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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입고 다니니 일을 당하지”

베이비트리 2018. 02.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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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교시 페미니즘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텔레비전을 틀면 교복과 비슷한 옷을 입고 섹시한 춤을 추는 걸그룹을 쉽게 볼 수 있다. 교복은 학생의 신분을 상징하는 옷인데 아무런 규제 없이 ‘섹시한 복장’으로 받아들여지게 만들었다. 이 사회는 남이 뭘 입건 함부로 남의 몸을 만지지 말고 성적인 시선으로 보지 말라고 가르치는 대신 여학생들이 고른 옷을 규정까지 만들어 참견하고 꾸중했다. 여자아이의 안전을 위한다며 ‘그런 옷을 입으면 당해도 싸지. 넌 그렇게 입지 마’라고 말했다. 덕분에 남성의 55.4%, 여성의 44.1%가 성범죄 원인으로 여성의 옷차림을 지목한다.(2016년 여성가족부 발표 ‘전국 성폭력 실태조사’) 여학생들에게 아이돌과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수많은 여성들을 통해 그런 옷을 입어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말했으면서, 동시에 그런 옷을 입으면 성범죄를 당해도 싸다고 가르쳤다.

초등학교 남자아이로 추정되는 이가 촬영한 엄마의 사적인 모습이 유튜브를 통해 버젓이 돌아다니는 세상이다.(엄마 몰카, 엄마 알몸 등으로 검색해 보길 바란다.)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대를 사는 여자아이가 아빠의 사적인 모습을 촬영해 인터넷에 올리는 일을 벌이진 않는다는 사실에 답이 있다고 본다. 왜 남성은 여성과는 달리 상대방의 몸을 동의 없이 촬영하고, 그것을 공개하는 것으로 관심 받고자 하는 욕구를 채워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이에 대한 답으로 남성이 날 때부터 범죄자로 태어나기 때문이라고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불쾌감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남자아이가 강한 호기심과 성욕을 가져서 그렇다는 말은 이미 학교 현장에서도 아이의 일탈을 감싸기 위한 말로 자주 사용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두 문장은 모두 틀렸다. 남자아이들은 범죄자로 태어나지 않았고 욕구를, 특히 성욕을 감당할 수 없는 존재도 아니다. 따라서 보호자는 남자아이들에게 자신의 욕구를 자제하도록 요구해야 하고,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때에는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당장 아이가 처벌당할까 두려워서, 아이가 저지른 잘못을 성별의 특성이라고 말하며 넘어가려 한다. 그 사이 여자아이들은 자신의 속옷을 들춰보려는 남자아이들의 ‘장난’을 ‘널 좋아해서 그래’라는 말로 감당해야 했다.

여성들이 침묵하지 않은 덕분에 지난해에는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전남 신안에서 일어난 끔찍한 성폭행 사건에서 침묵하는 대신 영웅처럼 나선 여성은, 도서 벽지에서 일하는 모든 교사들의 안전을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만들었다. 한샘에서, 현대카드에서 그리고 문학계, 영화계, 미술계 등 셀 수 없이 많은 곳에서 여성에게 벌어지는 성범죄에 대해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고 나선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했는가. 아이들과 우리는 같은 세상을 살고 있다. 성범죄 피해자인 여성이 선정적인 헤드라인 속 가련한 피해자로 혹은 꽃뱀으로 소비되었음을 아이들도 안다. 성범죄를 저지른 남교사가 다시 학교로 돌아왔음을 안다. ‘남자’ 판사, 의사, 팀장, 행정관, 사원, 경찰도 성범죄를 이유로 자리를 빼앗기지 않았다. 오직 여성들만 사라졌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보여주고 있는가?

서한솔(서울 상천초등학교 교사, 초등성평등연구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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