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기 시.jpg .


내 쌍동이 자매에게는 두 아들이 있다.

큰 아들은 공부머리가 있어 양주 일반고를 다니며 울산 과학기술대를 들어간

영민한 아이였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사촌 여동생들이 보고싶어서

장거리 전화를 걸어서는 윤정이와 이룸이를 꼭 바꿔 달라는 정 많은 녀석이다.


둘째는 형과는 많이 다르다.

어려서부터 넉살이 좋고 유들유들하고 말을 잘 했다.  관심사도 다양해서

책을 읽다가 한 작가에 빠지면 그 작가의 모든 작품을 샅샅이 찾아서 읽고

음악은 어찌나 다양하게 듣는지 팝과 가요를 거쳐 월드팝에 연주곡까지

찾아가며 듣는 아이다.

공부엔 큰 관심이 없었다.  중학교 들어가면서 삐딱해지더니 엄마의 잔소리가

길어지면 바로 끊어버리고 제 방 문을 쾅 닫는가하면 밥도 따로 먹고

한동안은 엄마랑 말 한마디 안 섞기도 하는 등 쌍둥이 마음을 힘들게 했다.

저 녀석,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건가... 걱정도 하고 한숨도 쉬어가며

그래도 뭔가 할 마음이 생기면 달라지겠거니... 지켜보고 있었는데

정말 생각하지 못한 소식들이 솔솔 들려오는 것이다.


모태솔로라고 한탄하던 녀석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것이다.

사촌형아네 집에 놀러가 자고 온 필규가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사진을

봤다는데 배우 '김고은'을 닮은 이쁜 여학생이라는 말에 입이 떡 벌어졌다.

오호라 이 녀석.. 그런 재주가 있었다니..


부모한테는 틱틱거리는 녀석이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받을땐 다정하고

나긋하게 대꾸하더라며 형부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밤 새 카톡을 하느라

잠도 자주 설치는 모양이었다. 한마디로 열일곱 조카는 첫사랑에 푹

빠져 있는 것이다.

사랑에 빠지면 시인이 된다는 말도 있지만 우리 조카가, 늘 진지한 모습이라곤

도무지 찾아볼 수 없던 년석이 여자친구가 생긴 다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는

얘기엔 또 한번 뒤집어졌다. 조카의 카톡에는 분명 여자친구를 향해 쓴 게

틀림없는 달달한 연시들이 수시로 업뎃이 되었다. 읽어보니 꽤 그럴듯한

시 들이다.


최근에 열어본 녀석의 카톡 프로필 사진에는

'세상 속 망망대해를 표류하다

                  풍덩

바다 같은 그대에게 빠져버렸다'

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분명 조카의 것이 틀림없는 지저분하게 낡은 운동화를 신은 발이

분명 여자친구의 것이 틀림없는 눈처럼 새햐얀 운동화를 신은 발과

앞코를 살짝 대고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도 있다.

이쁘고 달달하게 사랑하고 있는 젊은 연인들이다.


구름' 이란 시 속에서는


- 내가 저 구름이 되면

넓은 하늘을 건너

그대에게 내 마음 한 조각

전할 수 있을텐데 ' 라고 쓰여 있었고


 '소망'이라는 시도 있었다.


- 그 달 밝은 밤

웃는 너를 바라보며

너의 눈을 바라보며

차디찬 겨울 바람에

외로이 스치운 생가은

그저

이 시간 속에

이 공간 속에

너와 함께 남아 있고 싶다는 소망

아주 작은 소망 하나였다 -


오오 녀석.. 정말 제법이다.

매일 술술 여자친구를 향한 마음들이 줄줄 시로 흘러나오는 모양이다.

읽다보면 이 시를 받는 대상이 나 였으면 참 좋겠다는 질투가 날 정도다.


덕분에 요즘 우리 친정 자매들은 조카의 카톡에 들어가 새로 올라온

녀석의 연시를 읽는 재미에 빠져있다.

물론 촌스럽게 직접 전화를 걸어 꼬치꼬치 캐묻는 꼰대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늘 그랬듯이 조카의 어떤 모습에도 전폭적인 지지와 응원을

보내는 후원자의 마음으로 지켜볼 뿐이다.

사랑에 빠진 열일곱 청춘이라.. 멋지지 않은가.

내가 그나이때는 사랑같은 건 공상속에서나 존재했지 진짜 남자친구를

만드는 일은 엄두도 낼 줄 몰랐다.

연애라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은 대학에나 들어가야 할 수 있는 건줄 알았다.

조카를 지켜보고 있자니 서로 좋아하는 열일곱 젊음이 참 이쁘고 부럽다.

그 넘치는 마음을 수없는 시로 써 내려가는 조카의 마음은 더 이쁘고 기특하다.


사촌 형아의 애정행각을 놀라움 반 부러움 반으로 지켜보고 있는 우리 아들은

과연 언제쯤 첫사랑의 열병을 앓을라나 심히 기대가 커진다.

다행히 다니는 학교에 마음이 가는 여학생이 있다고 내게 슬쩍 귀띔 해 주길래

학교 행사때 가서 그 여학생을 멀리서 지켜본 일이 있었는데 내 맘에도 꼭 들었다.

아들의 안목에 믿음이 간다. 혹 내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들이 좋아하면 그만이다.


사랑할 줄 알고 그런 마음을 표현할 줄 아는 젊음이 좋다.

중학생이든 고등학생이든 무슨 상관인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고, 그 사람 때문에

한번도 안 해보던 일들에 마음이 가고,  날섰던 마음이 한번에 풀어지는 시절을

살아볼 수 있다는 자체가 축복일 것이다.


열 일곱의 사랑을 뜨겁게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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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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