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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부모-교사 머리 맞대, 놀이가 노는 상상 현실로

양선아 2017. 12.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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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 혁신 두 시범학교 가보니]

06_1.jpg » 지난 10월 서울 신현초 강당에서 이 학교 학생들과 ‘스튜디오 글루’의 공간 디자이너들은 학교 공간에 대한 디자인 워크숍을 열었다. 학교 공간을 탐색하고, 수직·수평적 놀이 움직임을 수용하는 놀이 형태가 무엇인지 탐구했다. 또 놀이기구가 아닌 지형지물을 우선적으로 활용한 놀이를 상상한 뒤 모형을 만들어봤다. 편해문 제공
 
서울시교육청과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아이들이 놀러 오는 놀이터’ 협약
 
놀이터재구성 TF, 워크숍 의견 반영
두달 만에 기본설계 밑그림 공개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지난 6월 과거 권위주의적 공간 모델에 기초한 학교 공간을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의성을 살릴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공간으로 바꾸기 위해 유치원·학교 놀이터 혁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서울시교육청은 이후 ‘아이들이 놀러 오는 놀이터 만들기’ 시범 사업을 추진했고, 지난 10월 서울 중랑구 신현초와 성북구 장월초 두 곳을 시범 대상으로 최종 확정했다.
 
지난 4일 이 두 학교에서는 어린이, 교사, 부모, 놀이터 디자이너, 어린이 공간 디자이너, 연구자, 아동구호기관 등 다양한 관계자들이 협력해서 만든 ‘학교 놀이터 기본 설계 밑그림’이 공개됐다. 편해문 놀이터재구성 태스크포스(TF) 위원장이 부모·교사·학생 워크숍에서 나온 의견들을 반영해 기본 설계 밑그림을 그려 공개했고, 공사에 들어가기 전 다시 한번 각 주체들의 의견을 듣는 자리였다.
 
다양한 사람이 참여해 만든 놀이터 밑그림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아이들이 놀러 오고 싶은 놀이터를 만들려면, 그 놀이터에서 놀 아이들의 의견이 적절하게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 실제로 아이들이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는지, 그 의견이 반영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학교 놀이터가 ‘짠~’ 하고 바뀐 뒤의 결과물이 아닌, 부모·교사·학생 세 주체의 참여와 협력하는 과정 자체를 지켜보고 싶었다.
  
한 아이 나서 거침없이 “반대합니다”
전문가 즉석에서 설명하고 수정
 
‘주인’들이 학교 곳곳 탐색하고
국내외 자료 찾아 ‘그림’ 그려 제안 
 
“반대합니다. 반대합니다.” 

서울 중랑구 신현초 시청각실에서 한 아이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편해문 위원장이 신현초 안에 있는 ‘도담뜰’이라는 공간에 아이들이 원했던 트리하우스(나무집)를 만들 것이라고 말한 직후였다. 모든 설명을 마친 뒤, 편 위원장은 질의응답 시간을 이어갔다. 편 위원장은 “반대합니다”라고 외쳤던 정진욱(9) 학생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유를 말씀해주세요.” “트리하우스는 나무집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재미없을 것 같아요. “나무집은 어떻게 만들면 좋을까요?” 한쪽에서 한 아이가 소리쳤다. “야! 트리가 나무야~.” “(손을 강하게 휘저으며) 나무집(!)이 없잖아요~.”
 
“아, 정말 예리한 질문이고 좋은 질문이에요. 무슨 말이냐면요. 지붕이 없다는 말이네요.” 
  06_2.jpg » 서울 신현초 도담뜰에 만들어질 놀이 공간의 기본 설계 밑그림. 놀이터 디자이너 편해문씨가 디자인하고 만화가 박보영씨가 그림을 그렸다.
 
편 위원장이 공개한 기본 설계도에는 나무집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지붕이 있는 집은 아니었다. 나무가 있는 작은 공간이 집 역할을 하고, 집과 집 사이를 출렁다리 등 나무통로로 아이들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한 바퀴 휘돌 수 있는 구조였다. 그런데 정진욱 학생이 꿈꿨던 나무집은 지붕이 있는 나무집이었다. 편 위원장은 그동안 학교 놀이터에서 나무집을 만든 경험이 많은 동네건축가 이용선씨를 초대 손님으로 모셔 마이크를 건넸다. “선생님에게 직접 그 질문에 대한 답 좀 들어볼까요? 아이들이 돌아다니는 것 말고 지붕 같은 것을 원하는데요.”
 
상주에서 생활기술연구회 활동을 하는 이용선 동네건축가는 이렇게 답했다. “실제로 트리하우스를 만들면 지붕이 있어야지 내가 그 공간에 지내고 싶은 마음이 생기거든요.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집이 세 채 정도 있었지요? 그중에 한쪽 정도는…. 대신 가지가 너무 많으면 안 돼요. 트리하우스에서 가지의 이파리가 그 역할(지붕)을 할 수 있거든요. 나무 상태가 빈약해서 이런 부분(가지와 이파리)을 지붕으로 만들고 싶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반영해서 가능할 것 같습니다.”
 
