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 아이는 두 번째 수술을 받았다. 1년 전 발등에 이어, 이번엔 종아리 부분을 절개해 과다형성된 지방층을 잘라내는 수술이었다. 발등에 비해 절개 부위가 더 컸지만 수술 시간은 오히려 짧았고, 아이는 하룻밤 입원 후 바로 걸을 수 있을 만큼 회복이 빨랐다. 그렇게 수술 다음 날 퇴원한 아이는, 곧장 놀이터로 향했다. 아직 본격적인 추위가 들이닥치지 않은, 11월 초의 한낮이었다. 응달이 져 바람이 부는 곳은 쌀쌀했지만, 햇빛이 잘 드는 곳에 앉아 있으면 따뜻한 기운마저 느껴졌다. 바로 엊그제 수술을 받았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평소와 똑같이 모래놀이터를 찾아 삽을 들고 땅을 파는 아이를 보며 나는 혀를 내둘렀다. 그 놀라운 광경을 사진으로 담아 SNS에 올리기도 했다. 이 아이를 좀 보라고. 그건 사실, 놀라움의 표현이기도 했지만 깊은 안도의 표현이기도 했다.

 

그렇게 이틀을 멀쩡히 보내고 맞은 금요일 저녁, 아이와 장을 보고 다시 차에 오르려는데 아이의 오른쪽 바지가 피로 흥건히 젖어 있는 걸 발견하고 그야말로 혼비백산했다. 그날부터 한 달 넘게, 아이의 다리에서는 수시로 출혈이 생겼다. 절개 부위 처음과 끝, 봉합 실이 없는 부분이 살짝 벌어져 있었는데, 앉거나 서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혈액과 림프액이 하지로 몰리면서 출혈이 시작되곤 했다. 림프액이 많이 섞인, 묽고 연한 혈액이 순식간에 아이의 바지를, 양말을, 신발을 물들이는 광경을 몇 차례씩 보자니 하루에도 몇 번씩 한숨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아이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놀고, 놀고 또 놀 뿐이었다.

 

그런 다리 상태로는 도저히 어린이집에 보낼 수가 없어 당분간 쉬기로 하고 가까이 사는 친구를 집으로 불러 놀던 어느날. 아이는 친구와 함께 침대 위에서 점프를 하겠다고 뛰었다. 한발 뛰자마자 주르륵, 흘러내리는 피에 놀라 엄마~~~~~~!!!!!” 하고 기겁을 하며 거실로 뛰쳐나왔지만, 그때뿐이었다. 지혈을 하고, 붕대를 갈아주자 아이는 다시 놀기 시작했다. 평소 좀처럼 할 일이 없는 애원을 해도, 큰 소리로 다그쳐보아도 소용 없었다. 아이는 저녁이면 붕대 감은 다리를 하고서도 아빠와 춤을 추며 놀았고, 아침이 되면 이런저런 놀이감을 부려놓고 앉아서, 서서 쉼없이 놀았다. 아이의 수술 부위는 처음의 회복세와는 달리 이래저래 어려운 상황에 접어들었지만 그 걱정은 우리 몫. 아이에겐 아무 상관 없는 일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피에 흠뻑 젖은 붕대를 갈아야 하는 엄마가 실은 비위가 약한 사람이라는 것도, 그래서 카펫에 스며든 피를 닦아 내다가 현기증이 나서 주저앉아버렸다는 것도, 아이에겐 아무 상관 없었다. 그저 놀고, 놀고, 또 놀았다. 마녀 놀이, 풍선 던지기 놀이, 선생님 놀이, 의사 놀이를 번갈아 해가면서

 

