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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은 작가와 `정치하는 엄마들'이 함께 한 집담회 전문

양선아 2018. 02. 15
조회수 1027 추천수 0

엄마들이 말하는 ‘엄마의 오늘’

 

백소현 저는 기존 육아서에서 “엄마가 일관성을 갖고, 엄마가 중심을 잡고 뭔가를 해야한다”라고 주장하는 것에 불만이 많았어요. 사실 교육정책이고 뭐고 계속 바뀌는데 어떻게 우리가 중심을 잡을 수 있나요? 저도 그런 육아서를 보고 ‘중심을 잡아야 해, 잡아야 해’ 했는데, 이 책을 보고 ‘아, 다른 사람도 나랑 똑같구나’라는 위안을 했어요. 
 
정아은 사실 그런 사람이 없잖아요. 누가 일관성을 갖고 처음부터 끝까지 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딨어요?
 
백소현 블로그 보면 그런 것 같아요. (다같이 웃음)
 
정아은 그렇게 하는 사람들도 제 생각에는 고정관념에 갇혀 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는 저도 이제 막 깬 것에 불과하지만요. 이 ‘모성 신화’의 아리아가 너무 강해서 굉장히 깨긴 힘든 것 같아요. 다 깨려고 하는 게 아니라, 뭔가 작은 것 하나라도 발언을 해도 그렇고 행동을 해도 그렇고, 저는 조금이라도 이 쪽으로 가서 발언을 하려고 해요.

 

정유진 <엄마의 독서>에서 육아서가 자기 계발서로 읽힌다고 말하신 부분에서 공감이 많이 됐어요. 저는 그런 이유 때문에 육아서를 잘 안 읽는 편이었거든요. 서점에서 그런 육아서를 보는 순간 너무 숨이 막히는 거예요. 내가 꼭 이런 엄마가 돼어야 돼? 그런 생각이 드는거죠. 약간 반발심도 생겨 일부러 안읽었어요. 그런데 애들을 키우면서 애들이 서로 기질도 다르고 콘트롤 하기가 힘들었어요. 저도 모르게 육아서를 자꾸 읽게 되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애들한테 화내지 않으면서 아주 온화한 모습으로 잘 할 수 있을까 하면서요. 저의 절실함 때문에 육아서를 찾는 모습을 보고 ‘아 육아서 시장이란 것도 이런 불안한 엄마들한테 얼마나 타켓팅을 잘 해서 책을 팔아먹고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 엄마들이 중심을 잡고 자기 확신을 갖고 아이를 키우는 문제는 대개 어려운 문제잖아요. 작가님도 책을 읽으면서 길을 찾아가는 것 같은데, 육아서를 찾으면서 아이들을 양육하는 노력도 해보셨고, 반대로 다른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어떤 흔들림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정아은 저는 육아서의 엄청난 신봉자였어요. 그게 길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어요. 대개 불안하고 어떻게 해야할 줄 모르겠고... 애들은 정말 내 의도대로 안되지 않나요? 앞으로도 안될 거고. 육아서를 보면 그것을 잡아줄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처럼 보이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그 육아서가 시키는대로 정말 잘해서 좋은 엄마가 될 거라는 욕심이 강했거든요. 그래서 읽어보고 밑줄치고 포스트잇 붙어보고 그랬는데 안되는거예요. 늘 악마같은 내가 결국 튀어나오고 막. 정말 강연도 많이 다녔거든요. 그런데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아니라는 생각도 하고, 다른 책들을 통해 알게 되는 것도 있고, 경험을 통해서도 이게 전혀 육아서대로 한다고 될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결국에는 지금 돌아보면 지금 육아서대로 할 수 없는 이유가 육아서에는 굉장히 공학적인 것만 가르쳐주잖아요.  예를 들어 ‘아이에게 지극히 사랑의 말을 하라’라고 한다면, 엄마의 입에서 사랑한다는 말이 나오기까지 전후 과정이 있어요. 그 말이 나올 수 있는 상태가 있잖아요. 사랑한다는 말은 그것의 마지막 과정이잖아요.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마지막의 기술일 뿐이고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의 커다란 마음, 즉 사랑인데, 이 사랑하는 마음이 어떤 상태에서 나올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것에 대한 답은 하나도 없어요. 말초적으로 입끝에서 나오는 사랑의 말과 이것만 하라고 가르치는 거예요. 그러니까 기존 육아서가 다 그런 것은 아니고, 일부 육아서는 그런 것만 강조해요. 엄마의 마음은 다 상관없고 이 마음이 어떤 상태든지 무조건 사랑하라고 말하는 거예요.
 
