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cc.jpg » 아이에게 어떤 말을 자주 사용하시나요? 아이의 말을 귀기울여듣나요? 내가 자주 사용하는 말, 내 아이의 말에 대한 나의 반응을 기록해보면 어떨까요? 픽사베이 사진제공.

 

* 베이비트리 생생육아 코너는 필자가 아이를 키우면서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재로 생생하게 쓰는 육아일기입니다.  베이비트리(http://babytree.hani.co.kr)에는 기자, 파워블로거 등 다양한 이들의 다채로운 육아기가 연재됩니다.


어버이날인 8일 저녁, 딸이 조심스럽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담임 선생님께서 내주신 ‘효도 미션’을 기록한 종이였다. 미션은 부모님을 비밀스럽게 칭찬을 하고, 자신이 칭찬한 말을 기록하고 그때 부모님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기록하도록 했다. 그리고 어버이날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사인을 받아오는 것까지가 숙제였다. 딸은 5월2일부터 7일까지 날마다 엄마와 아빠를 칭찬했고, 그때 엄마와 아빠의 반응도 함께 적었다.  

 
평소 나는 ‘소통’‘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아이와 눈맞춤과 스킨십을 많이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어쩌다 부모 특강을 할 기회가 생기면 “눈맞춤, 스킨십, 귀 기울여 듣기 이 삼종 세트만 잘해도 육아는 성공한다”고 말해왔다.
 
그런 나였기에 나는 아이들 말을 경청한다고 자부했다. 일부러 입 밖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나처럼 아이들과 잘 통하는 엄마가 없을 거야’라는 생각이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내가 아는 것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엄마라고 자부심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내 생각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던가! 아이가 내민 종이를 보면서 내 민 낯을 보는 것 같아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5월2일 “아빠는 요리를 참 잘해” “그럼, 아빠가 한 건 다 맛있어. 안 그래?”

5월3일 “엄만 정말 친절해”대답이 없었다. 못들었나보다.

5월4일 “어떻게 몇 시간 동안 일만 해? 정말 대단하다”(아빠) “아빠도 일 안 하고 싶다”
5월5일 “엄마는 어떻게 재밌는 책을 잘 골라?”“책을 많이 읽으니까 잘 알지. 그리고 너희들을 잘 아니까 너희 취향에 맞는 책을 잘 아는 거야. 너도 책 많이 읽어.”
5월6일 “아빠는 민규랑도 잘 논다. 시시하지 않아?”“너는 몸놀이가 얼마나 흥미진진한데…. 옆에 있다가 괜히 울지 말고 들어가. ”
5월7일 “엄마는 글을 참 잘 써.”“책을 많이 봐서 그래. 키다리 아저씨에 나오는 주디의 편지를 친구들한테 쓰기도 했었어.”


486.jpg » 아이 학교에서 어버이날 전에 내준 `효도 미션'

아이의 기록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일단, 평소 아이의 말을 잘 듣고 반응도 잘한다고 생각했던 나는 아이의 말에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은 날도 있었다. 기록을 보고도 아이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언제 이런 칭찬을 했지? 엄마는 전혀 기억나지 않아~”라고 말하자, 딸은 “밤에 자기 전에 했을 거야. 아마 엄마가 민규랑 이야기하고 있었을걸. 엄마 그거 알아? 민규랑 얘기할 땐 내 얘기 잘 안 듣는 거? 그리고 엄마는 기본적으로 너무 바빠. 엄마는 칭찬해주고 싶어도, 칭찬해 줄 기회를 안 줘~ 엄마, 제발 조금만 바쁘면 안 돼? 우리랑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해줘!”
 
뜨끔했다. 딸 이야기를 듣고 나니 요즘 내가 그랬던 것 같다. 평소 딸은 이야기도 잘하고, 대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자신의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재밌는 얘기도 잘 만들어낸다. 그래서 내가 퇴근을 하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종알종알 종달새처럼 지저귄다. 반면 아들은 말이 없는 편이다.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또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등등 얘기하는 것이 없다. 두 아이 성격이 워낙 달라서,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인 딸 이야기만 듣다 보면, 아들과는 자연스럽게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들에게 좀 더 이야기를 들으려고 애썼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딸이 이야기를 해도 잘 듣지 않는 부작용이 발생했나 보다. 앞으로는 아들뿐만 아니라 딸의 이야기에도 더 귀를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   
 
게다가 이 ‘미션’을 통해 재발견한 것은 남편에 대한 재발견이다.  평소 나는 남편보다는 내가 훨씬 아이들에게 친절하고 다정하다고 ‘착각’했다. 남편이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인 것은 분명하지만, 화를 낼 때 불같이 화내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나는 아이들에게 화를 덜 내는 편이고, 훨씬 온정적인 편이다. 


