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말하자면, ‘페미니스트.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던 시절부터, 여전히 알쏭달쏭한 지금까지, 나를 그 길로 서서히 인도한 것은 다름아닌 지금의 남편이다. 연애할 때부터 느꼈다. 그의 행동양식, 사고방식은 분명 그 이전에 만났던 연애 상대들과 달랐다. 그렇게 그를 따라 가랑비에 옷 젖듯 조금씩 이 길로 들어선 나는, 이제 그보다 한 수 위(?!)에 있다. 그에게 임신도 출산도 내가 했고, 육아도 어쩔 수 없이 내가 더 많이 하고 있는데!! 내가 약 부작용까지 겪어가며 피임약을 먹어야겠냐?!”며 화를 낸 게 나다. (우리는 연애 때부터 꼬박꼬박 콘돔을 썼는데 결혼 후 갑자기 예상치 못하게 임신이 된 케이스라 나는 출산 후 재임신에 대한 공포가 컸다.) 독특한 감성의 가수를 발견했다며 모 밴드의 여성 비하 정서 물씬 풍기는 노래를 들려주는 그에게 이게 지금 독특한 감성운운할 사안이냐!!”며 며칠을 얼굴 붉혀가며 싸운 것도 나다. 그가 본래부터 페미니스트였던 것도 아니고, ‘완벽한페미니스트인 건 더더욱 아니라는, 아니 실은 이 가부장제 남성중심 세계에서 끊임없이 부당한 무언가를 발견하고 고발하고 싸워 나가야 하는 게 나의, 우리의 현실임을 알아가며 더 갈등하고, 더 투쟁하는 사이, 우리는 함께 페미니스트가 되어가고 있었다.

 

내게 페미니즘은 우리의 세계가 성별에 따라 차별적으로 구획되어 있다는 걸 인지하게 하고, 그 세계가 결코 정당하지도, 건강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무엇이다. 페미니즘 서적이라 할 만한 책을 본격적으로 읽은 적이 거의 없지만, 내가 평소 생각하는 것들을 따라가 보면 언제나 페미니즘이라는 이름과 맞닿았다. 그래서 요즘은 작정하고 틈틈이, 페미니즘 서적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찾아보고 있다. 그 중 하나가 한국에 <빨래하는 페미니즘>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된 스테퍼니 스탈의 책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기 위해 원제를 검색하고 도서관에 대출 신청을 하면서, 의아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한국어 번역 제목이 원제와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 책의 원제는 여성을 읽다: 위대한 페미니즘 서적들은 어떻게 내 삶을 바꾸었나”(Reading Women: how the great books of feminism changed my life) 이다. 원제를 보고 다시 번역서의 제목을 보았을 때, “빨래하는 페미니즘이라는 제목은 묘하게 중의적이었다. 원제와 저자 소개를 봤을 때 이 책의 저자는 빨래를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역서 제목에 빨래하는이라는 문구가 들어간 건, 빨래라는, 통념상 기혼 여성의 가사노동 범주에 속하는 특정 유형의 노동과 페미니즘을 연결 짓겠다는 의미로 보였다. 그런데 그런 얘기를, 빨래를 안 해도 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한다고?

 

처음부터 의심을 품고 시작한 독서이니만큼, 책장을 넘겨갈수록 나의 반감은 더해갔다. 이 책의 저자는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지적으로 능력 있는 부모 밑에서 자라 미국 명문 여대 바나드 칼리지를 졸업하고 컬럼비아 대학 대학원을 거쳐 기자로 일하던, ‘잘 나가는커리어 우먼이었다. 역시 잘 나가는 남자와 연애/동거 끝에 아이를 낳고, 메릴랜드 주도에 3층짜리 빅토리안 양식의 집을 사고, 육아를 위해 생활을 조정했다. 남편은 육아를 위해 일주일에 며칠은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직업을 가졌고, 본인 역시 출산 후 프리랜서로나마 일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랬기에, 출산과 육아로 인한 심신의 갈등은 그에게 더욱 크게 다가왔다. 잘 나가는 연구자이자 대학 교수였던, 요리를 포함해 집안일에 신경 쓸 겨를도 재간도 없었던 친정 엄마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던진 한마디가 그의 마음을 요동치게 했다. “이야, 난 내 딸이 이렇게 천상 주부포스를 풍길 줄 꿈에도 몰랐네!” 아이가 만 두 살이 되던 무렵, 더 이상 그 무게를 견디기 어려웠던, 증폭되어가는 의문을 주체할 수 없었던 저자는 모교인 바나드 칼리지로 돌아가 페미니즘 수업을 청강하기에 이른다.

