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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노인·장애인 돌보기, 여성에 저임으로 떠넘기는 정부

베이비트리 2018. 03. 08
조회수 603 추천수 0
값진 돌봄 값싼 대우 (상) 돌봄노동이 엄마의 용돈벌이?
태어나 자라고
다치거나 병들고 늙어가는
생애 모든 과정에서
인간은
누구나 돌봄 수혜자이며
돌봄은 의존이 아닌 권리다.

가족도 하기 힘든 일…
그 일 대신하는 돌봄노동자
어째서 처우는 가볍고
책임만 이토록 무거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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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차 ‘아이돌보미’ 배민주(52)씨는 2016년 9월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의 한 가정으로 출근하게 됐다. 마곡지구는 당시 신도시 개발이 한창이었다. 지하철로 출근하기에 마땅치 않았고 노선 버스도 없었다. 시간당 6500원을 받으며 출퇴근에 택시비까지 써야 했던 배씨는 여성가족부에 “교통비를 지원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건의했다가, 여가부 공무원의 대답에 할 말을 잃었다. “이거 아이돌보미 선생님들 위한 사업 아닙니다. 중년 여성들 용돈 정도 버시라고 만든 사업이에요.” ‘용돈 임금’ 이상의 처우 개선은 바라지 말라는 뜻이었다.

재무컨설턴트로 일하던 배씨는 업무 스트레스 때문에 2012년 일을 그만두고 평소 꿈꿨던 아이돌보미 일을 시작했다. 2007년부터 시행된 아이돌봄 서비스는 만 12살 이하 아동을 둔 맞벌이 가정에 돌보미가 직접 방문해 육아를 도와주는 사업이다. 서비스 만족도가 90점대에 이르는, 정부의 대표적인 육아지원정책이다. 이용 가구 소득에 따라 요금의 25~75%를 정부가 부담한다.

배씨는 돌보미 일을 시작한 뒤 수입이 4분의 1로 줄었지만 마음은 뿌듯했다. 돌보는 아이뿐 아니라 그 가정 전체가 자신의 도움으로 변화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자신의 직업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배씨의 생각과 달랐다. 배씨는 “재무설계 할 때는 고객이 나를 전문가로 인정해주는 느낌이 들고 자긍심도 있었다. 한데 아이돌보미로 일하는 지금은 ‘저 부모가 날 어떤 식으로 볼까’ 하는 자괴감이 종종 든다”고 말했다.

사람은 태어나 자라고, 다치거나 병들고, 늙어가는 생애 모든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다. 미국의 여성주의 정치이론가 조앤 트론토는 <돌봄 민주주의>에서 “인간은 누구나 돌봄 수혜자이며 돌봄은 의존이 아닌 권리”라고 말했다. 돌봄을 둘러싼 정책은 각종 선거 때마다 중요하게 떠오르는 사회적 관심사다. 돌봄노동의 공공성은 갈수록 높아지지만 현실은 이를 따르지 못한다.

■ 보육교사·간병도우미 99% 여성 과거에는 돌봄을 가족이, 더 정확히는 가족 내 여성이 맡았다. 시간이 지나며 ‘돌봄의 사회화’는 복지국가로 가는 주요 전제조건이 됐다. 한국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0년대 중반부터 가족이 전적으로 책임져왔던 돌봄을 국가가 분담하며 덩치를 키웠다. 지금은 영유아를 산모·신생아도우미나 아이돌보미가, 아동·청소년기에는 보육교사와 유치원교사, 초등돌봄전담사, 아동복지교사가 돌본다. 장애인이나 노인은 사회복지사와 장애인활동보조인, 요양보호사, 가정관리사가 곁을 지킨다.

가족이 떠맡던 돌봄이 국가의 복지체계로, 또 노동시장으로 흘러왔지만 여전히 이는 여성의 몫이다. 지난 1월 여성가족부가 연 ‘1차 가족정책포럼’에서 송다영 인천대 교수(사회복지학)가 발표한 ‘돌봄 민주주의와 지역사회 함께돌봄 정착 방안’을 보면 보육교사, 노인돌보미, 가사간병방문도우미 가운데 여성 비율은 99%대에 이른다. 요양보호사 역시 93∼95%가 여성이었다. 산모신생아도우미의 경우 3200여명 전원이 여성이다.

