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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회사로, 너희 셋은 학교로 모두 떠나고 엄마 혼자 있는 조용한 집...
에서도 밥 때는 온다.

집안일 하다, 글 쓰다, 책장 넘기다 밥 먹을 사람이 나 혼자인걸 생각하면

귀찮아서 라면 하나 끓여먹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럴땐 맛있게 라면 끓여 먹으면 된다.

가끔이라면 라면도 좋다. 그러나 오늘은 밥을 차린다.

아침은 늦게 과일 쥬스로 먹었으므로 점심에는 따끈한 밥이 먹고 싶었다.

이것저것 차리기도 귀찮고, 반찬도 딱히 마땅치 않을때, 손 많이 가는 음식은 식구들 다 모이는

저녁에나 하게 될 때, 그럴때는 역시 채소 볶음이다.
냉장고 야채칸을 뒤져 구석에서 시들어 가는 브로콜리도 꺼내고, 한동안 안 먹었던 양배추도 꺼내고
얼마전에 사 놓은 걸 잊고 새로 사와서 넘치게 많은 당근도 꺼내고 세일할때 넉넉히 사 둔

단단한 토마토도 꺼낸다.

딱히 요리랄것도 없다.
후라이펜에 올리브오일 넉넉히 두르고 마늘 두어쪽 얇게 썰어 먼저 볶다가 나머지 야채들

대강 대강 잘라 넣고 볶는다. 통후추 조금 갈아 넣고 천일염 휘이 뿌려서 센 불에 볶는다.
따근하게 데운 현미밥에 채소볶음만 있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없다.
충분히 배가 고팠으므로 허기가 넘칠때는 갓 만든 어떤 음식이든 꿀 처럼 단 법이다.

너희들은 양념이 듬뿍 들어간 음식들을 좋아하지.
갈비나 잡채나 불고기처럼 온갖 양념들이 넉넉히 어우러진 음식은 확실히 맛있다.
그런데 가끔은 아주 단순한 방법으로 만든 음식들이 끝내주게 맛있을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이 채소볶음은 기름과 소금만으로도 아주 근사한 맛이 나지.
그냥 볶기만 했을 뿐인데 각각의 채소 맛이 아주 진하게 그대로 난다.
김도 그래. 기름과 소금뿌린 것보다 그냥 불에 살짝 구워 먹는 것이 더 맛있다.

여러가지 양념이 조화롭게 들어가는 음식들이란 사실 만드는 법도 복잡하고 손도 많이 간다.
따라 하려면 번거롭고 힘들어져서 쉽게 포기하게 되기도 하고..
만약 혼자 먹는 음식을 차리기 위해서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한다면 매일은 못할꺼야.
어쩌다 맘 먹고 정성들여서 정교하고 풍부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도 좋겠지만
엄마는 혼자 먹는 밥이 단순하고 소박한게 좋다.
채소볶음은 어느 채소로 해도 다 맛있다. 텃밭에 채소들이 자라기 시작하면
밭에서 나온 걸로 바로 바로 해 먹을 수 있겠지. 가지랑 피망이랑 오이나 호박도 맛있을거다.

이다음에 만약 너희들이 독립해서 혼자 살게 되면 밥 해 먹는 일이 가장 힘들지 모른다.
만들기도 힘들고 치우는 것도 귀찮아지면 컵라면이나 편의점 도시락이나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싶어지기도 하겠지. 몸이 너무 힘들땐 쉽게 가는게 나쁠리 없다.
그래도 애쓴 몸에 제대로 된 밥을 먹여 주고 싶을때 크게 힘들이지 않고 한 끼 잘 차려 먹고
싶을때 채소  볶음을 해봐. 너희들이 좋아하는 채소 몽땅 넣고 올리브오일에 소금으로만 볶아도
정말 맛있을 걸.

수시로 간식을 입에 달고 살고, 기름지고 양념이 범벅된 바깥 음식을 자주 먹게 되면 이런 음식의
맛을 제대로 알기 어렵지만, 바쁘게 움직이다 충분히 배 고파졌을때 이렇게 한 끼 차려 먹으면
몸과 마음이 뿌듯하게 차 오르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거다.


좋은 한 끼2.jpg


중요한 건 애써 차리는 음식인만큼 내가 먹을 만큼만 해서 남김없이 다 먹을 것.
이 음식들을 키워낸 자연과 만들어낸 나 자신에게 고마워할 것.

좋은 한 끼 먹었으니 엄마는 다시 컴퓨터 앞에 앉는다.
채웠으니 뭔가 또 돌려줘야지. 많은 것들의 덕분으로 살고 있으니까 사는 한 뭐라도 조금씩
세상에 돌려주려고 노력한다.
하루 하루 그런 마음으로 살면 되지 않을까.

아빠도, 너희들도,엄마도 모두 애쓰는 하루를 응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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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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