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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놀 자유는 필수, 어른들 태도 먼저 바꿔야”

양선아 2018. 05. 09
조회수 2615 추천수 0
[놀이 전문가 3인이 말하는 ‘놀 권리’] 

편해문.jpg » 4일 서울 동덕여자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2018 놀이정책 국제포럼’에 참석한 일본 아마노 히데아키(왼쪽) 모험놀이터만들기 총괄이사와 영국 팀 길(가운데) 놀이 컨설턴트, 한국 편해문 놀이 활동가가 ‘아이들의 놀 권리’에 대한 이야기를 끝낸 뒤 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아이들의 놀 권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지 벌써 3~4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이데올로기 수준입니다. 이제는 실행할 때입니다. 포럼에서 나온 이야기를 토대로 실질적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놀이의 가치를 알리고 아이의 놀 권리 보장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온 편해문 놀이 활동가의 말이다.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일, 서울 동덕여자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2018 놀이정책 국제포럼’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놀 권리, 지역에 뿌리내리기’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포럼에서 영국 팀 길 놀이 컨설턴트, 일본 아마노 히데아키 모험놀이터만들기 총괄이사와 함께 기조 발제자로 참석했다. 이날 포럼은 유니세프한국위원회와 한국 최초 아동친화도시인 서울 성북구청이 놀이 정책 어젠다 발굴을 위해 만든 자리였다. 포럼에는 국내외 놀이 전문가는 물론 전국 곳곳에서 활동하는 놀이 활동가, 아동 인권에 관심 있는 대학생과 학부모 등 600여명이 참석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한겨레> 육아 웹진 ‘베이비트리’는 포럼 직후 세 전문가와 1시간 동안 ‘한국 어린이의 놀 권리 확보 방안’에 대한 단독 대담을 진행했다. 발제 및 대담 내용 중 우리 사회에 영감을 줄 만한 내용을 추려 정리했다.
 
“심하게 말하면 인체실험”

“최근 수십년 동안 전 세계 어린이의 자유가 점점 축소되고 있습니다. 한 국제 연구에서 같은 고향에서 산 4세대 8살 어린이의 이동 반경을 조사했어요. 증조할아버지가 이 고향에서 6마일 정도를 돌아다녔다면, 할아버지 세대는 1마일 정도 이동했어요. 엄마 세대는 0.5마일, 아들 세대는 거의 집 근처만 돌아다닐 수 있어요. 어른들은 갈수록 아이들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많은 아이가 감금된 채 키워지고 있어요. 아이들의 세계에서 모험이 사라지고 있고, 자유를 맛보고 책임감을 키울 기회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영국 놀이 컨설턴트 팀 길
“갈수록 아이 통제 심해 사실상 감금
모험과 책임감 키울 기회 사라져
아동 친화적인 인프라 구축 더 중요”

팀 길이 슬라이드로 4세대에 걸쳐 축소된 아이들의 이동 반경을 지도에 표시해 보여주었다. 참석자 중 일부는 “아~”라는 짧은 탄성을 질렀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지 여부가 ‘놀 권리’나 ‘자유’와 연결된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하다가 인식의 전환이 일어난 셈이다.

팀 길은 영국의 옥스퍼드대학과 런던대학에서 철학과 심리학을 전공한 뒤 아동의 놀 권리 옹호를 위해 수십년 동안 노력해왔다. 독립 연구가인 그는 전 세계 곳곳에 있는 ‘아동친화적인 도시 계획’을 조사하고 연구했으며, 현재는 영국 정부의 놀이 정책인 ‘플레이 잉글랜드’의 감독이다. 길은 “놀이 자체보다는 아이들의 ‘일상에서의 자유’를 좀 더 이야기해야 하고, 개별 놀이터 개선보다는 아동 친화적인 인프라 구축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이들의 놀 권리’에서 말하는 ‘놀이’는 아이가 스스로 자유를 맛보고 탐험하고 모험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하기 때문이다.

일본 모험놀이터 총괄이사 아마노
“아이는 놀지 않으면 마음이 죽어
스스로 생각하고 배려하지 못해
아이들은 어떻게 자랄지 알고 있어”

이번 포럼에서는 ‘놀이’보다는 ‘자유’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오갔다. 일본 모험놀이터 전문가 아마노 히데아키는 아이들의 놀 시간 부족과 자유의 축소가 만들어낼 암울한 미래에 대해 경고했다.

“아이들은 놀지 않으면 죽어요. 마음이 죽어요. 아이들이 놀면서 ‘아~ 너무 재밌어~’라는 마음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부모의 눈에서 벗어나 그렇게 놀기 힘들어요. 아이들에게 자유를 빼앗는 것은 심하게 말하면 ‘인체실험’이에요. 독재라든지 사상 통일과 다르긴 하지만, 아이들이 놀지 못하면 그러한 상태가 됩니다. 지금처럼 아이들이 놀지 못하면, 스스로 생각을 하지 못하는 아이와 남을 배려하지 않는 아이가 늘어날 겁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존중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럴 이유를 못 느끼는 것이죠.”