특히 남편은 일상생활에서 ‘원칙’을 중시하는 편이다. 숙제하기, 정리하기, 제시간에 잠자리에 눕기 등과 같이 일상생활에서 규칙적이고 리듬감 있는 생활을 매우 중시하며, 자기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이러한 원칙에는 나 역시 동의한다. 그러나 우리 삶이 꼭 그렇게 예상했던 대로만 흘러가던가. 놀다 보면 숙제하는 시간이 늦어질 수도 있고, 너무 피곤하면 정리도 안 하고 침실로 들어갈 수도 있다. 잠자는 시간을 정해놨지만, 퇴근한 엄마와 이야기하고 놀다 보면 늦게 잠들 수도 있다. 나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우리가 정한 규칙을 약간 어기더라도 관대한 편이라면, 남편은 절대 그렇지 않다. 최대한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아이들에게도 규칙을 잘 지키기를 요구한다. 아들이 놀고 거실을 어지럽혔다면, 학원 가는 시간에 늦더라도 정리를 하고 가도록 한다. 금요일이나 토요일이 아니라면, 주중에는 정해진 시간에 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가끔 아이들 눈에서 눈물 쏙 빼놓게 혼내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퇴근한 뒤면 나는 남편이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는 광경을 종종 목격한다. 주로 정리 안 한 것에 대해 아이들을 혼내거나, 제시간에 잠자리에 들지 않는 것을 두고 남편의 목소리가 커지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면 규칙과 원칙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알지만,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반발심이 올라온다.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원리, 원칙만 너무 중시하는 것 아냐? 소리는 왜 치나? 좋게 타이르면 되지 않나?’
 
내가 보는 남편-아이의 관계가 전부라고 생각한 것이 큰 오산이었다. 내가 볼 수 없는 남편-아이의 관계가 의외로 더 많을 수 있음을 이번 아이 글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아이가 나에 대해 칭찬한 내용들을 보면 “친절하다” “엄마는 책을 잘 고른다” “엄마는 글을 잘 쓴다”이다. 주로 딸은 엄마의 특성을 칭찬했다. 반면 아빠의 내용을 보면 “요리를 잘 해준다” “몸놀이를 잘 해준다” “일을 집중해서 잘한다”이다. 요리나 몸놀이처럼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남편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를 해주었다. 내가 없는 사이 남편과 아이들 관계에서 훨씬 더 즐겁고 재밌고 유쾌한 일들이 많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더 분발해야 할 사람은 남편보다 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다. 
 
아이가 부모를 칭찬할 때 어떤 방식으로 칭찬하는지도 알게 됐다. “엄마는 참 친절해” “엄마는 글을 참 잘 써” “엄마는 어떻게 그렇게 책을 잘 골라?”라고 아이는 말한다. 그럴 때 내가 한 번도 아이에게 “고마워”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아이가 칭찬해준다는 사실을 알고, 적절한 타이밍에 “고마워”라는 말을 사용한다면 어떨까.


30년간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해온 민병직씨가 쓴 <내 아이가 듣고 싶은 엄마의 말>이라는 책에서 한 아이가 쓴 일기에 소개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아이는 2학년인데 엄마의 부정적인 말에 지쳐 그 어린 나이에 가출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나는 엄마가 무슨 말을 할 때 기분이 좋냐면 "사랑해, 고마워, 좋아해” 그럴 때 나의 기분은 마음이 화사해진다. 나는 엄마가 무슨 말씀을 하실 때 기분이 싫으냐면, “필요 없어”“조용히 해!”이다. 그때의 나의 기분은 마음이 무거워지고, 절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고, 집을 나가고 싶은 느낌이 많이 들었다. 
 
부모인 우리는 아이에게 “사랑해”“고마워”“좋아해”라는 말을 자주 하고 있을까? 흔한 말 같지만, 막상 가족 사이에 이런 말들을 하면서 표현하는 것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내가 아이에게 자주 하는 말들이 어떤 말들인지 한번 기록해보면 어떨까? 또 아이가 하는 말과 내가 어떻게 반응했는지 기록해보면 어떨까?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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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현재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쓰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이메일 : anmadang@hani.co.kr       트위터 : anmadang21      
블로그 : http://plug.hani.co.kr/anma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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