엄마들 스킬만 가르치는거죠.
 
정아은 네. 우리가 받았던 사지선다형 교육과 하나도 다를바가 없죠. 그런 거니까 그게 먹히지 않았던 게 당연한 것 같아요.
 
양선아 과거 할머니나 어머니 세대는 아이를 키운다는 것을 대가족 체제에서 경험적으로 배우고 `아이가 이럴 땐 어떻게 해야한다’고 경험을 통해 배웠어요. 그런데 저희 세대는 핵가족 체제도 들어서고 남녀평등 사상이 서서히 확대된 시기였죠. 저희 집만 해도 공부 열심히 하지 부엌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어요. 그런데 결혼을 하니까 내던져지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요? 그렇다고 해서 아이를 키운다는 게 뭔지, 모유수유가 뭔지, 내가 결혼 상태 이후 어떤 상태가 될 거라거나, 부모로서 어떤 준비가 필요한다던가 등을 배운 적이 없지요. 그런 상태에서 당장 손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은 육아서였지요. 예전에 ‘책육아’ ‘글로 배우는 육아’ 라는 키워드로 기사도 쓴 적 있었던 같아요. 그런데 그렇게 책으로 육아를 배우다보니 책 내용을 내 경험에 버무려 적용시키는 게 아니라, 책 내용 그대로 무조건 해보려고 하는거죠. 그런데 해보니까 안되죠. 애들은 저마다 다르니까요. 제가 봤을 땐 우리 세대가 책육아 세대이고, 아이를 키운다는 게 뭔지, 구체적으로 결혼 생활에 대해 잘 모르고 엄마아빠가 된다고 생각해요. 육아서가 자기계발서로 읽혔다고 하셨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겠어요?
 
백소현 <엄마 냄새 3시간>이라는 책이 있어요. 저는 그 책 제목만 봐도 ‘내가 3시간 동안 곁에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유진 오은영 박사의 <욱 하는 부모, 화내는 부모> 같은 책들도요. 그런 책들은 육아 스킬을 길러주고, 엄마 감정 조절을 잘 하라는 내용들이예요. 그런데 저는 그런 생각이 드는거예요. 엄마도 사람인데, 어떻게 늘 감정이 편안할 수 있어요? 애한테 화가 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작가님 말씀하신 것처럼 엄마가 행복해야지 아이가 행복하라는 말에서 행복감마저 아이를 위해서 해야 한다는 의무감만 주입시켜요. 내가 당장 행복하지 못한데, 애들 행복한게 뭐가 대수야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예요. 감정 조절 잘 못하는 엄마들이 그것 때문에 또 죄책감에 시달리는 악순환의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옛날에는 육아서가 아이를 훈육하거나 그런 내용을 다뤘다면, 이제는 엄마의 자존감 등을 공격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요. 무게추가 이동하긴 했지만, 결국은 엄마에게 모든 문제를 집중시킨다는 점은 같아요.  
  
정주은 아빠는 고민 자체를 안하는 것 같아요.
 
정유진 아빠들은 예외가 돼 있어요. 서점 가서 보면 가끔 아빠들이 육아를 하기로 결심해 육아를 한 아빠들의 책이 있어요. 뭔가 그런 아빠들은 자랑스러운 듯한 성과물로 책을 내잖아요.
 
백소희 웃기지 않아요? 자기 한 달 육아휴직 한 것을 가지고 책을 써요. 아니 여자들은 평생 아이를 돌보는데 말이죠. 
 
정유진 아빠들의 경우 육아에 동참하면 성과물로 포장하고 생색내기 좋은지 알겠어요.
 
신은희 어떤 모임에서 남자분이 패널로서 참여했어요. 그 분이 육아를 했는데, 언제나 그 분은 대단하다라는 분위기이고 인정을 받았어요. 반찬 가게 아주머니도 그 분이 오면 ‘남자가 육아 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며 반찬도 더 주고 잘해줘요. 남자가 육아를 전담해서 할 경우 그 주변의 문화는 그 남자를 인정하고 챙기고 돌보는 문화가 있더라고요. 그때 이야기한 게 저는 그게 당연한 것인데 왜 칭찬하고 있지? 하면서 한편 또 생각은 그런 것도 너무 안돼 있으니까 우쭈쭈 해서 그런 문화를 만들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갈 길은 먼데 어떠한 포지션을 선택하고 전략을 세워야 할까.

