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호박-4.jpg

 

 

하늘이가 단호박죽을 먹고 싶다고 말을 하자

바다와 내가 나도!” 했다.

 

얼마 전에 사먹은 단호박죽이 참 맛있었는데

새알이 몇 개 안 들어있어서 아쉬웠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가 직접 새알을 만들어서 듬뿍 넣고

단호박죽을 끓여 먹자고 했다.

 

곧 단호박을 사기 위해 길을 나섰고

아이들은 여느 때처럼 길에 있는 모든 것에 한 눈을 팔며 걸었다.

 

, 이 꽃 좀 봐.”하고 꽃을 만지고

나무껍질이 벗겨지려고 해.”하고 나무껍질을 잡아당겨보고

내 요술 지팡이야!”하고 나뭇가지를 주워서 들고 걸었다.

 

가게 안에서 밥을 먹고 있는 아저씨를 보며 뭘 먹고 있을까?” 하고

휴가 나온 군복 차림의 군인들을 보며 저 삼촌들은 누구야?” 했다.

 

이렇게 짧은 거리를 길게 걸어 식료품점에 도착하니

아이들은 단호박과 함께 엄마가 사줄 만한 간식을 찾느라 바빴다.

그 날은 사탕을 먹겠다고 해서 두 개씩 고르라고 하니

둘이 사탕이 담긴 유리병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양 손에 하나씩 사탕을 들고 왔다.

 

그렇게 신중하게 고른 사탕을 입에 하나씩 넣고

내 사탕 맛, 네 사탕 맛을 이야기하며

집까지 금방 걸어왔다.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얼른 손을 씻고 본격적인 요리를 시작했다.

내가 단호박을 삶아서 갈고 찹쌀 물을 부어 젓는 동안

아이들은 재잘거리며 새알을 빚었다.

 

아이들이 빚은 크고 작은 새알을

익어가는 단호박죽에 퐁당퐁당 담그고

동실동실 떠오르길 기다리며 계속 저었다.

 

냄새 좋다~!”

색깔 예쁘다~!”

드디어 자기 앞에 놓인 모락모락 김이 나는 단호박죽을 보고

입술이 길어지게 웃음을 지은 우리는

뜨거운 죽을 불어가며 조심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야 이거 어떡해! 너무 맛있어!”

이렇게 맛있을 줄 몰랐어!”

너희들이 만든 떡 진짜 맛있다!”

 

이야, 이건 아빠 꼭 줘야 되!”

, 진짜 맛있다!”

, 죽을 만큼 맛있어!”

 

으음~~~!!!! 마이쪄!!!”

 

하고 나와 바다와 하늘이는 감탄했다.

 

이 날은 단호박죽을 만들어 먹으면서 감탄하고

먹고 난 후에도 감탄하며 거의 하루를 보낸 것 같다.

 

어린이집을 다니지 않는 바다와 하늘이는 나와 이렇게 지낸다.

 

천천히 요리를 해서 먹고

바닷가 길을 길게 산책하고

도서관에서 지겹도록 책을 보고

놀이터와 잔디밭에서 시간제한 없이 뛰어 논다.

 

주변에서는 어린이집을 보내라고 성화지만

나는 이렇게 자유롭게 노는 아이들을 보는 것이 좋다.

바다와 하늘이도 이렇게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고.

 

이렇게 소소한 일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하고 감탄할 수 있는 지금에

고마워하며 하루 하루를 보낸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첨부
최형주
이십 대를 아낌없이 방황하고 여행하며 보냈다. 서른 살이 되던 해에 시골 대안학교로 내려가 영어교사를 하다가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 지금은 두 딸 바다, 하늘이와 함께 네 식구가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에 살고 있다. 부모님이 주신 '최형주'라는 이름을 쓰다가 '아름다운 땅'이라는 뜻의 '지아'에 부모님 성을 함께 붙인 '김최지아'로 이름을 바꾸었다. 베이비트리 생생육아에 모유수유를 하며 겪은 에피소드를 그림과 글로 표현한 ‘최형주의 젖 이야기'를 연재 완료하였다.
이메일 : vision323@hanmail.net      
블로그 : https://blog.naver.com/jamjamlife

최신글

엮인글 :
http://babytree.hani.co.kr/31771388/b5e/trackback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
2045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아이와 함께 한 1박 2일 제주여행 imagefile [2] 홍창욱 2018-03-08 9599
2044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아들, 또 한 계단을 오르다 imagefile [7] 신순화 2018-03-07 12002
2043 [박진현의 평등 육아 일기] 장래희망? 내가 어떻게 알아! imagefile [3] 박진현 2018-03-06 18693
2042 [정은주의 가슴으로 키우는 아이] 선생님이라는 큰 선물 image [3] 정은주 2018-03-04 8768
2041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수험생이 있는 가정의 새해 다짐 imagefile [5] 윤영희 2018-03-01 20932
2040 [아이와 함께 차린 글 밥상] [어른책] 아이를 품는 헌법 imagefile [2] 서이슬 2018-03-01 19454
2039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품 떠나는 아들, 이젠 때가 왔다 imagefile [9] 신순화 2018-02-25 10401
2038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명절 대이동 보다 힘들었던 놀이기구 타기 imagefile [2] 홍창욱 2018-02-24 8240
2037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35년 만의 미투 (me too) imagefile [12] 신순화 2018-02-21 11088
2036 [아이와 함께 차린 글 밥상] [어른책] 매일 먹는 놀이밥 imagefile [8] 서이슬 2018-02-20 9468
2035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아내와 빵 터진 둘째어록 imagefile [2] 홍창욱 2018-02-20 10444
2034 [정은주의 가슴으로 키우는 아이] 그래도 아이는 자란다 imagefile [8] 정은주 2018-02-19 9421
» [최형주의 빛나는 지금] 야 이거 어떡해! 너무 맛있어! imagefile [4] 최형주 2018-02-19 7972
2032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대놓고 하는 낯 뜨거운 이야기^^ imagefile [10] 신순화 2018-02-14 11966
2031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아빠의 피아노 배우기 imagefile [5] 홍창욱 2018-02-13 11468
2030 [정은주의 가슴으로 키우는 아이] 배제를 배제하는 스포츠 image 정은주 2018-02-09 6519
2029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아들 친구 11명, 집 1박2일 imagefile [6] 신순화 2018-02-07 12066
2028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왜 육아 모임은 엄마들끼리만 하는걸까? imagefile 홍창욱 2018-02-04 8259
2027 [즐거운아줌마의 육아카툰] [육아카툰76편] 호떡의 신분상승~ imagefile [9] 지호엄마 2018-02-02 9842
2026 [소설가 정아은의 엄마의 독서] 행복해야 한다는 또 하나의 의무 - 슈테파니 슈나이더, 《행복한 엄마가 행복한 아이를 만든다》 imagefile 정아은 2018-02-01 9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