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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그냥’은 ‘그냥’이 아녜요”

양선아 2018. 04. 25
조회수 2260 추천수 0

스스로 알아서 놀다 보면

발견과 배움의 기쁨 쑥쑥


[놀이 중심 어린이집 가보니]

 

어린이집1.jpg » 23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반포퍼스티지 하늘어린이집’의 7살반 아이들이 아침 인사를 마치고 자유 놀이를 하고 있다. 이 어린이집에서는 교사가 아이들을 이끄는 수업이 아닌, 놀이 중심 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그날의 ‘어린이 선생님’이 나서

하루 일과 짠다, 놀고 먹고 놀고…

 

장기, 글쓰기, 그림책 만들기, 색칠

코딩 로봇, 보드게임, 체스…

 

교사는 아이들 사이 오가며 지켜보고

툭 물어보고 답하고 같이 놀기도 한다


지난해 말 교육부가 ‘유아교육 혁신 방안’을 발표하면서 강조한 것 중 하나는 놀이 중심의 교육과정 혁신이다. 현재 만 3~5살 교육과정에 해당하는 누리과정이 교과 중심적 내용이 많고, 초등학교 1학년이 배우는 것보다도 웃도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유아교육 전문가들은 유아 시기에 지나치게 구조화된 지식을 배우면 아이들의 자발적 탐구심이나 호기심, 자율성이 훼손되므로, 놀이 중심 교과과정으로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놀이 중심의 교과과정은 어떤 모습일까? 정부의 놀이 중심 교육과정 개편 연구는 현재 진행 중이다. 교육부 유아교육 담당 관계자는 “연구진을 구성하는 중이며, 올해 연구를 통해 내년에 개편안을 마련해 고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놀이 중심 교육과정의 구체적 모습을 알기 위해 전문가로부터 관련 기관을 추천받아 방문했다.


주제나 스케줄에 맞춘 수업 없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23일 오전, 서울시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반포퍼스티지 하늘어린이집’을 찾았다. 이곳은 한국어린이교육문화비평학회에서 올해 ‘유아와 자유놀이 중심 교육과정 운영사례 조명’이라는 연구세미나를 위해 방문한 곳 중 하나다. 이 어린이집은 ‘만들어가는 교육과정’, ‘발현적 교육과정’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8년째 운영해오고 있다. 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겸임교수이기도 한 민행난 원장은 “어린이 스스로 놀이를 이끌 수 있다는 믿음과 놀이 속에 배움이 함축돼 있다는 철학을 갖고 교사와 아이가 협력해 교육과정을 만들어간다”고 소개했다. 기자는 이날 7살반과 6살반을 오가며 오전 9시부터 점심 먹기 전까지 진행되는 교실 놀이 과정을 관찰했다. 아이 둘을 일반 어린이집에 보낸 경험이 있는 기자는 기존 어린이집 운영 방식과 어떻게 다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교사가 아이를 이끄는 수업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상당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은 그날 아이들이 배워야 하는 주제를 선정하고 교사가 활동지를 제공하며 아이들을 이끈다. 그런데 이 어린이집에서는 아이들이 오전 간식을 먹고 난 뒤 ‘어린이 선생님’이 그날의 대략적인 일과를 짠다. 이날 ‘어린이 선생님’은 문유영 어린이. 유영이는 칠판에 ‘1. 오전 간식 2. 아침 인사 3. 교실 놀이 4. 점심 5. 특별 활동 6. 오후 간식’이라고 적었다. 단순한 일과다. 먹고 놀고 또 먹고 노는 일정이다. 유영이는 아침 인사를 한 뒤 친구들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친구 중 한 명이 “오늘은 장기(놀이)대회 안 해?” 하고 물었다. 유영이는 “오늘은 장기대회 없습니다. 내일 하세요”라고 답했다. 


점심 직전 모두에게 딱 하나 질문


20분 정도 아침 인사가 진행된 뒤 자유롭게 교실 놀이가 시작됐다. 아이들은 교실 안에서 자기가 원하는 놀이를 했다. 장기를 두는 아이, 글을 쓰는 아이, 그림책을 만드는 아이, 색칠놀이를 하는 아이, 오조봇이라는 색깔을 인식하는 코딩 로봇을 갖고 노는 아이, 보드게임이나 체스를 두는 아이 등 다양했다. 반 아이들 모두 스케줄에 맞춰 배워야 하는 것은 없었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주변 놀이터 등지로 바깥 놀이를 나갔을 것이다.