백소현 도대체 왜 맨날 우쭈주 해줘야 할까요? 여자들 일한다고 우쭈주 안하잖아요. 왜 맨날 우쭈주 해야줘야 하는 건지.
  
김정덕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어요. 울컥 하는 게 느껴저서. 한번 쯤 그렇게 다들 겪고 지나갔구나. 바로 옆에 있던 남편과도 나눌 수 없는 그런게 절실하게 느껴졌어요. 독백식으로 ‘남편도 그렇게 힘들었구나’라고 말하셨는데, 남편과 실질적으로 대화를 하셨는지, 내가 생각하는 것에 대해 남편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물꼬를 틀 수 있는 지점이 있었는지 궁금했어요.
  
정아은 직접적인 대화로 물꼬를 틀지는 않았었는데요. 결국 변화는 내 변화에 있는 것 같아요. 모든 변화는 내 변화에서 온 것 같아요. 남편과 아무리 대화를 하려고 해도, 내가 변해있지 않으면 대화가 안돼요. 남편에게 원망의 마음이 있었는데, 너무 힘들었던 그 시기가 지나가고 언제 남편을 이해했냐면요. 소설을 쓰면서 남자 캐릭터를 잘 써야 하는데, 남자 캐릭터를 잘 쓸수 없잖아요. 어디를 가더라도 남자들과 이야기를 하게 되고, 남자가 쓴 책, 특히 남자 심리학자가 쓴 책을 다 골라서 봤어요. 실감나게 쓰기 위해서. 그것을 읽다보니까 남편이 이해가 되는거예요. 특히 남자 심리학자가 쓴 남성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요. 그 전에는 남자를 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나는 불행한데 남자는 행복해라고 이분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아닌거예요. 남자들 너무 불쌍한거예요. 1프로의 상위권 남자 빼고는 그 아래 있는 남자들은 다 불쌍하구나. 착취 당하고 있고. 그런 것을 이해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책들을 읽으면서. 그런 데에서 남자나 남편에 대한 연민의 시선이 생겼어요. 나중에는 칼 마크르스의 자본론을 40살 이후에 읽었는데, 자본주의가 얼마나 냉정하고 잔혹한 것인지, 거기서 남자를 노동자로 만들고, 노동자를 뒷받침하는 존재로서 여성을 자리매김하는 시스템이 교묘하고 잘못된 것인지 알게 되면서 남편에 대해서 연민이 생겼어요. 나처럼 불쌍하구나.
  
백소현 작가님이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굉장히 통찰적으로 찌르시고 그러는데, 유독 남편에 대해서는 부드럽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는 약간이 생각이 달랐던 게 상위 1프로의 남자에게 집중돼 있고 남자나 여자 모두 피지배자이고 착취당하는 게 맞는데, 그에 비해서 여자들은 더 밑에서 서포트하고 있잖아요. 계급으로 나뉘자면 여자는 더 밑의 계급인데 왜 여자들이 그 계급이 남자들에게 연민을 갖는 걸까요? 그 밑의 계급 여자들이 관심을 갖는데, 저 사람들은 우리를 연민하지 않잖아요. 오히려 지배 피지배자 관계이니 더 착취를 해요. 지금도 여성혐오 현상이 나타나는 게 약한 고리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거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우리가 굳이 또 연민을 가져줘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그게 현실적이고 전략적이라는 것은 저도 알아요. 그렇긴 한데 왜 우리가 그들을 연민하고 알아줘야해? 그들이 알아줄까? 잘 모르겠어요. 개인적인 관계에서는 다른 이야기예요. 저도 남편과 잘 지내고 불쌍한 면도 있긴 한데, 사회구조적으로 확대시켰을 때 `그게 과연 잘 맞나?’ 잘 모르겠어요.
  
