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교육

아이와 함께, 그보다 더 바라면 협박

김민식 2017. 12. 06
조회수 3734 추천수 1
512 (2).jpg » 큰딸 민지는 초등학교 6학년일 때 저와 함께 네팔 여행을 가서 탠덤 패러글라이딩을 했습니다. 사랑코트 산에 올라 호수를 향해 낙하산 메고 뜁니다. 민지에게 물어봤어요, 무섭지 않았냐고. 민지가 그랬어요. “아빠가 하는 건 다 재미있어 보이니까 나도 해봤어.” 사진은 패러글라이딩을 한 프랑스인 할아버지와 민지.

철학자 강신주 박사는 교사들을 상대로 강연하는 자리에 가면 이렇게 물어본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유괴범입니까 선생님입니까?”
 
부모를 협박해서 돈을 뜯어내면 유괴범이고, 아이를 가르치는 일이 좋아서 열심히 했는데 그 대가로 나라에서 돈도 주면 참스승이라는 거죠.
 
아무리 공부해도 성적이 안 올라 죽고 싶다는 고등학생을 만났습니다. 공부야 잘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는 거지 그걸로 죽고 살고 할 문제는 아니라고 했더니, 자신은 무조건 명문대에 가야 한대요. 좋은 대학에 가야 좋은 직장에 가고, 그래야 먹고살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어려서부터 부모님에게 그런 얘기를 수없이 들었답니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너의 인생은 불행해질 것이다.’ 이건 부모가 아니라 협박범의 화법 아닌가요?
 
어린 시절 저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게 제일 좋았어요. 문과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극구 반대하셨어요. ‘글 쓰는 직업, 굶어 죽기 딱 좋다. 무조건 공대로 가라.’ 공대에 진학한 뒤, 내내 우울했어요. 강의실에 앉아 공업수학 수업을 들으면 괴로운데, 도서관에 앉아 소설을 읽으면 그렇게 행복한 거예요. 영업사원으로 일하면서도 괴로웠어요. 직장을 그만두고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이야기에 아버지가 또 펄펄 뛰셨지요. ‘첫 직장 때려치우면 너는 조직 부적응자로 찍혀 평생 취업이 힘들어진다. 그러다 굶어 죽기 딱 좋다.’
 
고교 시절 아버지의 충고를 따랐다가 괴로웠던 터라,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직을 결심했습니다. 이후 저는 통역대학원에 진학하고 훗날 문화방송(MBC)에 입사해 예능과 드라마를 연출하고 결국 책까지 쓰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협박에 굴하지 않은 것이 제 인생 최고의 결정이라 믿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겁을 줄 생각이 없어요. 세상은 재미난 놀이터라는 걸 가르쳐주고 싶습니다. 제게 최고의 놀이터는 도서관인데요. 아이에게도 책 읽는 습관을 물려주고 싶어요. 그래서 주말이면 딸과 함께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습니다. 저녁에는 아이와 보드게임을 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 소리 내어 책을 읽어줍니다. 아이와 함께 여행을 다니며 세상의 재미난 것들은 다 시도해보고 있어요. 제가 사는 모습을 보고 아이가 따라하면 다행이고요, 그러지 않아도 제가 즐거운 삶을 살았다면 그걸로 만족입니다. 그보다 더 바라면 욕심이지요.
 
글·사진 김민식 피디 seinfeld6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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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식
SF 애호가 겸 번역가, 시트콤 덕후 겸 연출가, 드라마 매니아 겸 감독, 현재는 책벌레 겸 작가. 놀이를 직업으로 만드는 사람. 아이들의 미래도 놀이에 있다고 믿는 날라리 아빠.
이메일 : seinfeld6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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