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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학교 아이들이 놀러왔다.
시커먼 사내 아이들만 열 한 명이다.
겨울방학에 한 번씩 와서 하룻밤 자며 놀다 가는 것이 이번이 세 번째다.

아들도, 아들 학교 아이들도, 우리집 딸들도 고대하는 만남이다.

큰 딸 학교 친구들 다섯명이 와서 하룻밤 자고 가는 파자마 파티가 있었던 것이 1월 마지막 주말이었고. 1월 마지막 날은 막내딸 생일이라 딸 친구, 언니 친구들, 동네 큰 언니들이며 이웃까지 불러 열일 곱명 저녁을 차려 주었는데 이번엔 드디어 아들 손님들이다. 올 겨울 최대의 이벤트라 하겠다.

하필 아이들이 오는 날, 한파 특보가 내렸다.
하필 아이들 오는날, 남편은 장염에 걸려 장보다 말고 잠실까지 달려가 남편을 싣고 왔다.
하필 아이들 오기 하루 전날 나는 생리를 시작했다.
한 겨울에 큰 손님 치루는 일이 이정도는 되어야 드라마틱한거다.

아픈 남편은 딸들 방에 눕히고 녹두죽을 쑤어 죄금 먹이고났더니 아이들이 몰려왔다.
왁자하게 산길을 걸어왔다. 집안은 금새 아이들의 활기로 가득찼다.
오전부터 기름 보일러를 빵빵하게 틀어 놓았던 2층 거실에서 바로 게임판이 벌어졌다.
열다섯 살부터 스무 살까지의 남자들은 여전히 유희왕 카드와 '브루마블' 게임에 열광한다


편한 곳에 누워 집에서는 눈치 보이는 핸드폰 게임에 열중하는 아이들도 이쁘다.
우리집에서는 뭐든지 다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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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노는 동안 저녁을 준비했다.
메뉴는 비빔밥이다.

오랜 경험으로 많은 사람들 모두 만족하며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비빔밥 만한게 없다는 것이 내 경험이다.

재료비도 저렴하다. 단 시간과 손은 많이 간다.
아이들 중에는 채식을 하는 아이도 있는데 비빔밥을 하면 계란과 고기만 빼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고기 대신 김 가루를 듬뿍 뿌려준다.
생채를 절여서 무치고, 콩나물을 삶아서 무치고, 호박은 새우젓에 볶고, 시금치도 무치고,

버섯은 끓는 물에 데쳐서 기름과 소금에 무치고, 당근을 채 썰어 볶고, 상추를 채 썰고,

다진 고기를 불고기 양념해서 볶고  봄동 겉절이를 하고 계란 후라이를 열댓개쯤 부치고,

그리고 밥 한솥을 했다. 10인용 밥 한 솥으로 모자라서 점심무렵 미리 해 놓은 밥 한 솥은

찜통에 넣고 쪘다.

중간 중간 아픈 남편과 애들 수발 들어가며 이 음식들 장만하는데 반 나절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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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있는 모든 사발과 양푼이 총 동원되었다.
그릇마다 비빔밥 재로를 다 넣어서 아이들 손에 들려주고 밥은 양껏 퍼 가게 했다.
밥 두 솥이 금방 동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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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상 두개를 펴고 아이들이 둘러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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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못 앉은 아이들은 소파에서 먹었다.
우리 아이들까지 열다섯 명 아이들은 비빔밥을 맛나게 먹었다.

"제가 원래 비빔밥,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 비빔밥은 정말 맛있어요"
"이모, 정말 무리하셨네요. 이 많은 걸 다 하시고.."
"전 한 그릇 더 먹을래요"
"밥, 더 주세요"
아이고... 이 아이들은 제대로된 칭찬이 뭔지 안다. 몸에서 열이 날 만큼 바쁘게 움직였지만
잘 먹는 아이들 보니 하루의 피로가 다 날라간다. 이 맛에 애들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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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상을 물리고 한바탕 난리를 쳐가며 치열하게 함께 볼 영화 선정에 침을 튀기다가 극적으로

