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슬이와 나는 지난 주말 어린이집 졸업반 아이들, 아빠들과 함께 1박2일 캠프에 다녀왔다. 아이들 13명과 아빠들 7명이 함께했다. TV 프로그램 제목을 따서 붙인 소위 “아빠 어디 가”이다. 지난 해 7월에 첫 캠핑을 하고 이번이 두 번째.
윤슬이는 제주에서 유일한 공동육아 어린이집 ‘보물섬’에 다녔다. 서울에서 제주로 이주하고 나서 바로 보물섬 어린이집에 들어갔다. 3년을 보물섬에서 생활했다. 5세 왕개굴방, 6세 남생이방, 7세 청어방. 반이 아니라 방이다. 보육기관이기보다는 집에 가까운 곳,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지향이 드러난다.
매달 아마(공동육아어린이집에서 아빠, 엄마를 통칭해 부르는 말)들이 어린이집에 가서 선생님과 아이들 한 달 생활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어린이집 운영에 대해 의견을 모은다. 다른 어린이집과 다르게 아마들이 어린이집 운영에 참가한다. 아이들 생활도 철저하게 나들이에 맞춰져 있다. 근처 숲으로, 하천으로 나들이를 가는 게 하루 일상이다.
윤슬이는 서울에서도 성미산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다녔다. 공동육아 일상이 나들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보니, 성미산이 없으면 공동육아도 이뤄질 수 없었다. 그 조그만 산 하나가 공동육아를 이뤄냈고, 공동체를 만들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제주라고 저절로 공동체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공동체는 유지되기도 하고, 해체되기도 한다. 보물섬어린이집은 윤슬이게도, 우리 부부에게도 보물 같은 존재다. 아내는 윤슬이 어린이집 졸업식에 자기가 엉엉 울었다. 졸업식 때 울 것 같다고 말한 윤슬이는 정작 담담했다.
그런 윤슬이도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얼마되지 않아 창 밖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훌쩍거렸다. 보물섬 친구들이 보고 싶다고 했다. 보물섬 아마들이 아이들 그런 마음을 헤아리고 모임을 갖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보물섬에 다닐 때처럼 매달 모이지는 못하지만, 3~4개월에 한 번씩 아이들과 아마들이 모두 모였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신나게 놀았고, 아마들은 술을 곁들이면서 저녁을 먹었다. 그러다 아빠들끼리 의기투합해서 지난 해 7월 “아빠 어디 가”를 하기로 뜻을 모았다. 아이들은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당연히 엄마들은 아빠들의 작당에 대환영이었다.
작년 7월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나는 토요일 오후에 일이 있어 윤슬이를 먼저 보냈다. 아이들은 몇 개월 만에 만났지만, 전혀 서먹한 것 없이 즐겁게 놀았다. 몇 년 동안 어린이집에서 서로 뒹굴고 놀았기 때문이겠지. 아이들 모두 9살. 이제 1박 2일 여행을 가도 스스로 하는 게 많아져서 아빠들도 편하다. 윤슬이는 며칠 후 "아빠도 자유시간을 가져서 좋았지"라고 말했다.
저녁으로 바베큐를 해주고 나서는 아빠 한 명이 돌아가면서 아이들과 놀았다. 나머지 아빠들은 술 한잔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사실 아빠들끼리 가끔 저녁에 모여서 술자리를 갖기도 했다. 술자리가 잦으면 엄마들의 불만과 원성이 높아지지만, “아빠 어디 가”는 엄마에게 환영 받는 프로그램이다. 다음 날에는 근처 오름을 올랐다. 윤슬이가 자주 간 오름이라 초입부터 "엥 또 이 오름이야"라고 따졌다. 뭐, 어쩌겠니. 숙소랑 가까운 오름이 여긴데.
아빠들끼리 이야기하면서 아이들이 20살이 되기 전까지는 이 모임을 계속하자고 도원결의했다. 지금은 아이들이 어려서 아빠들을 따라 오지만, 중학생 정도가 되면 “아빠 어디 가” 프로그램을 계속 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지만, 그 때 되면 “아빠 어디 간?(‘갔어?’의 제주말)”하자면서 우스개 소리를 했다. 7월 중순에 다시 “아빠 어디 가”를 약속하고, 1박2일 일정을 마쳤다. 아이들에게도, 아빠들에게도 즐거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