 

몇 시간씩 열차를 타고 일주일에 몇 번을 학교까지 통학하면서 청강을 하고,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과제로 나오는 책을 모두 읽고, 토론을 하고, 글을 쓰자면, 다른 무엇보다 시간기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그건, 3세 미만 아이를 둔 엄마에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이건 바로 내가 아이를 3년 가까이 집에서 돌보아 봤기 때문에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얘기다. 내가 바로 그 시간/기력 없음때문에 얼마나 고통을 겪었는지,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진저리가 쳐질 지경이다. 그런 엄마의 삶을 사는 이가 수업 청강을 하며 읽기와 쓰기, 토론 모두를 성실히 하자면내 경험상, 미국 대학에선 청강생도 모든 과제를 충실히 따르는 게 기본이다아이 아빠가 전담 육아를 하는 게 아닌 이상 아이는 기관에 맡겨야 한다. 그리고 이 곳의 기관 보육은 도시로 갈수록, 아이가 어릴수록, 그리고 부모의 생활 수준이 높을수록, 그 비용이 엄청나게 높아진다. 그러니까 이 책의 저자가 감행한 지적/철학적 여정은, 저자의 경제적 여건이 이런저런 비용 지출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에 시작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결국 내가 처음 저자에게 가졌던 그 인상, “빨래 안 해도 되는사람일 것이라는 인상은 상당 부분 현실이었고, 실은 이 사람은 이만큼 경제적으로 여유도 있고 하니 아마 가사도우미를 썼겠지, 라는 가정을 했다. 

 

그런데, 내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그런 잘 나가는’ '여유 있어 보이는' 그에게도, 보통의 엄마,’ ‘아내들처럼 도저히 어쩌지 못하는 과제가사노동가 지워져 있었던 것이다. 특히 빨래하는 일과 관련해 책 후반부에 중요한 에피소드가 하나 등장하는데, 아마 번역서의 제목이 바로 이 대목에서 나온 모양이었다. 어느 주말, “오늘 빨래는 당신이 좀 해하고 아무리 말을 해도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남편을 보다 못해 직접 빨래를 하느라 세탁실과 방을 오가던 그는 급기야 남편의 옷을 모두 창 밖으로 내던져 버리고 만다. 그리고 고함을 친다. “지금부터 니 빨래는, X, 니가 해!!!!” 이 대목에서야 나는 비로소 이해했다. 비록 사는 환경은 나에 비해 훨씬 윤택하지만, 그는 빨래하고 청소하는 엄마/아내의 삶속에서 나보다 훨씬 더 처절하게 몸부림치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 집에선 가사 분담 때문에 저런 사달이 나는 경우가 없다. 아이를 낳기 전엔 둘이, 출산 후엔 셋이, 같은 공간을 함께 쓰는 동거인으로서 모두의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생활 방식을 찾으려 애써왔다. 가령, 우리집에선 빨래는 일주일에 한 번, 주말에 몰아서, 아이까지 합세해 다 같이 한다. 빨래를 마치면 세탁물 더미에 셋이 다 들러붙어 각자의 옷을 찾아 개고, 각자의 옷장에 정리해 넣는다. 물론 아이가 옷을 개어 넣는 걸 보노라면 웃음과 한숨이 함께 찾아오지만, 그냥 내버려둔다. 괜한 간섭으로 아이의 재미와 의지를 꺾어서 좋을 게 하나도 없으니 말이다. 오히려 자기 옷은 꼭 자기가 개야 한다고 고집을 피워대니 내심 편하고 기특하기까지 하다. 또 다른 예로 평일 아침, 나는 남편과 아이의 밥을 차려주기위해 먼저 일어나지 않는다. 누구든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 먼저 커피를 내리고, 곧 이어 일어난 사람이 뒤이어 빵을 굽고, 과일을 잘라 내는 식이다. 점심, 저녁상을 위한 요리는 남편과 내가 한끼씩 혹은 하루씩 번갈아가며 하고, 상 차리고 치우는 건 아이까지 셋이 같이 하고, 설거지는 또 남편과 내가 번갈아 한다. 한 사람이 보리차를 끓이면 다른 한 사람은 쓰레기를 비우고, 한 사람이 침실 청소를 하면 다른 한 사람은 냉장고 청소를 한다.


어른책 6_빨래하는 날.jpg

<아이에게 '토요일'은 '빨래하는 날'이다. 왼쪽에 연두색으로 그린 것이 빨래가 돌아가는 세탁기. 오른쪽에 있는 건 세제를 들고 서 있는 아이와 남편...(이라고 아이가 설명했다) >

 

육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요즘같이 아이가 어린이집을 쉬고 있는 기간엔, 시간의 절대량으로 따지면 당연히 내가 육아를 더 많이 하는 게 사실이다. 남편은 아침 8시에 학교에 나갔다가 오후 4시에 집에 돌아오는 대학원생이니까. 하지만 오후 4시부터 아이가 밤잠에 드는 9시까지, 육아는 남편 담당이다. 같이 집에 있어도 나는 그 시간만큼은 아이에게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특히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난 후인 저녁 6시 이후는 그야말로 나의 자유시간이다.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놀거나 TV를 보며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책과 잡지를 읽고, 글을 다듬고, 웹서핑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남편이 낮 시간에 혼자 학교에서 책 읽고 글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그런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저녁에 갖는 것이다.