문제는 여성 일자리로 고착된 돌봄노동의 가치를 낮춰 보는 사회적 인식과 박한 처우의 악순환 구조다. 이미 심각한 고용차별을 겪는 50∼60대 여성은 저임금과 열악한 처우에도 불구하고 보조생계자로서 돌봄노동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돌봄노동은 ‘중년 여성에게 용돈 정도만 주면 되는 일’로 여겨진다.

김남희 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은 “한국은 짧은 기간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겪으며 돌봄의 사회화를 빠르게 진행했다. 적은 예산으로 급하게 양적 확대를 추진하다 보니 일자리 질은 떨어지고 인력의 여성화가 가속화됐다. 돌봄 정책의 중요성을 인식한다면 돌봄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도 일자리의 질을 함께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는 외려 돌봄 일자리에 대한 나쁜 처우와 낮은 인식을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이돌보미, 요양보호사를 비롯한 여러 돌봄 직종은 제도가 만들어진 지 올해 10여년째다. 급여는 최저임금 수준을 맴돌아 가족 내 주수입원이 되지 못하고, 이용자 편의에 따라 짜놓은 근무 일정 탓에 단시간 근로자인데도 제대로 된 휴식권을 보장받지 못한다. 지금껏 돌봄노동자는 정책의 주된 관심 대상으로 부각되지 못했다.

요양보호사 김순심씨가 자신이 돌보는 노인과 함께 ‘미술 치료’를 하고 있다. 김씨는 “우리 일은 어르신에게 남은 잔존기능을 최대한 살려 가능한 한 스스로 생활할 수 있게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요양보호사 김순심씨가 자신이 돌보는 노인과 함께 ‘미술 치료’를 하고 있다. 김씨는 “우리 일은 어르신에게 남은 잔존기능을 최대한 살려 가능한 한 스스로 생활할 수 있게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저임금 노동자 비율 70% 육박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강병원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초등돌봄전담사 실태’(2016년 기준)를 보면, 1만2058명인 전국 초등돌봄교실의 돌봄전담사 가운데 60.7%는 평균 월급이 120만원 이하였다. 전국 돌봄전담사 세 명 중 두 명은 기간제 근로자였고, 네 명 중 한 명은 주 15시간 미만의 초단시간 노동자였다.

이런 조건은 초등학생의 방과후 일과를 돌보는 초등돌봄전담사 직종이 ‘괜찮은 일자리’가 되는 것을 막는다. 초등돌봄전담사는 사범대를 졸업하면 취득할 수 있는 중등교사 2급 자격증이나 사회복지사, 보육교사 자격증 소지자를 대상으로 선발한다. 하지만 사범대생이나 사회복지학과 재학생, 유아교육학과 재학생은 초등돌봄전담사를 자신의 진로로 생각하지 않는다. 임용시험에 떨어지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일 뿐이다. 돌봄전담사들은 저학년 초등학생의 보육을 맡아 미술, 예체능, 급식 지도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전문성이 필요한 일인데도 정작 이들은 “임용시험에 떨어져서 왔다” “애 낳고 재취업할 곳이 없었는데 받아줘 감사하다”며 패배감에 빠져 있다.

돌봄전담사들은 학교 안에서도 정규직 교사의 보조인력으로 여겨진다. 정교사들이 해야 할 자잘한 서류 업무나 간식 챙기기까지 한다. 교육청을 상대로 돌봄전담사의 처우와 관련한 소송을 진행 중인 김경란씨는 “교장이 겨울방학 때 ‘군고구마가 먹고 싶다’고 해서 돌봄교실 학생용 간식을 쪄서 갖다 드린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일부 학교는 돌봄전담사에게 정교사 수준의 공개수업이나 강의를 시키기도 한다. 경기도의 돌봄전담사 남아무개씨는 “연간 2회 공개수업을 하고 강의계획서를 학교에 제출한다. 정규직 교사와 업무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처우는 가볍고 책임은 무거운’ 돌봄전담사들의 노동조건은 결국 돌봄의 질 저하로 이어진다. 돌봄전담사 박아무개(45)씨는 “요일에 따라 오후 1시50분이나 2시50분에 출근하기로 학교와 계약했는데 아이들은 오전 수업 뒤인 낮 12시 반부터 돌봄교실에 와 있는 경우가 많다. 봐줄 어른이 없는 ‘돌봄 공백’에 노출되는 것이다. 할 수 없이 우리가 1~2시간 먼저 출근하는 게 일상”이라고 말했다. 이태수 꽃동네대학교 교수(사회복지학)는 “문재인 정부는 ‘온종일 돌봄체계 구축’을 국정과제로 삼고 의지를 밝히고 있지만 방과후 돌봄은 아직 사각지대에 있다. 특히 돌봄 종사자들의 기본권 보장, 생활수준 보장이 전혀 고려되지 않으면서 돌봄 공백으로도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다른 직종도 사정은 비슷하다. 4년차 요양보호사 김순심(64)씨는 오전과 오후로 나눠 2곳에서 3시간씩 일한다. 움직임이 불편한 노인의 대소변을 치우는 일부터, 근육 운동을 돕거나 맞춤 식단을 준비하고 심리적 보살핌까지 다양한 방면의 도움을 주는 것이 요양보호사의 일이다. 요양보호사는 요양급여 대상자인 노인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을 교육받고 자격증을 취득한 전문인력이지만, 김씨가 “가족도 하기 힘든 일”로 손에 쥐는 월급은 120만원에 그친다.

