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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unsplash)

첫아이. 처음 아이를 낳았을 때의 느낌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놀라운 일이라고밖에는, 너무나 놀라운 일이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사람은 아이를 낳고 나면 이전과는 다른 존재가 된다. 지향점, 한계점, 가능성이 완전히 달라지면서 기존의 삶을 이루고 있던 조건들이 모두 맹렬히 파편화된다. 그리고 산산이 부서져나간 조각들은 다시 부모라는 정체성에 어울리는 형상으로 빠르게 조립된다. 특히 엄마라 불리게 되는 종족, 그러니까 여성에게 아이가 생긴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이동해가는 사건이 된다.


그러나 당사자인 여성은 그걸 몰라서, 아이를 낳기 전과 후, 그리고 아이가 제법 성장해 성인의 형상을 갖춰가는 시기에 이르러서도 매번 당황하고, 놀라고, 충격받고, 죄책감에 휩싸인다. 자신이 그때까지 영위해왔던 삶의 패턴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한다. 아이가 생기긴 했지만 이전에 누려왔던 기회들과 지켜왔던 가치들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 거라고. 그런 착각은 아이의 성장과 함께 조금씩 깨어져나가지만, 그래도 근본적으로는 자신이 여전히 이전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이 행한 수많은 시행착오들을 돌아보며 끝없이 반성한다. 다음엔. 다음엔, 이러지 말아야지. 미안하다, 아가야. 엄마가 너무 몰라서 그랬어.


첫아이를 낳아 기르며 폭풍우를 헤쳐나가던 시기, 3년 동안 아이를 낳기 전까지 나를 짓누르던 첨예한 의식, 그러니까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에 대한 자각과 사회에서 보내는 메시지에 부응하지 못해 괴로워하던 상태에서 상당 부분 빠져나왔다. 해결되지 않은 의문과 분노로 이글거리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고, 여성 비하적인 언행을 일삼는 사람들과 맞붙어 파르르 떨며 언쟁을 벌이는 일도 하지 않게 되었다. 뿐인가. 예전 같았으면 눈도 안 마주치려 했을 꼰대아저씨들과 눈을 맞추고 웃으며 얘기를 나누는 경지에도 이르렀다. 내 아이. 작고 예쁘고 꼬물거리는 내 아이에게 눈길을 보내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과 감사의 감정을 느꼈던 것이다. 엄마인 내가 모나지 않게 살아야 아이 인생이 복되고 환하게 피어날 거라는 기복적인 생각도 품었다. 그러나 정확하게 따져보자면, 내가 첨예한 분노와 적대감의 외줄 타기에서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은 아이로 인해 너그럽고 따뜻한 사랑이 피어올랐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육아와 살림을 직장생활과 병행해내는 데서 오는 어마어마한 노동량에 치여 여성이라는 추상적인 화두에 열과 성을 기울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전까지 내가 뜨겁게 아파한 문제들이 대부분 말이나 시선, 제스처에 따른 기분과 관련된 일이었다면, 아이라는 존재가 몰고 오는 문제들은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형태를 띠고 있어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었다. 한마디로, 인생의 쓴맛이 그보다 더 커다란 쓴맛에 의해 압도되어버린 경우다.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이 시기를 나는 드디어 어른이 되었다고 받아들였다. 어리고 철딱서니 없고 모나기 그지없었던 내가 아이를 낳고 어른이 되어 너그럽고 둥글둥글해졌다고. 남자는 군대 가야 사람이 되고 여자는 애를 낳아야 어른이 된다더니 그 말이 정말 맞나 보다고 생각했다. 흐뭇하기도 했던가? 언제나 피곤에 절어 있는 가운데 흐뭇해했던 듯한, 아니 흐뭇해하고 있다고 믿으려 애썼던 순간들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정말 흐뭇했던가? 정말 내가 애를 낳아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던가?


아이가 물리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는 시기가 지나가면서, 이런 생각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이가 만 3세가 될 때까지는 엄마가 육체적으로 제일 힘든 시기다. 한 사람이 먹는 것, 배설하는 것, 입는 것, 자는 것을 모두 도와줘야 하고 어디 가거나 올 때 반드시 데려다 주고 데리고 와야 한다. 혼자서 하기엔 너무 어리므로 살아가면서 행하는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대리하거나 보조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 시기의 엄마들은 아이가 혼자 어디에 다녀오거나 의식주의 많은 부분을 독립적으로 할 수 있게 되는 6~7세나 초등학생 자녀를 둔 엄마들을 몹시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게 된다. 대통령도, 재벌 3세도 안 부럽지만 그 나이까지 키워낸 엄마들은 부러워 미칠 것 같다. 나도 그랬다. 제발 저 정도만 컸으면! 셔틀버스에서 내려 혼자 걸어오는 정도로만 커도 더 바랄 게 없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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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은
헤드헌터, 번역가, 소설가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며 살아왔지만 저의 제1 정체성은 언제나 ‘엄마'였습니다. 엄마 경력 12년에 접어들던 어느날, 좋은 엄마가 되겠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너무 아등바등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요. 그때부터 이 글을 쓰기 시작했고, 연재 글을 바탕으로 에세이 <엄마의 독서>를 펴냈습니다. 2013년 < 모던 하트 >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고, 이후 장편소설 < 잠실동 사람들 >, < 맨얼굴의 사랑 >을 펴냈습니다.
이메일 : emma750322@hanmail.net      
블로그 : http://blog.naver.com/emma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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