김점덕 남편이 이런 구조에 있다는 것도 이해하겠고, 물론 누가 누구를 착취하는냐로 따지면 남편이나 나나 같은 위치에 있어라고 사회적으로는 얘기할 수 있겠지만요. 가정안으로 들어왔을 때 남편분과 저의 남편을 비교할 수 밖에 없잖아요. (웃음) 저는 그 부분이 궁금했어요. 나는 이렇게 치열하고 너무 힘들고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책을 읽고 의식을 깨부수려고 노력하는데, 과연 이 사람은? 이 사람은 어떤 생각으로 살고 있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어떨 땐 보면 아무 생각도 없는 것 같기도 해요. 자기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충분히 살 만하거든요. 답답할 때가 많아요. 남편은 어떨 땐 아이에게 너무 관대해요. 저는 그런 남편을 보고 어떻게 저렇게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지? 나한테 없는 여유가 (남편에게)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 위치를  알게 할 수 있는 지점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님이 화자이다보니 남편을 이해하는 상황이 왔을 때 남편도 힘들었구나 이렇게 이해했는데, 과연 남편은 작가님에게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답을 줬는지 궁금해요.
  
정아은 아녜요. 그런 것 없었어요. 이 책을 쓰는 기조는 해결책이라던가 그런 게 아니잖아요. 그저 나의 찌질함을 고백하는... 지금도 미칠 것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뿐이고... 남편하고도 답이 있거나 소통으로 해결했거나 그런 것은 없었어요. 뭐냐면 그냥 제 안에서 변화가 일어난 거예요. 남자라는 종족에 대한 변화라고 할까. 여자한테는 살림과 육아라는 것이 엄청나잖아요. 하루 삼시세끼 매일 돌아오고. 무보수 노동이잖아요. 남자들이 하는 노동은 보수 노동이고. 가사 노동이 폄하되는 이유가 부불 노동을 한다는 것 때문인데요. 굉장히 고생하면서 집에서 논다거나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산다는 말도 안되는 얘기를 듣잖아요. 이게 부불 노동이라는 것 때문이예요.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 저는 대개 이 면에서만 분노한 편이었는데, 남자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깨닫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자가 경쟁하면서 느끼는 스트레스, 이제는 종신고용사회도 아니고 툭하면 밀려나잖아요. 남자들이 받는 그 스트레스는 저한테는 없는 영역이라서 그 영역을 굉장히 작게 봤다는 걸 알게 됐어요. 툭하면 밀려나고, 돈을 못버는 남자가 사회에서 받게 되는 대접, 돈을 못벌면 거의 인간 취급도 못받는 구조. 아니면 아빠의 이데올로기가 너무 커요. 반드시 자식들을 먹여 살리는 돈을 벌어와야만 너나 자식들이 잘 살아갈거야 라는 이런 무언의 그게 모성 아리아만큼 그만큼 세거든요. 그런 부분에 대한 이해가 생겨난거예요.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러면서도 남자들도 자신의 아버지대와 다르게 가정에도 공헌을 하지 않으면 욕을 먹는 거예요. 여자가 슈퍼맘 콤플렉스를 요구 받는 것처럼은 아니더라도 옛날의 아빠들은 가사와 양육에서 면제 받았잖아요.  그러면서도 자본주의가 지금처럼 극강의 자본주의가 아니었잖아요. 지금은 일자리 자체가 없어지고 있기 때문에 아빠들도 정말 너무 날카로운 칼날 위에서 이러저리 피하듯이 일하고 있는 상황에서, 집안일도 잘 안하면 나쁜 아빠라고 욕먹는거죠 저는 이 지점을 보게 된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남편과 대화를 하고 소통을 해서 해결하고 서로 용서해 그렇게 한 것은 아니고요. 제 마음 속에 슬그머니 저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남자가 겪고 있을 가파른 자본주의, 남편이 대학원에 가려고 했던 것도 제 입장에서는 `이런~ ‘ 했었는데 한참 지나고 제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보니까 대학원을 나오지 않으면 언제까지 이 회사를 다닐 수도 없고 다른 회사로 이직할 수도 없었던 그 상황이 들어오더라고요. 이 사람은 사회에서 처절하게 밀려나지 않기 위해서 사투를 했구나 하는 것을 제가 이해하게 된거죠. 그렇다고 해서 제가 이해의 화신이냐 그런 것은 아니고요.
 
백소현 저도 그 대목에서 욱했던 게 대학원 친구들과 술먹고 왔다고 해가지고... (다들 웃음) 술을 마셨대 이게 뭐야 했어요.  

정아은 그때는 너무 원망스러워서. 원망의 마음은 그대로예요. 다만 그때에 비해서 완화됐던 것 같아요.
 