“잘 놀아본 아이가 잘 감당해”

편해문씨 역시 ‘회복탄력성’ 측면에서 놀이와 자유의 가치를 강조했다. 편씨는 “아이들이 논다는 것은 자유롭게 자신의 의지대로 해보는 것을 말합니다. 자유를 보장해주는 것이지요. 충분히 놀면서 자유 속에서 이런저런 위험을 만나본 아이들은 회복탄력성도 커요. 살다가 어려운 일을 만나도, 잘 놀아본 아이들은 충분히 이겨내고 감당할 수 있는 것이죠.”

이렇게 아이들의 삶에 있어 중요한 놀 권리와 자유를 어떻게 지켜줄 수 있을까? 길은 ‘놀이 피라미드’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피라미드의 각 꼭짓점에 놀 시간과 놀 공간, 함께할 친구, 어른들의 태도를 놓았다. 이 피라미드를 떠올리며, 한국 사회에 어떤 요소가 부족한지 생각해보라고 말했다.

한국 놀이 활동가 편해문씨
“자유롭게 자신의 의지대로 해보고
위험 만나봐야 회복탄력성 커
이제는 실행해 실제 변화 일어나야”

길은 현대사회에서는 무엇보다도 자동차 친화적 도시가 아닌 아동 친화적 인프라 구축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자동차나 건물이 늘고 아이가 놀 공간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곳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설문조사를 해보면, 아이들은 안전하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곳, 다양하고 자유로운 활동을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는 곳, 녹지가 풍부한 곳을 좋아한다. 반대로 차량이 많거나 쓰레기가 굴러다니는 곳은 싫어한다.
512.jpg » 전남 순천시 연향2지구 호반3공원에서 있는 기적의 놀이터 1호 '엉뚱발뚱'에서 어린이 들이 뛰어놀고 있는 모습이다. 도심 속에 녹지를 조성하고, 자유롭게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이 놀이터는 아이들의 의견을 반영한 곳이다. 순천 기적의 놀이터가 만들어진 뒤, 이 지역 아이들은 더 자주 놀 수 있게 됐다. 순천/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길은 아이들의 의견을 도시 설계에 반영해 아동 친화적 인프라를 구축한 다양한 사례를 소개했다. 대표적인 곳이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이다. 그는 “지난 12년간 로테르담은 네덜란드에서 아이를 키우는 데 가장 최악인 곳으로 꼽혔다”며 “사람들이 자꾸 도시를 빠져나가면서 세금 부족 문제를 겪게 되자, 로테르담은 가족 우호적인 도시로 변신하기로 결단했다”고 말했다. 로테르담은 차량을 줄이기 위해 도로를 재설계했다. 도심에 광장을 만들었다. 텅 비어 있거나 주차 공간으로 쓰던 학교 운동장에 꽃과 나무를 심고 놀이적 요소를 배치했다. 저녁이나 주말에는 운동장을 개방해 사람들이 놀도록 했다. 산책로도 개선했다. 표지판을 약간 바꿔서 보물찾기 하는 기분을 주었다. 상상의 동물을 찾는 것처럼 했다. 자전거길도 개선했다. 길은 “이런 개선과 발전이 일어난 뒤 로테르담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며 “아이들을 위한 기반 시설이 만들어낸 변화”라고 말했다.

‘노는 거리’ 100개국으로 번져

이외에도 벨기에의 도시 겐트에서도 사람들이 자동차에서 벗어나 걷거나 저전거를 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게 노력을 기울인 결과, 지역 교통량을 60%나 줄였다.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에서는 어린이들이 학교에 안전하고 편하게 갈 수 있도록 꽤 많은 돈을 투자해 스마트폰 앱을 개발했다. 이 앱을 통해 아이들이 등굣길에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보고했다. 이 앱을 관리하는 팀은 교통을 개선할 수 있는 예산을 관리했는데, 아이들의 의견을 받아 동네와 학교를 잇는 새로운 길을 만들고 등굣길의 나무를 다듬기도 했다. 영국 런던 역시 수백만파운드를 들여 공원과 거리를 만드는 등 아동 친화 인프라 구축에 투자했다. 또 영국에는 ‘플레이 스트리트’(노는 거리)가 있는데, 엄마 두 명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 일주일에 몇번 정해진 시간에 교통을 통제하고 부모와 아이가 나와서 ‘노는 거리’를 만들었다. 작은 아이디어가 전 세계로 퍼져 현재는 ‘플레이 스트리트’가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등 100개국에서 진행된다.

세 전문가는 ‘놀이 피라미드’의 네 요소 가운데 ‘어른들의 태도’를 가장 우선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아마노는 대담을 마무리하며 이렇게 말했다.

“놀이의 힘이 무엇인지, 어른들이 하는 교육에는 어떤 한계가 있는지 어른들이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언론도 더 효과적으로 이에 대해 알려야 합니다. 어른들은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만 생각해요. 그런데 아이들은 어떻게 자랄지 다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나는 이렇게 크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해요. 아이들을 방해하지 말고, 아이들이 말할 기회를 주고 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글·사진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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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한겨레신문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현재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쓰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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