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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unsplash> 

아이들이 싸우는 소리에 거실로 달려가보니 작은 아이가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형이 자기 따라하지 말라고 하면서 때렸어.” 이 말이 끝나기 바쁘게 큰 아이가 소리를 질렀다. “내가 언제!” 내가 개입하자 둘은 조금 전보다 한층 커진 목소리로 싸움을 벌였다. 눈물과 흥분과 고함소리가 오가는 가운데 간신히 싸움의 전말에 대한 가닥을 잡을 수 있었다. 작은 아이가 큰 아이의 그림을 따라 그렸다는 것, 그걸 보고 화가 난 큰 아이가 계속 작은 아이를 구박했다는 것. 큰 아이가 작은 아이를 때렸는지 안 때렸는지 여부는 끝까지 알 수 없었지만 요지는 그것이었다. 따라했다는 것. . 나는 이 말 저 말 하며 형제들의 다툼을 말려보다가, 결국 둘을 다른 방에 들어가 있게 해놓은 뒤 방으로 돌아왔다. 하던 작업을 계속 하려고 노트북 앞에 앉았지만 조금 전 있었던 형제의 난이 자꾸 떠올라 도무지 집중을 할 수 없었다. 누가 누구를 따라 했네, 안 했네를 두고 싸우는 아이들에게는 도대체 뭐라고 해주어야 하는가? 애들은 왜 아무것도 아닌 것 가지고 저토록 심각하게 싸움을 벌이는가? 다른 집 애들은 안 그런 것 같은데 우리 집 애들은 왜 눈만 마주치면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가?

 

<타고난 반항아>는 동기간 순위, 그러니까 가족 내에서 몇 번째로 태어났느냐가 한 사람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력을 다채로운 시각에서 조명한다. 저자인 프랭크 설로웨이는 한 사람의 정치적 성향을 결정하는 요인은 계급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도 아닌 가족 내 위치, 즉 형제자매간 서열이라고 말한다. 좌파와 우파의 길을 가르는 동인이 집안 전체가 속한 '계급'이 아닌 집안 내부의 서열이라는 것. 저자는 역사상 있었던 굵직한 혁명들의 주인공을 출생순위를 기준으로 놓고 분석해, 인류 역사를 바꾸어놓은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들이 대부분 후순위 출생자였음을 밝힌다. 볼테르, 마르크스, 다윈, 코페르니쿠스는 모두 동생들이었으며 타고난 반항아들이었다는 것. 첫째로 태어난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사사건건 장자라는 특혜를 받기 때문에 기존 제도에 옹호적인 보수성을 띠게 되지만 동생들은 살아가면서 필요한 물질적 정신적 지지를 일일이 주장해야 얻어낼 수 있기 때문에 기존 제도를 뒤집어엎고 싶어 하는 성향을 띠게 된다는 논리다.

 

원래 이 책을 집어 들었던 동인은 사람들의 정치적 성향을 판가름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알아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똑같은 정치적 사안을 놓고 첨예하게 다른 입장을 보이게 되는 사람들의 심리와 기원이 궁금했던 터라 책장을 넘기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성인이 되면서 굳어지는 정치적 성향의 원인을 가족 외부의 요인(가족 전체가 속한 계급같은)에서 원인을 찾았던 기존의 연구 경향과 달리 이 책은 원인을 가족 내부에서 찾는다. 그런데 저자가 풀어내는 흥미진진한 일화들을 따라가다 보니 애초에 독서에 덤벼들었던 목적과는 다른 지점에 관심이 쏠렸다. 정치 성향을 결정하는 요소보다는 동기간의 갈등에 더 관심이 갔던 것. 같은 부모를 둔 아이들이 왜 그렇게 첨예하게 다른 성향을 띠게 되는지, 왜 사사건건 다투게 되는지, 왜 별 것 아닌 사안을 두고 그토록 핏대를 올리게 되는지. 책장을 넘기면서 우리 집에 있는 형제들의 그간의 행적을 하나하나 이해하게 되었다. 어떻게든 자신이 형과 다름을 내세우던 작은 아이, 형이 꾸지람을 들은 부분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어떻게든 그 사실을 부모에게 알리려 애썼던 작은 아이, ‘원래 그러면 안 되는 거야라는 말을 하며 작은 아이의 새로운 시도를 번번이 막으려 했던 큰 아이...그랬구나. 그게 출생순위에서 비롯된 현상이었구나.

