 높다”는 것이 재입학 불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권지영 교육부 유아교육정책 과장은 이에 대해 “초등학교 교장은 유치원 원장을 겸임하고 있기 때문에 병설 유치원까지도 초등학교 보건교사가 응급 처치를 하는 것이 법적으로도 맞다”고 하면서도“제도적 기반은 있지만 (보건 교사에 대한) ‘수당’ 등이 뒷받침되지 않아서 현장에서 애로 사항이 많아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인사혁신처 등 관계 부서와 대책을 논의중이며,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전남교육청의 한 장학사는 “교육부나 복지부와 같은 하나의 부 소관으로만 할 것이 아니라, 각 지자체와 행정안전부, 교육부, 여가부, 복지부 등 관련 부처가 협업해서 이런 질환을 앓는 아이들을 적절하게 돌볼 수 있는 최적의 시스템을 마련하면 좋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양선아 기자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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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한겨레신문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현재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쓰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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