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손.jpg


아들이 다니는 대안학교에는 학년이 없다. 다만 초, 중, 고등 과정은 있다.
보통 학교에서는 1년을 다니면 당연히 그 다음 학년으로 올라가지만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서는
당연히 올라가지 않는다.
그 다음 과정에 올라갈만 한 실력과 노력을 갖추었다는 평가를 모든 교사들이 내렸을때 올라갈 수 있다.
공부 뿐 만 아니라 공동생활 속에서 보여지는 품성과 자질 역시 중요하다.
그렇게 한 과정을 마치고 다음 과정에 올라가게 되는 일을 아들의 학교에서는 '진학'이라고 부른다.
진학을 한다는 것은 아이에게나  가족에게나 큰 축복인 셈이다.
학교에서도 '진학식'을 정성스럽게 올려주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축하와 격려를 받게 된다.

아들은 중등 2년 과정을 다녔던 지난 해 내내 올해 진학을 목표로 삼았다.
진학을 하게 되면 아들이 따르고 좋아하는 선배들과 공동생활을 하며 함께 지낼 수 있다.
핸드폰도 생긴다.
고등과정에 들어가게 되면 그 때는 핸드폰이 생겨도 지혜롭게 쓸 만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인정할 수 있다고 남편과 나는 아들에게 말해왔다. 아들에겐 여러모로 노력해볼만 한 동기였을 것이다.

아들은 열심히 했다.
우리가 챙길 필요도 없이 학교 과제들을 해 나가고, 수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가끔 학교 행사에서 교사들을 만나면, 필규가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칭찬을 들었다.
그래도 올해 진학은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다.
중등과정 3년을 꽉 채운 아이들도 많았고, 4년째 이 과정에 있는 아이도 있었기 때문이다.
학기를 마치고 방학에 들어섰을때 아들은 몹시 초조해 했다.
"엄마... 진학을 못 하게 되면 어쩌죠?"
"그러면 어때. 또 1년 열심히 다니면 되지"
"만약 진학을 못하게 되면 제가 제 자신에 대해서 정말 실망할 것 같아요"
"진학을 못 하더라도 네가 정말 열심히 했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알아.
진학을 해야만 그 노력들이 인정받는다고 생각하지마. 무엇보다 엄마, 아빠는 니가 정말
열심히 한 걸 잘 알고 대견하게 생각하고 있어. 진학을 못해도 충분히 고맙고 자랑스러워"
"전 그래도 정말 실망할것 같아요. 꼭 진학 하고 싶어요"
"그래... 기다려보자. 어떤 결과가 올지..."

우린 이따금 이런 얘기들을 주고 받았다.
설이 지나면 결과가 나올거라고들 했다.
설 지나고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이 지나도록 학교에서는 연락이 없었다.
안됐구나...
나는 괜찮은데 필규는 속상하겠다... 에고..어쩌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
목요일,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어머님.. 필규를 어떻게 할까요?"
"그러게요, 필규를 어떻게 할까요" 나는 무슨 뜻인지 몰라 그냥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앞으로 아들을 자주 보지 못하게 될 텐데 어머님,  괜찮으시겠어요?"
아... 진학을 하게 되었구나. 나는 심장이 뛰었다.
"아아, 괜찮고 말고요. 정말 바라는 바예요."

필규는 진학을 하게 되었다.
고등과정인 '바람빛 학당'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바람빛 학당부터는 학교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공부를 하게 된다.

집에는 토요일 오후에나 오게 될 것이다.

앞으로 아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시간을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뿐 이다.

필규는 정말 좋아했다.
팔짝 뛰지는 않았지만 벙글벙글한 표정은 감추지 못했다.

너무 벅차고 좋아서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
나도 좋았다.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정말 그랬다.

그런데..
바로 다음주 월요일이면 바람빛학당 사람들과 4일간의 여행을 다녀오고 그리고 개학이다.
3월부터는 단체 생활이다.
아들이 없는 일상이라... 이렇게 빨리 올지 몰랐다.
그날 나는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정말 좋은 일인데 자랑스럽고 축하할 일인데 내 마음이 이상했다.

태어나서 지금껏 징그럽게 싸우고 품고, 다시 싸우고, 보듬어가며 지내왔다.
첫 아이를 얻은 서툰 엄마로서 겪는 모든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아들을 키워오는 동안
때로는 이 아이와 너무나 많은 감정들이 섞여 있어서 또 다른 나 인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제일 많은 정성을 기울였고, 제일 많이 기대했고, 제일 애를 써가며 키운 아이다.
같이 울고, 같이 웃고, 같이 아프고 같이 기쁘던 기억들이 너무나 많다.
입학한 첫 학교에서 공부에도, 친구들과도 적응하지 못할때 아들에겐 나와 동생들 뿐 이었다.
외딴 집으로 이사와서 사는 내내 방학을 하면 가족끼리 살았다.
아들은 세상 누구보다도 나와 지낸 시간이 길다. 그래서 우린 서로를 지긋지긋해 했고,
그만큼 서로에게 깊이 의지하고 있었다.
친구네 집에 가서 자는 것도 싫어하고, 친지의 집에 가는 것도 싫어했던 아들이다.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여행도 싫어했고, 기숙 학교를 가는 일은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아들이다.
그런 아들이 이제 가족을 떠나 살게 되었다. 그런 생활을 바래올만큼 마음도 자라 왔다.
아들을 키워오는 동안 내 마음도 그만큼 단단해지고 넉넉하게 자라온 줄 알았다.
그런데 아들보다 내가 더 허둥대고 있다.
어쩌지, 어쩌지..

자식을 키운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식을 놓는 일이라고 나는 쉽게 글로 써 왔다.
때가 되면 꼭 잡아왔던 손을 스르르 놓을 줄 알아야 한다고, 아이가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길을 멈칫거리고 망설이지 않도록 의연하게 내 자리를 지키며 보내줘야 한다고
잘난척 해 왔는데 나는 내 글보다 아직 여리고 부족했구나... 들여다보고 있다.

아들이 없으면 집은 정말 고요하다.
나와 딸들은 서로 큰 소리 날 일 없이 잘 지낸다. 버럭거리며 인상을 쓰며 싸우던 아들이
없는 집에서 딸들과 지내는 일상은 많이 다를 것이다. 아주 많이 내 생활이 달라질것이다.
늘 바래왔다고 생각했다. 그런 날이 빨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문득 마음이 저리다. 벌써부터 허전하고 바람이 휘이 불어대는 것 같다.
이렇게 연연해 하는 마음으로  이 험한 세상에 어떻게 아이 셋을 낳아 지금껏 길러왔을까.

이젠 때가 되었다.
꼭 잡고 있던 아들의 손을 놓을 때가 왔다.
이젠 마음의 손으로 아들을 잡아 줄 때다.
아들은 잘 할것이다.
나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렇게 또 다시 엄마가 되어가는 시간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아이가 자라는 시간은
벅차고 눈물겹다.
내겐 여전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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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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