 

책 내용의 많은 부분에 고개를 끄덕였고, 형제들의 심리에 대한 이해도가 넓어졌다. 그동안 도대체 왜! 왜들 저래! 하면서 이해할 수 없던 형제들의 마음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납득하게 되었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메카니즘을 파악하게 되었다. 재미있는 건 이 책을 읽은 다음부터 형제 간의 싸움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가 여유 있고 너그러워졌다는 점이다. 예전 같았으면 부르르 떨면서 호통을 내렸을 일에 웃으며 농담을 건네게 되었다. “동생이 너무 얄밉지? 나는 절대 안 저랬는데 쟤는 왜 저런 짓을 하나 싶지?” 혹은 형이 자꾸 안 된다고 하니까 너무 답답하지?” 하고 마음을 짚어주게 되었다. 첫째인 아이와 둘째인 아이의 선 자리를 보면서 마음의 흐름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이 책에 나오는 논리에 모두 공감하지는 않았다. 이런 종류의 책에 나오는 논리가 자칫하면 진화심리학의 자연결정론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는 사실도 의식하며 읽었다. 그래도 이 책 덕분에 인간의 선 자리에 대한 지식, 날 때부터 가져가게 되는 선험적인 환경에 대한 지식을 갖고 우리 집 작은 어른들이 벌이는 난해한 행동들의 많은 부분을 이해하게 되었다. 형제를 보는 시선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해야 할까. 그전까지 나는 형제란 모름지기 서로 아껴주고 위해주도록 운명 지워진 존재들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부모에게서 나온 형제들은 당연히 서로를 계산 없이 사랑하도록 타고났다고. 싸우거나 서로를 미워하면 잘못된 거라고. 어떻게든 가르치고 교정해서 서로를 사랑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이 책을 통과하면서 생각이 백팔십 도 바뀌었다. 형제는 그런 존재들이 아니었다. 형제란 날 때부터 부모의 재화와 사랑을 놓고 겨루어야 하는 운명의 경쟁자들이었으며, 이는 엄연한 생존경쟁에 속하는 일이었다. 당연히, 장자로 태어난 이와 그렇지 않은 이는 각기 달리 자신의 안전과 이권을 지키는 방법을 생각해내 대처하게 돼 있었다. 그 대처 과정이 바로 나를 내 방에서 거실로 뛰쳐나오게 만들었던 커다란 소음, “싸움이었고. 서로 알콩달콩 아껴주고 사랑하는 형제상이 그저 내 머릿속에만 있던 비현실적인 상이었음을 알게 되자 마음이 편안히 가라앉았다. 아이들이 다툼을 벌여도 여유 있게 웃으며 관조하게 되었다. 너희들이 이 정도밖에 싸우지 않는 게 놀라운 일이었구나! 싸우다 어느새 낄낄거리며 사이좋게 노는 모습을 보면 눈이 휘둥그래졌다. 이렇게 사이좋게 놀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기적적인 일이로다!

 

우리가 골머리를 앓는 일의 대부분은 지식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흔히 우리는 선택할 수 없어서, 또는 내가 갖고 있는 가치관과 어긋나서 괴로워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상을 파고 들어가보면 문제는 가치관이 아니라 지식인 경우가 많다. 이 경우, 현상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투입되면 사태가 간단하게 해결되어 버린다. <타고난 반항아>를 읽은 뒤로, 우리 집 형제들이 다툼을 벌이면 이전처럼 호통을 치거나 어떻게든 사이좋게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게 되었다. 그러다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다. 너 방금 형이 그런 말 했을 때 이런 마음이었지? 너 아까 동생이 그렇게 행동했을 때 억울했지?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그런 짓을 한 적이 없는데 쟤는 도대체 왜 저래, 싶었지? 책에서 읽은 내용이 맞는지 확인해보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열렬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어느 순간 싸웠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고 어우러져 놀았다. 그리고 빛의 속도로 의좋은 형제의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그런 형제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조용히 되뇌였다. 지식이 나를 구원했구나. 지식, 그러니까 이 나를 고민의 구렁텅이에서 건져주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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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은
헤드헌터, 번역가, 소설가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며 살아왔지만 저의 제1 정체성은 언제나 ‘엄마'였습니다. 엄마 경력 12년에 접어들던 어느날, 좋은 엄마가 되겠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너무 아등바등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요. 그때부터 이 글을 쓰기 시작했고, 연재 글을 바탕으로 에세이 <엄마의 독서>를 펴냈습니다. 2013년 < 모던 하트 >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고, 이후 장편소설 < 잠실동 사람들 >, < 맨얼굴의 사랑 >을 펴냈습니다.
이메일 : emma750322@hanmail.net      
블로그 : http://blog.naver.com/emma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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