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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이는 지난 겨울 아이를 잃었다.
열 세살, 환하고 이쁜 사내아이였다. 아무것도 손 쓸 수 없이 갑작스런 사고였다.
그렇게 세 아이중 가운데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
추운 겨울날 어린 영혼을 보내는 장례식을 치르며 그이와 그이의 아이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많이 울었다.
나도 그랬다.
내 아이를 잃은 것 같아서 돌아와서도 울었다. 온전하게 잠 든 내 아이들을 보면서 또 울었다.
아픈 시간들이었다.

추운 겨울 지내는 동안 그이 생각을 자주 했다.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어떻게..
그러나 연락을 할 수 없었다.
어떻게 지내냐고, 잘 지냈냐고, 괜찮냐고, 기운 내라고... 이런 말들은 건넬 수 도 없었다.
내가 그이라면 나는 잠을 잘 수도, 밥을 먹을 수도 없을 것이다. 살아있어도 죽은 것처럼

허공에 발을 딛고 서 있는 것 같을 것이다. 상처는 매 순간 너무나 생생하고

아이의 빈자리는 숨 쉴때마다  너무 또렷해서 나는 견딜 수 가 없을 것이다.
그 모든걸 다 아는데 차마 연락을 할 수 없었다. 어떤 말도 건넬 수 가 없었다.
그저 어떻게든 견디라고 마음으로만 속삭였을 뿐이다.

겨울 지나고 봄이 왔다.
교정에서 그이의 딸을 보았다. 내 큰 딸의 친구였다.
다른 친구들과 함께 놀이터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반갑고 고마왔다.
그리고 어제 마당 넓은 교외의 식당에서 가졌던 5학년 반모임에서 그이를 만났다.
많이 여위고 너무 갸날파서 훅 불면 날아갈 것 같았지만 꽃비가 내리는 정원에서

친구 엄마들과 앉아 그녀가 미소짓고 있었다.

뭉클하게 반가왔다. 다시 웃는 그이의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나 고마왔다.

나물을 캐러 우리 동네에 온 그이를 윗밭으로 불러 쑥부쟁이와 쑥을 캐 가라고 일러주며
밥 한번 먹으러 오라고 했다.
그이는 오늘 점심, 가깝게 지내는 이웃 두명과 우리집에 왔다.

그이와 이웃들을 맞이하기 위해서 오전내내 집안을 청소하고 음식을 준비했다.
우리집 암탉이 낳은 댤걀로 찜을 하고 취나물을 무치고 어제 부랴부랴 윗밭에서 거둔 초벌 부추로
버무린 오이 김치를 꺼냈다. 집 안팎에서 거두어 만든 쑥부쟁이나물과 민들레 겉절이를 꺼내고
김장김치를 새로 꺼내고 김도 바삭하게 구웠다. 오랫동안 안 쓰던 유기 그릇도 꺼냈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견디기 어려운 슬픔을 안고 사는 그녀에게 따뜻한 밥 한끼 차려주고
싶었다. 정성이 듬뿍 들어간 생명 가득 깃든 음식을 먹여주고 싶었다.
이것이 지금 내가 그녀에게 해 줄 수 있는 위로다.

진심을 다해 만든 음식에는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분명히 스며있다.
먹는 순간 한 영혼을 어루만지는 또 한 영혼의 마음을 느끼게 된다. 맛있게 천천히 먹고 있는
그이의 작은 등과 어깨만 봐도 그이의 안으로 들어가서 천천히 그녀를 채우고 있는 내 마음을

그이가 꼭꼭 씹어 삼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차린 음식이 몇 시간, 혹은 며칠이라도 그녀에게 자그마한 기운을 줄 수 있는

