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3일 토요일, 110주년 세계여성의날 기념대회가 제주시청에서도 열렸습니다. 이날 내가 일하는 노동조합에서도 저랑 간부들이 기념대회에 참석했습니다. 내가 일하는 노동조합은 조합원 중에 97%가 여성입니다. 많이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여러 명이 이날 기념대회에 참석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아내와 아이들까지 포함해 온 가족이 참석했고요.
기념대회를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갔습니다. 자연스럽게 아이들 이야기를 서로 나눴습니다. 마침 나랑 똑같이 초등학교 2학년 남자 아이를 둔 여성 조합원도 있었습니다. 그 조합원은 아직도 아이 장래희망이 무엇인지 묻는 조사를 학교에서 한다고 분개했습니다. 그 조합원은 장래희망을 묻는 질문란에 아이의 희망 직업에 대해서 쓰지 않고, 아이가 좋아하는 일을 나중에 하면 좋겠다고 썼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그 분개에 동의하면서 윤슬이가 다니는 학교는 아이 장래희망에 대해서 묻지 않는다고 얘기했습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윤슬이가 다니는 학교가 혁신학교라서 그런 것을 부모들에게 묻지 않는 건 아닌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저녁 퇴근을 하니, 아내가 무언가를 보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쓱 얼굴을 들더니, 학교에서 학부모 설문조사를 하는데 아이 장래희망을 묻는다고 얘기했습니다. 나도 “응?”이라고 답하면서 서로 얼굴을 보면서 겸연쩍게 웃었습니다. 지난 토요일 한 말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저녁을 먹으면서 윤슬이에게 “장래희망이 뭐야?”라고 물었습니다. 윤슬이 대답이 걸작입니다. 윤슬이는 “몰라. 지금 내가 어떻게 알아?”라고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윤슬이가 지금 미래에 무엇이 되고 싶은지 알고 있다면 거짓말이겠죠. 어른이 된 우리들도 자기 자신이 정작 무엇을 진심으로 원하고 있는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싶었던 건지) 잘 모르지 않나요?
내가 초등학교 1, 2학년 일 때 어른들이 장래희망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과학자’, ‘의사’라고 답했습니다. 어느 친구는 ‘대통령’, ‘군인’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느 여자 아이는 ‘선생님’이라고 했겠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의대’나 ‘육군사관학교’, ‘사범대’ 등을 가야했고, 결론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걸로 이어집니다. 알고 보면 어른들이 어린 우리에게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고, 좋은 대학을 가야하고, 그래야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은연중에 심어줬습니다. 장래‘희망’은 곧 장래‘직업’이었습니다.
최근 일본 전직 신문기자가 쓴 ‘퇴사하겠습니다’란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습니다. 이 책이 꽤 인기가 있었습니다. 한 1년 동안 도서관에 갈 때 마다 대출중이라 빌리지 못했습니다. 해안가 시골도서관이라 인근 주민들이 농업이나 어업, 또는 자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왜 ‘퇴사하겠습니다’라는 책이 이렇게 인기가 있는 걸까요? 나처럼 퇴사하지 못한 사람들이 이 동네에서는 이 책을 모두 읽기로 마음먹었던 걸까요?
드디어 지난 3월 1일, 아이들이랑 도서관에 갔을 때 큰 기대 없이 이 책이 있나 찾아봤더니, 웬일인지 도서관에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삼일절이라 이날만큼은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일본 사람이 쓴 책은 안 읽기로 마음을 먹었나라고 혼자 생각하면서 냉큼 빌렸습니다.
저자는 “회사원이 열심히 일하는 이유는 ‘돈’과 ‘인사’(승진)”이라고 말합니다. 이 비슷한 이야기는 드라마로 만들어진 ‘미생’이라는 웹툰에서도 나옵니다. 저자는 28년간 다닌 좋은 회사를 그만두고 ‘일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면서 “일이란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며 말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무척 일이 하고 싶어 근질근질하답니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이 이래서 생기는 걸까요?
어째 저자가 한 말을 줄이다 보니 너무 교과서적인 이야기가 됐습니다. 이 책을 보면 저자가 회사 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만든 변화, 그리고 회사 사회에서 벗어나고 생긴 변화를 재미있게, 그리고 무척 공감할 수 있도록 표현했습니다.
베이비트리에 칼럼을 쓰고 있는 김민식 pd도 이렇게 썼습니다. “아이들이 어떤 세상을 살아갈지 알 수 없을 때, 저는 아이들에게 시간과 자유를 주고 싶습니다. 스스로 즐거운 일을 찾아갈 수 있도록 말이지요. 아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즐기고 언젠가 꿈을 이룬다면 그때 가서 우기려고요.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 이게 원래 아빠의 육아 목표였다니까!”
아내는 ‘아이가 원하는 장래희망’ 설문조사란에 “윤슬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썼습니다. 참 어려운 일이지만, 아이에게 ‘시간’과 ‘자유’를 준다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어른이 되어서도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한 것은 우리에게 ‘시간’과 ‘자유’, 그래서 ‘자립’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