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랑이 서비스2.jpg


우리집에는 주로 혼자 오지 여행을 잘 다니는 큰 언니가 선물해 준 도자기 종이 있다.
앙증맞은 도자기로 종을 만들고 그 위에 알록달록 이쁜 그림을 그려 넣은 멋진 물건이다.
이 종이 러시아에서 온 건지 조지아에서 온 건지는 잊어 버렸다.


딸랑이 서비스3.jpg



손잡이를 쥐고 흔들면 딸랑 딸랑 이쁜 소리가 나는데, 처음엔 식사 준비가 끝나고

이 종을 흔들면 밥 먹으러 오라는 신호로 여기자고 입을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밥 다 차려놓고 종 찾으러 움직일 시간에 그냥 "밥 먹어!!" 하고 소리 한번

꽥 지르는게 더 빠르다보니 그냥 저냥 집안 한 구석을 차지하는
인테리어 소품이 되어 버렸다.
식구들의 관심에서 오래 잊혀져 있던 이 종의 새로운 쓰임을 생각해 낸 것은

언제나 아이디어 넘치는  막내 이룸이였다.

며칠 콜록 거리더니 마침내 몸살이 심해져서 조퇴를 하고 일찍 퇴근해 누워있는

아빠를 보면서 이룸이는 종이를 가져다가 뭔가 열심히 적더니

이 종과 함께 아빠에게 내밀었다.



'딸랑이 룸 서비스

아플때, 움직이기 힘들죠?
독감, 감기, 몸살 등 아플때 딸랑이를 부르세요!
처음에는 무료! 히히히
15시간 딸랑이 가능
방법 : 그냥 쉽게 딸랑이를 모두 흔들어요. 그러면 이룸이가 옵니다.'

그 아래에는 누워있는 아빠가 '물 주세요' 부탁하는 그림이 있고
'네, 무슨 일 입니까?
알겠습니다.' 라는 글 아래에

- 정성을 다해서 딸랑이- 라고 써 있었다.

남편하고 한참 웃었다.


뒷 면에도 정성스런 글씨로
'딸랑이 룸 서비스
방법 : 최이룸에게 딸랑이 한다고 말씀하시고 신청 후 딸랑이 종을 흔들고 필요한 것
(몇 시, 물, 베개, 얼굴 등등) 을 말씀하시면 한 20초 안에 갖다 드려요.
그러니 딸랑이를 신청해 주세요!!
딸랑이 무료 '라고 써 있었다.

      

맨 밑엔 물론
-정성을 다해 딸랑이 - 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날 남편은 저녁 내내 몇 번이나 딸랑이 서비스를 받았다.
이룸이는 아빠가 딸랑이를 흔들때마다 쌩하고 달려와서 유자차를 타 오고, 핫팩을 가져오고,

잠바를 가져와 입혀 드리고, 과자를 먹여주고, 물건을 치워주고, 어깨를 주물러주는 등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힘들다.
그러나 육아라는 사막 속에는 이런 오아시스가 곳곳에 있다.
팍팍하고, 막막해서 끝이 안 보이는 것 같다가도 문든 문득 이렇게 맑고 시원한 물이 있는

오아시스에서 목 한번 축이고 마음을 쉬게 되면 다시 힘 내어 발이 쑥쑥 빠지는 모랫길을

걸어가게 된다.
아이들이란 정말이지 제 안에 한없이 퐁퐁 맑은 물이 솟아나는 샘 하나씩 품고 있는 존재들이 아닐까.
그 샘에 언제나 맑고 푸른 물이 그득 찰랑이게 하는 데엔 어른들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일부러 메우지만 않아도 샘은 마르지 않는다.

마누라가 끓여준 감기차와 막내딸의 딸랑이 서비스, 그리고 아빠를 끌어 안고

오래 오래 옆에서 같이 뒹굴어준 큰 아들과, 큰 딸의 애정을 약 삼아

남편은 기온이 뚝 떨어진 오늘 새벽에  다시 회사로 출근했다.
저녁에 퇴근하면 딸랑이 서비스를 계속 받을 수 있을테니 회사에서도 힘 나겠다.

나도 한 번 받아볼까? 딸랑이 서비스?

이 이쁜 마음들에 매일 기대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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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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