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군대 두려워하는 마음, 들키면 안돼

베이비트리 2018. 01. 09
조회수 573 추천수 0
한겨레교육 [0교시 페미니즘]

남자아이로 살아본 적이 없다. 그래서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가 미래의 자신에게 편지를 쓰는 진로 수업에서 군대 이야기를 꺼냈을 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여자아이로 초등학교를 다닌 내가 진로 희망에 해군 대신 교사를 쓰는 것이 적절하단 것을 알게 될 시기 즈음, 남자아이들도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선택하게 되는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걸까 싶었다.

군대에서 다루는 무기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하며 내가 두려워하길 기다리는 남자는 많았다. 자신이 겪었던 군대 내 끔찍한 인권침해 사례를 말하기도 했다. 그 이야기는 오직 내가 감탄하거나 두려움을 표할 때만 이어졌다. 동등한 시민으로서 분노하고, 군대를 바꿔보자는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군대는 원래 그런 것이고 그래서 내가 어른이 된 것도 사실이며 이래서 여자는 조직 생활이 힘들다는 둥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 취급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두려워하고 분노했다. 아무도 없는 줄 알고 수류탄을 던졌는데 토끼나 다람쥐가 있으면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자신이 사람을 죽여야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끔찍하게 여겼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알려주었을 때 많은 남자아이들이 그 제도를 이용하겠다고 나섰다. 한국에서는 아직 인정받지 못하는 제도이고 병역거부를 선택한 사람은 모두 교도소에 갔다고 했더니 대단히 충격을 받은 눈치였다.

군대 이야기를 다시 마주하게 된 건 5학년 진로 수업 시간이었다. 남자아이들이 먼저 군대 이야기를 꺼냈다. 태도는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군대에서 다루는 총기며 탱크 등에 대해 지식이 많은 아이는 모두의 관심을 받으며 지식을 뽐냈다. 궁금한 걸 물어본 여자아이는 “넌 몰라도 된다”는 핀잔을 들었다.

남성 특유의 용맹함이 5학년이 되었을 때 싹터 이런 반응이 나온 것일까? 생명체로서 다른 생명체를 죽이기를 두려워하는 마음은, 군인으로서 하는 행위의 정당성과 상관없이 자연스럽다. 한국의 남자아이들은 그 자연스러운 두려움을 내보이는 것이 힘들 정도의 압박을 받고 있을 뿐이다. 나도 이 압박에 한몫했다.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전쟁영웅에 대한 드라마를 시청하며 이루어지는 역사 수업, 추천 도서 목록에 올라 있는 위인전 속 이야기들, 하다못해 ‘보디가드 피구’라고 하여 남학생이 여학생을 지키도록 만들어진 게임에서조차 그렇다. 남자아이들은 타고난 두려움을 숨김으로써 남자로 인정받는다. 그리고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들키면 남자 됨에서 탈락한다는 새로운 두려움을 맞이한다.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이 명백히 정해져 있는 세상에선 해군이 될 수 없는 ‘연약한 여자’도, 군인이 되어야만 하는 ‘강인한 남자’도 행복할 수 없다. 남몰래 꿈을 접은 여자아이들에게, 군대를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남자아이들에게 내가 해야 하는 말은 무엇일까.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을 가르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서한솔(서울상천초등학교, 초등성평등연구회 대표)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베이비트리
안녕하세요, 베이비트리 운영자입니다. 꾸벅~ 놀이·교육학자 + 소아과 전문의 + 한방소아과 한의사 + 한겨레 기자 + 유쾌발랄 블로거들이 똘똥 뭉친 베이비트리,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혼자서 꼭꼭 싸놓지 마세요. 괜찮은 육아정보도 좋고, 남편과의 갈등도 좋아요. 베이비트리 가족들에게 풀어놓으세요. ^^
이메일 : hanispecial@hani.co.kr       트위터 : ibabytree       페이스북 : babytree      
홈페이지 : http://babytree.hani.co.kr

최신글




  • 비만 예방 수칙…짜게 먹지 말고 충분히 자는 습관 필요

    베이비트리 | 2018. 04. 20

    생활 속 비만 예방 수칙 식사시간 정해놓고 천천히 먹어야채소 많이 먹고 규칙적 운동은 필수잠들기 2시간 전 음식 섭취 말아야자신의 키에 맞는 몸무게나 허리둘레를 유지하는 것이 건강의 지름길이라는 말에는 누구나 동의한다. 비만이 각종...

  • ‘아동수당’ 선정기준액 3인가구 월 1170만원 이하‘아동수당’ 선정기준액 3인가구 월 1170만원 이하

    베이비트리 | 2018. 04. 18

    복지부, 아동수당법 시행규칙·고시 입법예고소득인정액에 따라 하위 90%에 매달 10만원 지급2012년 10월 이후 출생아동 대상 9월부터 주기로가족. 게티이미지뱅크오는 9월부터 만5살 이하 아동을 둔 3인 가구의 월 소득인정액이 1170만원을 넘지 않으...

  • 전남 공공산후조리원, 해남에 이어 강진도 개원한다전남 공공산후조리원, 해남에 이어 강진도 개원한다

    베이비트리 | 2018. 04. 18

    강진의료원, 5월1일부터 농어촌 산모의 신청을 받을 예정해남의료원, 2015년부터 2년 8개월 동안 산모 700명 이용 해남종합병원 안에 있는 공공산후조리원 1호점 신생아실 전남도청 제공전남 해남에 이어 강진에도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산후조리...

  • “조례로 마더센터 만들어주세요” 서울 관악구 주민 1만 명 서명“조례로 마더센터 만들어주세요” 서울 관악구 주민 1만 명 서명

    양선아 | 2018. 04. 17

    “엄마와 아이들이 갈 곳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우선은 미세먼지로 바깥 활동이 어렵고요. ‘맘충’ ‘노키즈존’ 등과 같은 분위기 속에서 엄마와 아이들이 눈치를 보며 공공 시설에서 일어서야 하는 상황이 많습니다. 서명에 동참한 1만 명에 가까운...

  • 노장 배구선수의 비밀병기 ‘디지털속공’

    베이비트리 | 2018. 04. 16

    부모가 알아야 할 디지털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전성기 못지않은 경기력을 보이는 프로배구 선수가 있다. 그가 맡은 역할은 센터다. 센터는 멋진 가로막기로 경기의 흐름을 순식간에 바꾸기도 하지만, 상대 수비가 준비되기 전에 한발 빠르게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