어린이집2.jpg » 공동육아어린이집에서는 자연과 친화적인 생태교육을 중시하고 자발적 놀이를 중시한다. 사진은 공동육아어린이집인 꿈꾸는어린이집 아이들이 북한산 둘레길에서 바깥놀이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다. 진영균씨 제공

아이들이 노는 동안 교사는 무엇을 할까? 두 명의 정교사는 교실에 상주하면서 27명의 아이를 관찰한다. 3~4명 삼삼오오 그룹 지어 노는 아이들 사이를 오가며 적절하게 상호작용을 한다. 예를 들면, 이하린 어린이가 책을 다 만들어 선생님께 보여주니, 옆에 있던 친구에게 읽어보라고 권한다. 이지석 어린이는 친구가 만든 책을 소리 내서 읽었다. 하린이는 수줍은 표정으로 지켜본다. 선생님은 지석이에게 질문한다. “지석아, 하린이가 만든 책 어때? 너의 느낌을 말해줘.” 지석이는 “좋긴 한데, 그림이 조금 더 들어가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교사는 또 어떤 아이와는 장기를 둔다. 코딩 로봇을 가지고 놀면서 의문점을 갖는 어린이에게는 답을 해주기도 한다. 어떤 아이는 1시간 반 동안 장기 놀이만 하는가 하면, 어떤 아이는 장기를 두다 책을 만드는 등 여러 놀이를 하기도 했다. 점심시간 직전 교사는 반 친구 모두를 앉혀놓고 이런 질문을 던졌다. “오늘의 새로운 발견이 있었어요?” 선생님의 질문에 한 아이가 “오조봇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했어요. 빨녹빨이요!”라고 말했다. “빨녹빨은 어떻게 갔나요?” “옆으로 오른쪽으로 갔어요.” “흰색 길? 아니면 검정색 길?” “흰색 길이요.” “그럼 빨녹빨의 규칙은 오른쪽 흰색 길로 가기네요. 맞나요?” “네!”


공부는 안 시킨다고 퇴원도 했지만

아이 변화 보며 부모도 서서히 바뀌어

 

규칙이나 놀이법 몰라도 그냥 놀며

시행착오 겪고 원리 깨달아 ‘아하!’

 

“아이는 인적 자본 개발 대상 아니라

배움 창출할 수 있는 역량 갖춘 주체”


코딩 로봇이나 장기 놀이, 보드게임을 제공해도 기본적인 사항만 알려주고 교사가 나서서 규칙이나 놀이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아이들이 스스로 알아가는 기쁨, 발견의 기쁨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김보은 담임교사는 “코딩 로봇의 규칙을 알기 위해 이미 아이들은 한 달 이상의 시행착오를 거쳤다”며 “시행착오를 충분히 한 뒤 진정한 놀이로 들어갔고, 이제 규칙을 하나씩 하나씩 발견해 가고 있다”고 전했다.


기존과 다른 방식의 수업에 부모들의 반대나 우려가 없었는지 민 원장에게 물었다. 개념이나 원리, 지식을 빠르게 알려주는 교육에 익숙한 부모 세대에게 자유 놀이는 ‘그냥 논다’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어서다.


“놀이를 공부의 반대 개념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여전히 많지요. 그런 분들은 아이들의 자유 놀이 시간을 무가치하다고 생각하죠. 그러나 놀이는 계획적이지 않아야 하고, 목적성을 띠면 안 돼요. 어떤 아빠는 ‘초등학생도 선생님을 하겠다’며 아이를 다른 기관으로 옮기기도 했지요. 그런데 어린이집을 개원한 뒤 1~2년이 지나면서 아이들의 변화를 보고 부모들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아이가 행복하게 변하고 주도성이 생기고, 무엇을 선택하든 자기 나름대로 설명하는 태도가 생겼기 때문이지요. 뭔가가 다르구나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된 거죠.”


교사 역시 놀이 중심 교과과정을 운영하면서, 매일 아이들을 계속 새롭게 발견한다. 신원희 교사는 아이들이 흔히 말하는 “그냥이요”라는 말에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신 교사 반에서는 지난해 갑자기 팽이 놀이가 등장했다. 신 교사는 아이들에게 “뭐가 재미있어?”라고 물었지만, 아이들은 “그냥요”, “돌리는 거요”라고만 말했다. 아이의 유능성을 믿는 교사였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이기고 지는 게 저렇게 좋을까? 하루종일 하는 팽이 놀이가 재밌나? 생각하고 싶지 않은가?’라는 물음이 이어졌다.


교사들도 날마다 아이들 새로 발견


그래도 신 교사는 계속 아이들을 관찰했다. 그 결과, ‘그냥’이라고 말한 아이들이 오래 도는 팽이, 센 팽이를 만들기 위해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거듭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끝에서 돌려볼까?”, “야! 내 팽이 떨어져도 아직 살아 있어!”, “나무 팽이는 떨어지면 바로 속도가 약해지는데, 반듯하게 떨어지면 바닥에도 잘 돌아”라고 말하며 아이들이 팽이의 원리를 자신들의 언어로 말하고 있었다.


나정 동국대 불교아동보육학과 교수는 놀이 중심 교과과정의 의의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스웨덴이나 독일 등 교육 선진국에서는 이미 놀이 중심의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아이들을 자기 스스로 배움을 창출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닌 주체이자 생명으로서 바라보지 않고, 국가의 인적 자본으로 개발 대상으로 바라봤지요. 개발도상국에서 갖던 유아에 대한 관점에서 이제 우리 사회도 선진국으로 가는 과도기에 있고, 그런 과정 속에서 이러한 놀이 중심 유아교육 과정을 현장에서 적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봅니다.” 


글·사진 양선아 기자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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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한겨레신문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현재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쓰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이메일 : anmadang@hani.co.kr       트위터 : anmadang21       페이스북 : anma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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