결정한 영화 '메트릭스 1편'을 다 같이 보았다. 덕분에 나도 오랜만에 네오를 다시 만났다.
중간 중간 1층과 2층을 오가며 이불을 나르고 아이들 잘 이부자리를 펴 주었다.
영화가 끝나자 밤 열시...
"이모.. 출출한데 라면 끓여먹어도 돼요?"
되지, 되고 말고..
열일곱 명 먹은 저녁상 치우고 설거지해 놓은 주방을 다시 뒤집어가며 라면 열댓 개를 끓여냈다.
한 명도 빠짐없이 한 그릇씩 먹었다.

저녁 먹고 고작 두어시간 지났을 뿐인데 하염없이 들어가는 녀석의 배가 경이로울 뿐이다.
기특한 아이들은 라면도 자기들이 끓이고 설거지도 다 한다고 했다.

이 녀석들은 그렇게 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나 마다했다. 학교에서도 설거지를 돌아가면서 다 하는 아이들이다. 이번은 손님이니
내가 대접하마. 어짜피 부엌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이 손을 대야 정리도 쉬운 법이다.

다시 설거지를 하고 행주를 삶아 널고, 거실을 치우고 뒷정리를 마친 시각이 오후 12시 반..
라면까지 먹고 기운 충전한 아이들은 2층 거실에 모여 마피아 게임을 하느라 집안이 떠나가게
소리를 지르고 있다. 웃는 소리가 1층까지 꽉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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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알게 된다. 아이들에게 '놀이'란 얼마나 중요한지 말이다. 

우리집에서 아이들은 오로지 먹고 노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각자 혼자 노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노는 것의 즐거움을 이 아이들은 다 잘 안다.
스마트폰도 좋고, 게임도 좋지만 모두 모여 왁자하게 떠들고, 우기고, 따지고, 웃어가며 노는 놀이가 제일 재미있다는 것을 아는 아이들이다. 이렇게  몇 시간이고 놀 수 있는 아이들이다.
모든 아이들이 이렇지 않을까? 마음껏 떠들어도 되는 장소가 있고, 눈치 주는 어른이 없고, 넉넉하게 주어진 시간과 먹을 것이 있고, 함께 어울릴 친구들이 있다면 아이들은 밤을 세워서라도 즐겁게 놀것이다.


놀면서 다 배운다. 뭐든지 중요하고 귀한 것들을 이렇게 놀면서 다 배울수 있다.
다만 이렇게 놀아보는 기회가 필요할 뿐이다. 그것도 아주 충분하게 말이다.

우리집은 아이들에게 완벽한 장소다. 크고 넓고 아이들만 따로 쓸 수 있는 2층이 있고, 바로 면해 있는 이웃이 없어 밤 늦도록 떠들어도 되고 어슬렁거릴 마당과 아이들을 좋아하는 큰 개들이 있고 자연이 있다. 그러니까 이 집에 사는 한 최대한 많은 아이들을 불러 놀게 해야 한다. 공동주택에서 맘 놓고 떠들수도, 쿵쿵거리며 돌아다닐 수도 없는 아이들에게 이따금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고 그저 신나게 노는 일에만 빠져들 수 있게 하는 집이니까 나는 그런집에 살고 있으니까 최선을 다해 아이들에게 이 공간을 내주어야 한다.이 집에 사는 한 그게 내 도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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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을 한 후 하루 반나절을 잠으로 보내던 아들이 큰 소리로 웃고 떠들며 노는 모습을 본다.
오빠들이 오면 제일 신나하는 두 딸들이 큰 오빠들과 함께 어울려 노느라 신나는 모습을 본다.
내가 제일 애쓰는 것 같지만 제일 큰 선물을 받는 것은 우리 아이들이다. 고마운 일이다.
12시쯤 딸들을 불러냈다. 밤새 같이 놀고 싶어하지만 아직 딸들은 봄방학 전이라 학교에 다니고 있다. 어린 동생들이 없어야 자기들끼리 저 재미나게 놀기도 할 것이다. 새벽까지 1층을 오가며 놀 것이므로 늘 잠을 자던 거실을 비우고 오랜만에 따들 방에서 셋이 잤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잠결에까지 흘러왔다. 새벽 4시까지 마피아 게임을 하고 또 했다는 이야기는 다음날 아침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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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계획은 저녁 상만 차려주고 다음날 아침은 간단히 빵으로 먹는 것이었는데 새벽까지 놀다 잠든 청소년들은 정오가 넘어서야 일어났으므로 나는 부랴부랴 밥 한솥을 하고 카레 한 냄비를 끓였다. 각종 빵과 카레와 전날 먹다 남은 비빔밥 재료가 다시 등장해서 그득한 점심상이 되었다.