성지은  저는 궁금했던 게 아까 정덕 언니가 얘기했던 것처럼 남편분은 그러면은 작가님이 화가 낸 것에 대해 남편분이 이해하려고 한 노력과 내가 지나와서는 이렇다라는 이야기를 하셨는지...
 
정아은 그런 이야기는 많이 했죠. 이게 그 사람과 개인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때의 서운함은 그대로 남아있어요. 다만 제 밑바닥에서 남자가 느끼는 고통에 대한 이해도가 없었다가 약간 생긴거죠. 밀려나지 않으려고 그랬구나... 술자리에서 오가는 인맥이나 그런 것에 그런 중요성을 전혀 몰랐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고요. 왜냐면 내가 너무 힘들었으니까요. 그랬다가 지금은 시간이 지나고 약간 이해도가 생긴거죠. 그런데 이게 잘된 구조는 아니지만, 그렇게 돌아가는 사회에서 살아남아서 돈을 벌어와야 하니까 그 사람이 얼마나 각박한 길을 걸어야 했느냐에 대한 이해가 생긴거죠.
 
성지은 그렇게 이해하고 나서는 작가님은 어떻게 좀 달라지셨나요?
 
정아은 제가 마음이 편해진 게 있죠. 저는 이게 우리 둘 사이에 소통을 해서 일어난 결과가 아니라 지식이 제게 준 혜택이었다고 생각해요. 뭔가를 그 현상을 당장 깊이 파고들어 이해하기만 해도 만사 해결하는 듯한 효과가 나오는 것 같아요. 남편이랑 아무리 대화해도 못 풀었거든요. 지금도 대화해서 못 풀고. 뭔가 남편이 서있는 지형을 알고 나니까, 나 혼자 ‘그렇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성지은 상대방을 이해하다보면 내 것을 양보한다던가 더 맞춰준다던지 그런 변화는 없었어요?
 
정아은 그런 변화는 없고요. 저는 원래 양보는 잘 안해요. (다들 웃음) 항상 제가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제가 이해가 되면 저의 말이나 행동이 좀 다르게 나가요. 표정도. 그러니까 남편도 유화적으로 받아들이고, 남편도 하나 해줄 걸 두 개 해주면, 저도 그것에 맞춰서 하나 해줄걸 두 개 해주고. 자연스럽게 되는 게 있지만. 그렇게 이해가 됐다고 해서 제 것을 양보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서. 자기도 모르게 부드러워지는 면은 있죠. 뭐가 안풀리면 그것에 대해서 연구를 하는게 나은 것 같아요. 어설프게 소통하는 것보다 쟤가 왜 그러지? 하고 연구하는 게 나은 것 같아요.
  
정유진 저는 사회생활을 하니까 승진을 해야 하고 자본주의에서 밀려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저도 마찬가지거든요. 남편에 대한 연민, 저는 사실 지금도 안돼요. 지식이 부족한 건지 모르겠지만... 딱 고 상태. (웃음)
 