그러던 12월의 어느 밤, 아이는 급기야 급성 염증 증상으로 갑작스러운 고열과 통증에 시달렸다. 웬일인지 잠을 깊이 자지 못하고 자꾸 깨어 안절부절 못하던 아이가 결국 다리가 아프다며 자지러지는 걸 보고 새벽 두시에 아이를 안고 동네 종합병원 응급실로 달렸다. 응급실에서는 백혈구 수치가 너무 높아 염증인 것이 확실해 보이지만 여기 있기보단 수술한 의사들을 직접 보는게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새벽 다섯시에 이곳에서 100km 떨어져 있는 아동병원 응급실로 달렸다. 그리고는 그 길로 아이는 3 4일간 꼼짝없이 누워 항생제 치료를 받아야 했다


입원 기간 동안, 아이는 수시로 울먹였다. 주된 호소의 내용은 놀고 싶다는 것이었다. 물론 아이는 병원에 있는 내내 놀았다. 집엔 없는 TV도 실컷 보고, 그림도 그리고, 병원에서 선물해 준 동물 인형을 데리고 놀기도 하고, 카드 놀이도 하고, 입원실 바로 옆에 있는 놀이방에 가서 장난감도 가지고 놀았다. 문제는 항생제와 링거 탓에 마음대로 움직이거나 걸을 수 없다는 거였다. 집에 있으면 특별난 장난감 없이도 그저 이것 저것 부려놓고 얼마든지 재미나게 놀 수 있다. 하루 종일 가위질, 풀칠, 만들기, 짓기, 부수기, 줄 세우기, 구슬 놀이, 춤추기 등등을 오가면서 말이다. 그런 아이를 병원 침대에 묶어두고 다리 밑엔 쿠션을 받쳐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어 놓았으니 울분이 쌓일 수밖에! 삼일이 지나도록 열이 떨어지지 않아 하룻밤 더 있어야겠다고 결정나던 날, 아이는 급기야 집에 가서 놀고 싶어엉엉..”하고 소리내어 울었다. 그 울음 소리를 듣는데, 미안하게도 웃음이 피식, 새어나왔다. 너는 정말, 어쩔 수 없구나. 어쩜 그렇게 내내 노는데도 계속 놀고 싶다는 말이 나오니. 우는 아이를 품에 안고 숨죽여 큭큭대며 건너편에 있는 남편을 쳐다보는데, 남편 역시 어이 없는 눈을 하고 입가로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고 있었다. 아아, 정말 너는. 천상 아이구나. 그저 당장 뛰어놀고만 싶은, 천상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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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증으로 입원해 있던 모습을 그린 그림. 심지어 이 그림 속에서도 아이는 웃고 있다. 인형, 카드 놀이, 그림 그리기 등등의 놀이감 덕분이었다.>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더니, 정말 그런가보다. 수술을 하고, 붕대를 감아야 하고, 수시로 피가 흘러도 아랑곳하지 않고 놀아야 할 만큼, 아이에게 놀이는 마치 반드시 지켜내야 하는 신성한 인것만 같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시작해 쉼없이 놀아 놓고도 잘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아쉬움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아이를 보면 가끔 어이가 없다.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놀아야 풀린다고도 한다. 남들과 다른 몸을 타고 난 이 아이가 겪는 어려움은 여느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과 좀 다른 데가 있다. 병원엘 자주 드나들어야 하고, 각종 시술과 약물 치료가 필요할 때가 있고, 때로는 통증이나 출혈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의 시선, 친구들의 언행에 상처를 받는 일도 종종 생긴다. 그런 아이에게, 놀이는 그 자체로 치유인 것도 같다. 밖에 나가 원하는대로 움직이며, 달리고, 만져보고, 매달리고, 던지고 받으며, 때로는 친구와, 때로는 엄마 아빠와 놀이에 흠뻑 취해 깔깔 웃으면서 아이는 남들과 다른 몸, 그 몸으로 인해 받는 신체적, 정신적 상처를 스스로 회복해낸다. 수술과 갑작스러운 입원을 거치면서도 내내 놀 궁리만 하는 것도 어쩌면, 그동안 매일 빠지지 않고 먹어 온 이 놀이밥덕이 아닐까.