다시 뒹굴고, 책을 보고, 함께 텔레비젼의 퀴즈 프로그램을 보며 웃고 떠들다가 아이들은

오후 3시쯤 집을 나섰다. 가기전에 잠을 잔 방의 이부자리를 말끔히 개고, 쓰레기를 다 치운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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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겨울바람이 쌩쌩부는 마당에서 사진 한장 찍었다.
한파 주의보가 내렸으니 마을버스 타고 가라고 해고 아이들은 씩씩하게 산넘어 걸어가겠다며 웃었다.
다들 몇년 씩 보아온 아이들이다. 다 내아들같다. 아니, 다 내아들이다.
짧은 여름방학은 이런 저런 프로그램이 있어 시간이 없고, 겨울방학에도 3주간 계절학기를 마치고서야 5주간의 방학을 얻은 아이들이다.학기 중에는 치열하게 공부하고, 책 읽고, 글 쓰고, 농사짓고, 연극하고, 악기도 하며 열심히 사는 아이들이다. 좁은 학교에서 매일 부딛치며 같이 생활하며 서로를 알아가고, 같이 지내는 법을 배우는 아이들은 어딜 가도 제 몫을 다 하는 책임감들이 있다. 기특하고 귀한 아이들이다.


언제든지 와.
잘 놀고 가요
애쓰셨어요.
고맙습니다.

추운 겨울 바람속에 따스한 말들이 퍼졌다.
고단한 몸에 후끈 더운 마음들이 스몄다.

또 오거라.
우리가 이 집에 사는 한, 이곳은 언제든 너희들 집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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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기운을 회복한 남편이 뒷정리를 도왔다.
아들과 둘이서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2층을 치워 주었다.
평소에는 몸 움직이는 것을 귀찮아 하는 아들도 열심히 몸을 움직였다. 이틀간 엄마가 많이 애써준것이 고마운 것이다. 몇 번이나 주방에 있는 내게 와서 "엄마,고생하네요. 감사해요" 하며 안아주곤 했던 아들이다.


친구네 놀러간 언니 대신 막내 이룸이가 부엌 정리를 도왔다. 맘 먹으면 끝내주게 정리를 잘 하는 야무진 딸은 하는 김에 어수선했던 주방을 말끔히 정리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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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선하던 주방이 말끔해졌다.
큰 일을 한번씩 치루면 아이들도 성큼 성큼 자란다.


결혼 16년동안 가장 많이 는 것은 많은 사람들 밥 해 먹이기다.
8년전에 이사온 이 집 덕분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집에 살면서 큰 돈 들이지 않고 많은 사람들  밥 해 먹일 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힘들어서 어떻게 그렇게 하냐고 하지만 한 번 크게 힘을 들이게되면 그 정도 일을 감당해 내는 능력과 마음도 함께 커진다.
이 집을 오갔던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넉넉하고 능력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아들 학교 아이들이 다녀간 것으로 제일 염려했던 큰 행사가 끝났다.
이 정도 일을 해 냈으니 다음주로 다가온 설날도 가뿐히 지낼 수 있다.
이제 내 몸을 잘 돌보고, 조금 쉬게도 하면서 다시 글 쓰고 책 읽고, 책 엮는 일들을 하다보면 어느새 새 봄이 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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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지만 덕분에 미세먼지 걷힌 맑은 겨울 하늘이 이쁘다.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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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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