신현초 학생과 부모, 교사는 그동안 학교 공간 곳곳을 탐색하고 그 공간을 어떻게 바꾸면 좋을지 상상했다. 부모·교사는 국내외 놀이터 자료를 찾고, 구체적으로 놀이터를 어떻게 바꾸면 좋을지 그림을 그렸다. 공공디자인을 하는 ‘스튜디오 글루’ 소속 공간 디자이너들은 아이들이 꿈꾸는 놀이터를 직접 디자인해볼 수 있도록 도왔다. 편해문 위원장은 여러 의견을 토대로 한정된 예산에서 어느 선까지 할 수 있을지 조율하고, 여러 당사자가 서로 신뢰감을 갖도록 중재자 역할을 했다.
 06_3.jpg » 서울 중랑구 신현초등학교 내에 있는 도담뜰을 이 학교 학부모들이 돌아다니며 탐색하고 있다. 이런 작업을 통해 학교 놀이터를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의견을 모았다. 편해문씨 제공.
내년 3월이면 신현초 학교 운동장 한쪽에는 다양한 모양의 터널이 들어가 있는 언덕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바닥에는 사방치기를 비롯해 다양한 변형 놀이가 가능한 놀이 그림이 그려질 것이고, 연못 위에 떠 있는 나무집도 만들어질 것이다. 넓은 운동장 한쪽에는 그늘막이 쳐진 모래놀이터가 만들어진다. 김윤아 신현초 수업연구부장은 “아이들이 약간의 위험이 있을 때 스스로 조정하는 능력이 생길 수 있다”며 “모험심이나 자기 스스로 위험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 정도를 만들 수 있게 놀이터가 만들어질 것 같아 기대감이 크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과 유니세프한국위원회가 협약을 맺고 함께 만들어가는 ‘학교 놀이터 재구성 과정’은 그야말로 참여와 협력, 소통을 중시하는 작업이었다. 전문가들이 뚝딱 알아서 만들어주는 놀이터가 아니라, 놀이터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주인이 되어 ‘컬래버레이션 디자인’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거침없이 묻고 의견을 냈고, 부모·교사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교육청·전문가·학교·아동구호기관은 이들을 돕는 조력자 구실을 했다. 과정이 이렇다 보니 판에 박힌 놀이터가 아니라 각자의 학교에 맞는 놀이터와 놀이 환경이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06_4.jpg » 서울 성북구 장월초등학교 내에 있는 정자에서 편해문 놀이터 디자이너가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아이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편해문씨 제공.
 

06_5.jpg » 서울 장월초 학생들이 놀이터 디자인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편해문씨 제공.

장월초에서 학부모소위원회를 맡고 있는 강민화(42)씨는 놀이터 혁신 과정에 참여하면서 느낀 변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전에는 학교에서 오지 말라고만 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참여해야 한다고 하니까 어리둥절하긴 했죠. 6~7명의 소위 소속 엄마들이 놀이터를 어떻게 바꾸면 좋을까 자료를 열심히 찾았어요. 정독도서관에 설치된 해먹을 보고 ‘이거야’ 싶어서 의견을 냈어요. 저희 의견은 반영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 실제로 기본 설계에 반영된 거예요. 상상하면 꿈이 이뤄진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 것 같아요.”
 
강씨는 들뜬 목소리로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세 아이의 엄마인 그는 성북구 장월초 주변에 실제로 놀이터가 얼마나 부족한지 하소연했다. 장월초 주변에서 대규모 아파트 개발이 이뤄지면서 단독 주택지에 사는 아이들은 놀 곳이 마땅치 않게 됐다. 그래서 아파트 놀이터에 가서 아이들이 놀자 경비원이 아이들을 쫓아냈다. 4년 전에는 놀 곳이 없어 아파트 복도에서 인라인스케이트 한쪽만 신고 놀던 한 아이가 바닥으로 떨어져 숨진 사건도 있었다. 강씨는 “내년에 학교 놀이터가 바뀐다면 마을 아이들이 아파트 여기저기를 기웃거리지 않아도 될 것 같아 행복하다”고 말했다.
 
전문가, 꿈꾸는 놀이터 디자인 도와
참여-협력-소통으로 ‘안성맞춤’ 조율
 
“놀이터가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
지시·통제에서 열린 공간으로”
 
장월초에 가보니 활용되지 않는 공간이 많았다. 편 위원장은 학교 공간의 절반이 버려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1층 교실 옆쪽에 커다란 정자가 있고 아이들이 앉아서 놀 수 있는 공간이 있었지만, 정자 쪽으로 가는 문은 모두 잠겨 있었다. 놀이터 재구성 위원회는 이 공간에 해먹 형태의 그물망을 설치해서 죽어 있는 공간을 다시 살려내기로 했다. 운동장 한쪽에 설치된 정글짐 옆에는 아이들이 위로 올라가는 놀이뿐만 아니라 옆으로도 건너갈 수 있는 형태의 놀이 기구도 설치할 계획이다. 

06_6.jpg » 서울 성북구 장월초 뒷편에 있는 정자로 들어가는 길은 막혀 있다. 편해문 놀이터 디자이너는 이렇게 학교 공간에서 이렇게 아이들의 놀이 흐름이 끊기는 것은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양선아

편 위원장은 “아이들은 학교 전체를 놀이터 삼아 논다. 사람이 피가 잘 돌아야 건강하듯이, 아이들이 학교 공간 전체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야 잘 놀 수 있는데, 장월초의 공간을 보면 끊기는 곳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런 점에서 학교 놀이터 개선 작업은 단순히 놀이터를 구축하는 작업이 아니라 ‘놀이 환경 디자인’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교 놀이터가 바뀌면 학교가 바뀝니다. 닫혀 있는 공간, 지시와 통제 위주의 공간을 열린 공간으로 바꿔나가면, 학교 문화까지도 바뀔 수 있을 겁니다. 실제로 놀이터 개선 작업을 하면서 참여하고 협업하고 있거든요.”
 
편 위원장은 뻔한 놀이기구들만 있는 기존 놀이터 문화에서 참여와 소통, 협업을 지향하며 진정한 놀이 문화로 만들기 위해 이날도 동분서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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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한겨레신문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현재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쓰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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