 

사실 나는 어릴적 그리 잘 노는아이가 아니었다. 밖에 나가는 것도 그리 좋아하지 않고, 몸 쓰는 놀이를 즐겨본 적도 없다. 그래서인지 나는 좌절감과 우울감이 닥치면 이 마음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몰라 자꾸 안으로만 파고든다. 그나마 글 쓰는 일을 좋아해 글로 풀어내긴 하지만, 가끔은 그걸로 도저히 개운해지지 않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런데 시골에서 자라며 어린 시절 마음껏 몸을 움직이며 놀았던 남편은, 좌절감과 우울감이 닥치면 우선 밖으로 나간다. 맑고 찬 공기를 들이마시고, 달리고, 걸으며 힘든 마음을 추슬러낸다. 어릴적 바깥에서 실컷 놀아본 경험 덕분에 남편은 아이를 데리고 나가 노는 일에도 능숙하고, 아이와의 바깥 놀이를 즐긴다. 아이를 데리고 한겨울 꽁꽁 언 습지대에 가서 얼음판 위를 걷고, 눈 내린 다음날 언덕진 곳을 찾아 썰매를 타고, 퇴근길 아파트 베란다에 달린 길다란 고드름을 똑 따와 아이에게 쥐어주는 남편 덕에 아이는 영하 20도를 밑도는 추위에도 힘든 줄 모르고 놀았다. 따뜻한 집안에 있는데도 고드름을 가지고 놀기 위해 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 목도리를 두르고, 무릎 담요로 망토까지 만들어 두른 다음 여기는 얼음 나라라며 호들갑을 떠는 아이와 함께, 우리도 깔깔 재미나게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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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꽁꽁 언 얼음판 위를 걷던 날을 그린 그림>


잠들기 직전까지 한껏 웃으며 놀고, 꿈결에도 무엇이 그리 재미난지 까르륵, 웃는 소리를 내며 잠꼬대를 하고, 잠에서 깨자마자 놀거리를 찾아 온 집안을 헤집어놓는 이 아이 덕에, 아이들에게 놀이밥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지 알게 됐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뭔가 재미난 일 없나하고 눈 반짝이며 찾으러 다니는 모습을 볼 때면 부럽기까지 하다. 점점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힘에 부치는 우리와 달리 언제나 벌떡, 일어나 놀거리부터 찾는 아이를 보면 안심이 되기도 한다. 바로 이런 모습 덕분에, 우리는 아이가 조금 아파도, 조금 다쳐도, 크게 걱정하거나 불안해하지 않는다. 조금 덜 먹어도, 몸무게가 조금 덜 나가도, “잘 노니 됐다이 마음 하나로 얼마든지 아이를 보아 넘길 수 있다. “마음껏 놀았던 아이는 스스로 세상을 버리지 않는다는 글귀를 읽으며, 아이 몰래 빌어본다. 비록 커다란 다리, 남들과 다른 몸을 가졌지만, 부디 즐겁게, 기쁘게 이 생을 살아가기를. 부디 어떤 일이 있어도 스스로 세상을 버리는 일만은 일어나지 않기를. 엄마 아빠가 언제까지나 너의 놀이밥을 지켜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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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 편해문,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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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슬
'활동가-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막연했던 그 꿈에 한발 더 가까워진 것은 운명처럼 태어난 나의 아이 덕분이다. 아이와 함께 태어난 희소질환 클리펠-트리나니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의 약자 KT(케이티)를 필명으로 삼아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 라는 제목의 연재글을 썼다. 새로운 연재 <아이와 함께 차린 글 밥상>은 아이책, 어른책을 번갈아 읽으며 아이와 우리 가족을 둘러싼 세계를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내 아이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함께 잘 키워내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글과 삶을 꾸려내고 싶다.
이메일 : alyse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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