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슬이가 초등학교 1학년을 다 마쳐가는 데도 한글을 어려워합니다. 읽기장애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한글을 깨치고 들어옵니다. 윤슬이는 한글을 모르는 상태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 한글을 배우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과 달리 초등학교 1학기가 다 지나가는데도 윤슬이가 한글을 잘 몰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윤슬이가 한글을 천천히 배우는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내 생각도 그랬습니다. 아내는 좀 달랐습니다. 윤슬이가 읽기장애가 아닌지 의심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소아정신과 병원을 예약하고, 읽기장애와 관련한 책과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병원 진료와 복지관에서 인지검사, 심리검사, 한글 읽기 검사를 한 결과, 아내가 짐작한 대로 윤슬이는 읽기장애가 있다고 판정이 났습니다.

 

지난 봄 윤슬이가 읽기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기 전에는 아내와 윤슬이가 많이 싸웠습니다. 한글을 가르치는데 아무리 설명을 해도 아이가 잘 모르니까 아내는 화를 내고, 윤슬이는 자기대로 답답하니까 성질을 냈습니다. 윤슬이는 그래서 한글 공부를 무척이나 하기 싫어했고, 상황은 더 안 좋은 방향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심리검사 결과, 윤슬이 마음의 상처가 많았습니다.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회피하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예를 들어 수업시간에 조용히 앉아서 집중하지 않고 딴 생각을 하는 것이죠. 의사는 조용한 ADHD로 몰아 갈 수도(볼 수도 있다가 아니라 몰아 갈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있다면서, ADHD 약을 먹여보지 않겠냐고 권했습니다. 물론 우리 부부는 그 독한 약을 윤슬이에게 먹일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윤슬한글공부2.jpg

 

우리 부부는 고민이 무척 많았습니다. 윤슬이 문제를 놓고 수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나도 교육과 읽기장애에 관한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대안학교의 원형으로 불리는 영국 서머힐 학교에 관한 책 “자유로운 아이들 – 서머힐” “서머힐에서 진짜 세상을 배우다”, 미국 대안학교 교사가 쓴 책  “두려움은 배움과 함께 춤출 수 없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 (ADHD 아이들에 대한 책)”, 미국 공립학교 교사 출신의 저자가 쓴 “수상한 학교” 등을 읽었습니다. 참 예전에 읽었던 “고등어를 금하노라”라는 책도 다시 봤습니다. “고등어를 금하노라”를 쓴 저자는 독일에 유학을 갔다가 독일 남자와 결혼한 한국 여성입니다. 저자의 두 아이 모두 읽기장애가 있었습니다.

 

이 책들 곳곳에서 윤슬이처럼 읽기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나옵니다. 읽기장애를 극복하고 대학에 간 아이들도 있습니다. 반면 성인이 되어서도 글을 잘 못 읽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를 찾아 잘 살고 있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이 책에 나온 읽기장애를 가진 많은 아이들이 글을 잘 읽든 못 읽든 자기의 길을 스스로 개척해가면서 잘 살고 있었습니다. “고등어를 금하노라”를 쓴 저자는 두 아이 모두 읽기장애로 성적이 부진해도 꿋꿋했습니다. 오히려 아이들을 걱정하는 교사에게 글을 1학년에 깨우치든, 4,5학년에 깨우치든 크게 문제 될 것 없다고 위로를 할 정도였습니다. 두 아이 모두 읽기장애를 잘 극복하고 나중에 대학에 진학합니다.

 

내가 읽은 책의 모든 저자들은 누구는 다섯 살에 읽기를 깨우치고, 다른 누구는 열두 살에 읽기를 시작하더라도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열다섯 살쯤엔 누가 먼저 읽기를 깨쳤는지 아무도 알 수 없을 거라고 강조합니다. 진짜 문제는 아이가 아니라 아이들의 편차를 인정하지 못하는 어른과 학교에 있다고 지적합니다.

 

한글로봇.jpg

윤슬이가 한글 블록으로 만든 로봇.