양선아 남편이 놓인 현실에 대해 이해하게 되면 내가 남편을 대하는  태도도 약간 달라지겠죠. 그런데 남편이 달라지려고 해도 달라지지 못하게 하는 구조가 있잖아요. 정치하는 엄마들도 얘기하는게 아빠들이 육아에 동참하려고 해도 이 사회가 너무 늦게까지 야간 근로도 많고 그렇게 일을 해야만 인정을 받고 하니까 남편들이 가사와 양육에 동참을 못한다. 그래서 노동 시간 줄이고 육아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거죠. 그렇게 나도 동참하고 싶지만 사회 구조때문에 못하는 부분이 있고, 아예 모르는 사람도 있고, 다층적인 것 같거든요. 작가님의 가정은 가사나 양육 분배에 있어 얼마나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정아은 전혀 해결되는 것은 없고요. 항상 투쟁을 하고 있어요. 늘 시간의 배분을 놓고. 아이를 누가 보느냐 하는 것에 대한 투쟁은 항상 그런 상태죠. 일이 있어서 나오려고 하면, 나는 굉장히 특별하게 ‘일을 해야하니까 나가야해’하고 나오는데, 남편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가죠. 늘 진행되고 있고, 해결되지 않고, 앞으로도 여전할 것 같아요. 그런 것 같아요. 아까 남편에게 연민을 느꼈다는 마음도 있었다는 것과 연결되는데, 저는 남편에 대해 샘 내는 마음이 많았거든요. 나는 사회에서 무엇을 유지하려면 난리를 치고 그래야 하고 이게 샘이 나고 지금도 샘이 나는데... 남자들이 맺고 있는 인간관계, 제가 남편에게 샘이 난 것 중의 하나가 여러 사회적 관계망이었어요. 어디가서 승진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도 달라지고 항상 낯선 흥미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게 부러웠어요. 너는 좋겠구나, 나는 항상 늘 쳇바퀴 돌 듯 하면서 이렇게 살고 있는데..... 어느 지점에 이르러서 남자들이 맺고 있는 인간관계라는 별거 아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회사를 나오면 끝나는 관계도 많고요. 겉으로만 죽고 살고 하는 관계도 많고요. 그런 가짜 관계가 너무 많아요. 치이고 스트레스 받고 회사 생활을 끝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에 반해서 여자들이 갖고 가는 관계는 다른 면이 있지요. 인류학, 사회학에서 알려주는데, 인류가 공동체를 잃었지만 마지막까지 끊어지지 않는 관계가 자식이라고 하더라고요. 우리는 주로 여자들이 그런 관계를 끌고 가고 자식들은 엄마와 더 소통하고 그런 것도 있잖아요. 결국 내가 갖고 가는 관계가 진짜일 수 있겠다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것도 위안이 됐어요.
 사회적으로 강제받기 했지만 어쨌든 내가 맺는 관계는 반짝반짝 영혼들을 만나는 세계이잖아요. 이런 깨달음은 아이러니하게도 육아서를 통해서는 절대 못얻었어요. 억지로 아이를 사랑해야해 라는 깨달음을 주려고 했지만. 실제로 제 안에서 따로 남자에 대한 공부를 해서 알아내니까 반작용으로 아이가 얼마나 나는 반짝반짝 영혼과 만나고 있구나 깨달으니까. 자발적으로 나오니까. 내가 맺는 관계가 남편이 맺는 관계보다 훨 낫다라는 생각도 들기도 하고요. 
  
성지은 자식과의 관계에서 저도 그것을 느끼고 아이에 대해서 생각하는데....내가 느꼈던 자식과의 관계를 남편도 같이 느끼면 좋겠는데 참 안돼요.
 
정아은 아이가 주는 에너지, 가장 소중한 관계죠. 남자가 불쌍한거거든요. 여자는 너무 강요받아서 모르고, 아무리 반짝반짝 관계라도 강요가 되고 24시간 가지면 그걸 잃어버리잖아요. 나눠가지려면 할 일을 과감하게 하시고 배분해야 해요. 객관적으로 보이는 이런 것들을 많이 해서 어떻게든 미루고 나가야 해요. 관례화가 되고, 한번 발을 담궈 본 아빠는 육아의 맛, 아이의 영혼과 접속할 때 오는 기쁨을 이만큼이라도 알아요. 아무리 그것을 모르는 아빠라도. 인간이라면 알거든요. 자꾸 담그게 하려면 네가 해야지, 네가 아빤데 안그러면 어떡해 이런 게 아니라 내가 어디 나가야 하는데 막 정당성을 만들어 나가세요. (오늘처럼) 가르치려고 해서는 안되는 것 같아요.
 
양선아 그러면 그 말씀은 보통 엄마들이 맺는 관계가 아이와의 관계밖에 없는데, 사회적 관계를 넓혀서 내가 자꾸 매몰되지 않는 다른 관계들을 만들어나가는 게 방법인 것 같다는 말씀이네요.
 
정아은 네. 엄마가 그렇게 나가면 아빠도 어쩔 수 없이 육아 영역으로 들어오거든요. 그렇게 시간 배분을 나눠야 하는 거죠. 우리는 너무 육아에 치우쳐 있어서 반짝반짝 관계를 너무 짐으로 느끼는 것이고, 남자는 이 혜택을 못누리는 거잖아요. 나뉘는 방법에 대해서 연구를 많이 하시고, 나갈 땐 힘있게 나가야 할 것 같아요. 절대로 “너 그렇게 해” 화내면서 해봤자 안돼요. 활동이라던가 일이라던가.. 뭔가 객관적인 뭔가를 생각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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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한겨레신문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현재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쓰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이메일 : anmadang@hani.co.kr       트위터 : anmadang21       페이스북 : anmadang      
블로그 : http://plug.hani.co.kr/anma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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