자양분이 되고 있을 것이다. 다행이다. 이런 위로나마 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겨울 내내 생각.. 많이 했어.
그런데 연락을 할 수가 없더라. 어떤 말을 건네야할지, 어떤 말도 건넬 수 없어서..
어제 봄햇살속에 다시 웃고 있는 모습 보는데 너무 반갑고 고맙더라고..
힘든 시간... 어떻게든 견뎌왔구나... 고맙고 고마워서..
떠난 아이... 생각많이 나지. 매순간 숨 막혀올텐데... 그럴때 얼굴만봐도 그 마음 바로
알아주는 사람들 곁에 있으니까 같이 울면서 같이 견디자.
너무 감추거나 누르려고 애쓰지말고 떠오르는대로 생각나는대로 그리운 대로 떠난 아이
이름 불러가면서 같이 얘기하며 살자.
우리 모두에게 다 올 일이잖아. 조금 더 일찍 온 것일뿐.. 우리 모두의 일 이잖아.
그러니까 같이 슬프고 같이 견디며 같이 지내야지.
그냥 곁에서 같이 살고 있다고 생각해. 떠날 때 모습 그대로 엄마 곁에 언제나 머물고
있다고 여기면서 아무때고 이름 부르고, 말 건네면서 살아. 우리도 무겁지 않게
떠난 아이 이름 부르고 얘기 건넬테니...
조금 더 시간 지나서 조금 더 힘이 생기면 떠난 아이 알고 있는 많은 이웃들 불러서
아이에 대한 각자의 고유한 추억과 사연을 나누는 자리도 마련해보자.
엄마가 알고 있는 아이 모습 말고 수많은 사람들 기억속에서 다양하게 남아있는 더 많은
내 아이 모습 만나면서 같이 울고 같이 웃다보면 슬픔이 아주 조금 더 가벼워질 수 있을꺼야..
도움이 되고 힘이 되는 어떤 일이든 같이 해줄께. 너무 힘들어서 훌쩍 낮선 곳으로
떠나버리려는 생각  말고 무람하게 기댈 수 있고 내 속을 펴 보일 수 있는 이웃들이 있는
이곳에서 오래 같이 살자.
이런 밥, 언제든 차려줄 수 있어. 따끈한 집밥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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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이는 다시 울었고 다시 웃었다.
우리도 같이 울고 또 웃었다.
정말 잘 먹었다고, 고맙다고, 언제든 밥 먹으러 오겠다고 인사를 하며 돌아간

그녀들이 앉았던 자리에 네 여자가 눈물을 닦아낸 흔적들이 동그마니 남아있다.

살다보면 견디기 어려운 상실과 마주하게 된다.
누구나 그렇다.
그 상실을 안고, 감당하며 살아가는 일이란 매 순간 칼날위를 걷는 것처럼 쓰리고 아플 것이다.
그럴때 가끔 그 칼날에 보드라운 천을 대주고 조금 덜 아프게 걸을 수 있게 해 주는 마음들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살아진다.

남편은 부모를 잃었다.
그이는 아들을 잃었다.
같이 온 어떤 이는 눈물 속에 엄마를 보냈다.
상실은 누구에게나 온다. 어디에나 있다. 그러니 우리는 조금 더 자주 서로 기대서 울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의 상실에 내 마음을 내어주는 것은 언제든 내게 올 상실을 미리 애도하는 것과도 같다.
우리는 약한 존재지만 서로 기대가며 또 한없이 강해질 수 있는 존재들이다.

5월이 무르익으면 그이의 가족들과 이웃의 가족들을 불러 마당에서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구워 먹기로
했다. 서로 마음을 보여주며 같이 울고 웃는 여자들과 달리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약해지면 안될까봐
마음을 무섭게 단속하고 바로 일상으로 뛰어들었을 그이의 남편 마음도 잘 보살펴주고 싶다.
고기라도 같이 구워가며 남자들도 허물없이 마음을 열고 무겁지 않게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는
그런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새로 돋아난 잎들로 사방이 푸르다.
깊은 슬픔속에서도 보드라운 희망 하나 돋아나는 새 봄이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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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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