■ 정부, 인건비 절감에만 ‘안간힘’ 이들은 쉴 권리도 마땅히 보장받지 못한다. 김씨는 “명절에도 가족이 없는 홀몸노인 환자를 돌봐야 해서 쉴 수가 없다. 다른 요양보호사 얘길 들어봐도 마음대로 휴가 다녀온 경우가 없다”고 했다. 4년 동안 매주 6일씩 일하며 김씨가 쓴 휴가는 지난해 남편과 함께 다녀온 4박5일 여행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휴가에서 돌아오니 김씨가 돌봐야 할 대상 노인이 바뀌어 있었다.

돌봄노동자의 처우는 수년째 제자리걸음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한국노동패널조사 결과를 보면, 돌봄노동자의 저임금 노동자 비중(월소득이 중위소득의 3분의 2 미만인 노동자의 비중)은 70%(2016년 기준)에 이른다. 이는 7년 전인 2009년(71%)과 견주어 크게 나아지지 않은 수치다. 반면 비돌봄노동자의 경우 저임금 노동자 비중은 18%(2016년)로, 2009년 24%에 비해 한결 나아졌다.

돌봄노동을 비롯한 국내 사회서비스 일자리에는 2016년 말 기준 6조5천억원의 정부 재정이 투입되고 142만명이 일한다. 정부는 이들의 직접사용자이거나 인건비를 지원하는 간접사용자다. 하지만 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를 단순히 연결하는 “‘인력 알선업체’ 구실만 한다”는 비판마저 나온다.

요양보호사 김순심씨가 매일 오후 찾아가는 가정의 지난달 서비스 일정표. 주 6일을 일하며 명절 연휴에도 이 틀만 쉬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요양보호사 김순심씨가 매일 오후 찾아가는 가정의 지난달 서비스 일정표. 주 6일을 일하며 명절 연휴에도 이 틀만 쉬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정부는 인건비 절감에 ‘안간힘’을 쓴다. 최저임금을 큰 폭으로 인상한 건 정부인데도, 돌봄노동자들을 직간접 고용한 ‘사용자’로서 정부는 외려 ‘쪼개기 계약’을 강요하거나, 주휴수당·연차수당을 주지 않으려 근로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악덕 사용자’의 행태를 보인다. 지난달 10일 전국 아이돌보미 1200여명은 여성가족부를 상대로 주휴수당·연차수당 등 체불임금 지급을 요구하는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여가부는 아이돌보미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관련 수당을 줄 수 없다고 버틴다. 지난해 8월 서울행정법원이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로 아이돌보미를 인정했지만 여가부는 별도로 제기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여부에 대한 “사법부의 판결을 지켜보자”는 태도다.


초등돌봄전담사도 비슷한 상황이다. 경기, 경남 등 시도교육청은 인건비 절감을 위해 초등돌봄전담사의 근무시간을 주 15시간 미만으로 제한하고 이들을 초단시간 근로자로 분류한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서울행정법원은 이런 처사가 “무기직 전환이나 재계약 심사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꼼수’라고 판시했다. 법원은 돌봄노동을 하는 초단시간 노동자를 무기계약 전환 대상으로 인정했지만 해당 정부기관인 경기도교육청은 여전히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이지혜 김미향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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