 

윤슬이는 가을부터 언어치료와 마음을 튼튼하게 하는 치료를 같이 받고 있습니다. 우리 부부도 이 상황을 잘 받아들이고 다른 아이들보다 늦더라도 조금씩 조금씩 글을 배워가고 있는 윤슬이를 칭찬하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아내와 한글 때문에 자주 싸우던 당시, 윤슬이는 잠자리에서 “한글을 천천히 배울 수도 있지. 엄마는 왜 화를 내고 그래”라면서 무척 성질을 내고 “한글 배우기 싫어”라는 이야기를 자주 했습니다. 언제인가 내가 윤슬이에게 “한글 천천히 배워도 괜찮아. 대신 공부할 때는 열심히 하자”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부터인지는 몰라도 윤슬이의 태도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여전히 한글 공부를 어려워 하지만 회피하거나 도망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씩 받는 마음을 튼튼하게 하는 치료를 윤슬이는 무척이나 기다리고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윤슬이가 다니는 학교는 혁신학교입니다. 교과과정의 50%는 교사에게 자율권이 있습니다. 다른 학교는 1학년 2학기가 되면 받아쓰기를 하지만, 윤슬이 담임 선생님은 받아쓰기를 전혀 하지 않습니다. 받아쓰기가 한글을 익히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윤슬이 담임선생님은 방학 숙제로 딱 세 가지를 냈습니다. 방학 동안 즐겁게 놀기, 도서관에 가서 자기 도서대출증 가지기, 자기 책 한 권 가지기였습니다. 윤슬이가 읽기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따로 시간을 내서 한글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윤슬이가 좋은 학교와 선생님을 만나서 정말 다행입니다.

 

ADHD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아이의 문제는 사실 부모와 학교의 문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들을, 아이들마다 다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는데도, 아이들마다 편차가 있는데도, 그 아이들을 모두 획일적으로 가르치려고 드는 학교가 오히려 문제라는 것을 말이죠. 아이 마음의 상처는 아이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부모와 어른이 잘못된 생각과 태도로 아이를 대하면서 비롯됐다는 것을 말이죠.

 

윤슬이가 1학기 때는 왠지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서 걱정이 많았습니다. 2학기가 되어서는 아이들과 잘 어울리고 잘 놉니다. 다행입니다. 읽기장애가 있더라도 지금처럼 아이들과 잘 어울리고, 잘 놀고, 자기 속도대로 배워간다면 윤슬이도 지금의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잘 클거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윤슬이가 반 아이들이 쓴 시집을 갖고 왔습니다. 윤슬이는 자기가 쓴 시를 찾아 엄마,아빠한테 보여줬습니다. 윤슬이 얼굴에 "나 잘했지"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폭풍 칭찬을 해줬습니다.  

 

윤슬아~잘하고 있어! 힘내고 사랑해!  

 

* 초등학생 학습부진의 40%는 읽기장애(난독증)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중 읽기장애로 한글 배우기를 어려워 하는 아이는 우리나라의 경우 5%~10% 정도입니다. 영어권 나라는 30% 이상이고요. 영어보다는 한글이 배우기 쉽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읽기장애는 지능이나 발달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능이 높고 발달에 문제가 없어도 발생합니다. 읽기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은 말(단어)을 들을 때 그 속에 있는 개별 소리를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나무'라는 말은 <n>/<a>/<m>/<u> 각각의 소리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무'의 뜻은 알고 말할 줄 알아도, 읽기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이 말 속에 들어가 있는 각각의 소리를 구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읽기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발음이 부정확하거나, 친구들의 이름을 잘 외우지 못하는 등 몇 가지 특징을 보입니다. 윤슬이도 그랬습니다.

 

읽기장애의 치료는 철저하게 소리에 근거해서 글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학교 교육은 의미 중심의 한글 교육을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칠 때 의미 중심으로 할 것이냐, 소리 중심으로 할 것이냐라는 학자들 사이의 대논쟁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소리 중심의 교육이 더 효과적이라고 결론이 났습니다. 하지만 우리 나라 학교 교육은 여전히 의미 중심의 한글 교육을 하고 있답니다. 공립학교에서 대안적인 한글 교육을 고민하는 교사들이 소리 중심의 한글 대안 교과서를 만들기도 했답니다. (윤슬이 담임 선생님도 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읽기장애는 초등학교 4학년 전까지 치료를 적절하게 받으면 완전히 극복할 수 있답니다. 의사, 언어치료사 등 전문가에 따르면 만 10세까지가 골든타임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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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현
제주에서 8살, 4살 아들을 키우는 아빠입니다. 육아휴직도 두 번 했습니다. 4년 전에 각박한 서울을 떠나 제주로 왔습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자 벌인 일입니다. 우리 부부의 좌우명은 평등육아입니다. 사실 아내가 먼저 외치기 시작한 좌우명이지만, 저도 동의합니다. 진짜입니다.
이메일 : hyunbar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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