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교육

무대도 객석도 더불어 얼쑤

정봉남 2017. 11. 28
조회수 1401 추천수 0

1511077729327_1450.JPG » 지난 4일, 순천 기적의도서관에서 제6회 옛이야기 들려주기 한마당이 펼쳐지고 있다.

해마다 추수하는 가을 무렵, 동네 사람들이 모여앉아 옛이야기 한마당을 펼친다. 웃기고 오싹오싹하고, 신비롭고 이상하고, 지혜가 쏙쏙 나오는 이야기를 듣는 맛이 쏠쏠하다. “옛날 옛날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들은 구성지고,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꾼이 되었다가 청중이 되어 추임새를 넣는 경험은 더없이 즐겁다. 이야기 뒤엔 떡잔치를 열어 입도 즐겁고 마음도 배부른 것이 또한 옛이야기 한마당의 매력이다.


노래는 혼자서도 흥을 내어 부를 수 있지만 이야기는 절대로 혼자서는 못 한다. 둘이서 이야기하다가 한 사람이 더 오면 자연스레 자리를 내주고 끼어앉아 거들며 즐겨야 제맛이다. 여럿이 둘러앉아 오순도순 하는 일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깝게 하니, 이야기꽃 피우며 사는 세상은 각박해질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마련한 잔치가 어느새 여섯 해를 맞았다.


이야기 마당의 문을 연 것은 인형극 반쪽이였다. 눈도 귀도 팔도 하나밖에 없는 반쪽이는 외모 때문에 따돌림을 당하지만, 어려움을 잘 극복하여 마침내 어여쁜 아내를 얻는다. 반쪽이를 괴롭히는 형들이 등장하면 아이들은 약속한 듯 그러면 안 돼!”하고 소리를 지르고 반쪽이가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반쪽아, 힘내!”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침내 반쪽이가 호랑이를 잡고 부잣집 딸을 데려오는 장면에 이르면 잘했어 반쪽아!”하고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1511077724005_1.JPG » 지난 4일, 순천 기적의도서관에서 열린 제6회 옛이야기 들려주기 한마당에서 '반쪽이' 공연을 시작하고 있다.

1511077726035_1.JPG » 지난 4일, 순천 기적의도서관에서 열린 제6회 옛이야기 들려주기 한마당에서 '반쪽이' 공연이 열리고 있다.


반쪽이를 응원하는 동안 모두가 말 안해도 알게 되는 사실. 그것은 몸이 온전한 사람만이 일을 잘 해내고 행복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세상에 모든 사람은 누구나 주인이며 자기 몫을 당당하게 해낼 수 있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지 않고 열심히 개척해나가는 반쪽이 이야기는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분위기를 흥겹게 띄워주었다.


한편 아빠가 들려주는 옛이야기한 자락은 이상한 냄비였다. “옛날 옛날, 어느 마을에 글만 읽는 선비와 아내가 살았어. 하루는 아내가 마당에다 벼를 죽 널어놓고 들일을 하러 나갔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서 비를 맞고 집으로 돌아왔지 뭐야. 그랬는데, 아 글쎄, 마당에 널어놓은 벼가 빗물에 몽땅 떠내려가고 없는 거야. 선비는 비가 오는지 안 오는지도 모르고 방에서 글만 읽고 있었지. 참다못한 아내는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어. 뭣이 중한디? ? 뭣이 중하냐고!” 급기야 뭣이 중한디!”까지 등장하자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되었다. 이야기꾼 아빠가 열받은 아내의 심정을 입에 척척 달라붙는 말로 들려주니 모두들 공감의 웃음을 터뜨렸다. 이야기가 무르익어가는 동안 엄마가 들려주는 옛이야기에서는 중간에 이야기를 까먹기도 했다. 당황한 이야기꾼 엄마가 , 그러니까하면서 얼른 쪽지를 훔쳐보고 난 뒤에 이야기를 이어갔는데 그것이 되려 흥을 돋워주었다. 말투를 억지로 꾸며 내지 않아도 되고, 막힘없이 줄줄 욀 필요도 없다. 중간에 생각이 안 나면 뛰어넘어도 되고, 슬쩍 지어내도 괜찮다. 아이들의 반응을 살피면서 함께 즐기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중간 중간에 이구동성 초성으로 제목 맞추기, 몸으로 말해요같은 문제풀이 시간도 있어서 저요, 저요,”를 외치는 아이들로 활기가 넘쳤다. 빛그림으로 감상한 세상에서 가장 긴 이름,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을 박자에 맞춰 불러보는데 다들 어깨를 들썩이며 운을 맞췄다.