 

나는 이런 사고 방식과 생활 패턴이, 일의 효율 면에서나 평등한 분담을 위해서나 아주 괜찮은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둔 부부가 함께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자면, 반드시 공동으로, 동등한 책임 의식을 가지고 함께 집안일과 육아를 해야 한다고 믿는다. 얼마든지 자잘하게, 분 단위로 쪼갤 수도, 시계를 따라 원을 그려가며 주욱 늘어놓을 수도 있는 그 순환 노동을 꼭 50 50으로 나눌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가정 내의 기본 기조가 누군가의 희생이 아니라 평등공존이라면, 굳이 순서와 차례를 나누지 않고도 자연스레 가사를 함께 할 수 있다. 그 덕에 우리 부부는 가사와 육아를 위해 누군가의 전적인 희생에 기대지 않아도 된다는 데 대한 자부심과 만족감이 크다. 셋이 함께 하면 큰 힘 들이지 않고도 생활을 유지할 수 있고, 남편이 출장을 가도, 내가 며칠 여행을 가도, 남은 한 사람이 아이를 돌보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주변의 여성들이 개수대에 쌓여가는 설거지 거리, 빨래통에 넘쳐나는 빨래, 아직 다 개지 못한 세탁물,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방 정리와 청소 등등에 대해 푸념할 때 나는 다 같이 하지 않는다면 파업을 해서라도 나머지 가족들을 동참시켜야 하지 않을까하고 은근슬쩍 던져 보는데, 대부분의 경우 이런 나의 주문은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많은 경우, 워킹맘인 여성들은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는 방식을 떠올리거나, 전업맘인 여성들은“남편은 바깥일해서 돈 버느라 바쁜거니 내가 하는 게 당연하긴 해하고 받아들인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란 게 있다보니 요즘은 정말 믿을 수 있는 가사도우미를 구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 그런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식의 대안, 혹은 '어쩔 수 없으니 내가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으로는 절대 지금과 같은 구도를 깰 수 없다고 생각한다. 스테퍼니 스탈이 청강을 하던 수업 중에도 나온 얘기처럼, 가사도우미를 구하는 건 여성들이 남편들에게 가사를 하라고 요구하는 대신 다른 여성들에게 돈을 주고 그 일을 시키는 것”(182)일 뿐이고, 어쩔 수 없어서 혼자 감당하기 시작하면 결국 '엄마'의 전적인 희생에 기대어 돌아가던 그 익숙한 풍경 속으로 빨려들어갈 뿐이니까.  

 

그래서 나는, ‘(혼자)빨래하는 페미니즘, ‘다른 여성에게 내 빨래를 대신 하게 하는 페미니즘도 아닌, ‘함께 사는 사람들이 함께, 각자의 것을 빨래하는 페미니즘을 지향한다. 그리고 그건,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가장 공적인 공간인 우리들의 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들의 집에는 바로 다음 세대의 남성과 여성이 태어나 살아가고 있으니, 이곳은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공적인 공간이다. 남성도 여성도, 아이도 어른도 모두 함께 서로를 돌보고 공동의 생활 공간을 가꾸어 가는 법을 지금부터, 바로 우리들의 에서부터 배워나가야 한다. 나의 안락하고 쾌적한 생활을 위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는 상황을 깨뜨려 나가야 한다. 지금 우리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 특히 우리 딸들에게 우리는 다시 같은 삶을 물려주게 된다. 그러니 우리 몫의 빨래하는 페미니즘은 지금 여기, 바로 우리 집에서, 남편, 아이와 함께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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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 스테퍼니 스탈, <빨래하는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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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슬
'활동가-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막연했던 그 꿈에 한발 더 가까워진 것은 운명처럼 태어난 나의 아이 덕분이다. 아이와 함께 태어난 희소질환 클리펠-트리나니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의 약자 KT(케이티)를 필명으로 삼아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 라는 제목의 연재글을 썼다. 새로운 연재 <아이와 함께 차린 글 밥상>은 아이책, 어른책을 번갈아 읽으며 아이와 우리 가족을 둘러싼 세계를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내 아이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함께 잘 키워내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글과 삶을 꾸려내고 싶다.
이메일 : alyse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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