옛이야기 한마당의 절정은 아이들이 연극으로 보여준 삼년고개였다. 넘어지면 삼 년밖에 못 사는 고개가 있다면 지날 때마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기게 될 것이고, 진짜인지 아닌지도 모를 이야기 때문에 불안해서 병이 날 수도 있다. 마침 이야기 속 영감이 고개에서 넘어져 삼 년밖에 못 산다.’고 탄식하는데 지혜로운 손자가 한 번 넘어질 때마다 삼 년씩 산다.’고 말해 상황을 반전시키는 이야기다.

 1511077741877_1.JPG » 지난 4일, 순천 기적의도서관에서 열린 제6회 옛이야기 들려주기 한마당에 아이들이 참여하고 있다.

아이들이 영감과 할멈 역할을 맡아 난감하네~” 창을 할 때는 모두들 배꼽 빠지게 웃었다. 등장하는 아이들이 모두 떼로 구르며 삼년이요, 삼십 년이요, 삼백 년이요.”소리치자 도서관은 어느새 한바탕 이야기로 하나되어 훈훈해졌다.

1511077740366_1.JPG » 지난 4일, 순천 기적의도서관에서 열린 제6회 옛이야기 들려주기 한마당에 아이들이 참여하고 있다.


1511077743317_1.JPG » 지난 4일, 순천 기적의도서관에서 열린 제6회 옛이야기 들려주기 한마당에 아이들이 참여하고 있다.

익히 잘 아는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이야기를 할머니의 목소리로 들으면 더 감칠맛이 돋는다. 호랑이가 오도독오도독 젖먹이를 잡아먹는 장면에서는 몸을 움찔움찔 하면서 귀를 기울였다. 오누이는 도망가려고 꾀를 내어 똥이 마렵다고 하고, 호랑이가 방에다 누라고 하니 구린내가 나서 싫다고 하고, 토방에 누라 하니 나가다 밟아서 안 된다고 한다. 나중에는 호랑이가 변소에 가서 누라고 해서 오누이는 밖으로 도망 나온다. 어리석은 호랑이가 하느님, 저를 살리시려면 썩은 동아줄을 내려주시고 저를 죽이시려면 새 동아줄 내려주세요.” 하고 거꾸로 소원을 빌어서 호랑이가 떨어져 죽었다는 이야기는 새로운 버전이었다.


들어도 들어도 물리지 않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생명력을 이어가는 것이야말로 옛이야기의 진짜 힘일 것이다. 이야기는 기술이 아니라 감동과 흥겨움으로 하는 것이고, 말 재주 있는 몇 사람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 누구나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옛이야기는 들려주는 것만으로 이미 훌륭한 교육이다. 들려주고 들으면서 마음이 가까워지고, 이야기 속에 담긴 생각을 곱씹어 보면서 삶 속의 진실과 슬기를 더듬을 수 있다. 넓고 깊은 꿈을 마음껏 펼칠 수도 있다. 옛이야기를 좋아하고, 좋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란 아이가 나쁜 짓을 할 수는 없는 법이다.”(서정오 옛이야기 들려주기머리말에서)


삼년 고개이야기를 빗대어 삼십 년, 삼백 년 뒤에도 도서관에서 옛이야기 한마당이 펼쳐지면 좋겠다. 옛사람들이 꿈꾸었던 지혜와 삶의 모습들을 닮아가면 좋겠다. 열린 세상을 만드는 이야기판, 얼씨구 좋다! 1511077745101_1.JPG » 지난 4일, 순천 기적의도서관에서 열린 제6회 옛이야기 들려주기 한마당에 참여한 참가자와 관람객이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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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남
순천기적의도서관 관장. 아이들과 함께 웃고 우는 사람입니다. ‘책읽는 공부방 만들기’ 수퍼바이저로 일하며 외롭고 힘든 환경의 어린이들에게 좋은 책을 전하고 마음 다독이는 일을 해왔습니다. 광주광역시 최초의 민간 어린이도서관인 ‘아이숲어린이도서관’을 만들고 운영했고, 복합문화공간인 ‘책문화공간 봄’을 만들어 작은도서관운동, 마을가꾸기, 지역사회 문화예술교육에 힘써 왔습니다. 쓴 책으로 <아이책 읽는 어른>이 있습니다. 현재 어린이와작은도서관협회 이사, 북스타트 코리아 상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메일 : 1miracle@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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