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교육

아이에게 필요한 건 지시 아닌 질문

김민식 2017. 11. 08
조회수 2409 추천수 1
512.jpg » <내조의 여왕> 촬영 중 아역 연기자랑 대본 연습하는 장면. 아무리 어린 배우라도 항상 물어봅니다. “이번 신, 어떻게 연기하고 싶니?”
김민식 피디의 통째로 육아
 
공대를 나와 영업사원을 하다 드라마 피디로 일하는 저를 보고 친구들이 가끔 묻습니다. “너는 연출을 전공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드라마를 만드니?”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나는 모른다.” 저는 드라마를 모릅니다. 그래서 항상 사람들에게 물어봅니다. 촬영장에 배우가 오면 물어봅니다. “이 신 연기는 어떻게 할 건가요?” 배우가 리허설로 보여주면 옆에 있는 카메라감독에게 묻습니다. “저 연기를 카메라에 어떻게 담아야 할까요?” 카메라감독이 콘티를 제안하면 스태프들에게 묻습니다. “자, 콘티가 이렇다면 장비 세팅은 어떻게 할까요?”
 
배우나 스태프들에게 먼저 지시를 내리지는 않습니다. 각자가 준비해 온 아이디어를 들어보고 협의를 통해 촬영을 진행합니다. 연기자가 대본을 보고 며칠 동안 열심히 연습해 왔는데 촬영 현장에서 감독이 다른 톤을 제시하면 배우가 연기할 때 헷갈립니다. 자신이 준비한 톤과 감독이 지시한 톤이 충돌하니까요. 결국 ‘영민’한 배우는 연습을 해 오지 않습니다. 대본 연구를 하지 않고 현장에서 감독이 시키는 대로만 합니다. 배역의 윤기나 생기가 사라지지요. 연기자로서는 일하는 재미도 사라져요. 감독의 꼭두각시가 된 것 같거든요. 아마 다음 작품엔 저랑 일하려 하지 않을 겁니다. 배우가 연기하는 즐거움을 만끽하려면 감독은 지시보다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열 살, 열일곱 살 두 아이를 키우면서 늘 고민입니다.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 답은 저도 모릅니다. 1년 전, 세상이 1년 만에 이렇게 바뀔 줄 몰랐는데, 10년 후, 20년 후 어떤 세상이 올지 제가 감히 어떻게 알겠어요. 답을 모르기에 저는 아이들에게 물어봅니다. “지금 너는 무엇을 하고 싶니?”
 
아이가 책을 읽어달라 하면 책을 소리 내어 읽어주고, 보드게임을 하자고 하면 루미큐브 판을 펼치고, 자전거를 타자고 하면 같이 자전거를 끌고 공원으로 나갑니다.
 
어려서 부모님이나 선생님 같은 주위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공부만 하던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회사 상사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만 하면서 삽니다. 시스템과 명령에 따라 열심히 일하는 건 앞으로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더 잘할 것 같습니다. 
 

이가 스스로 성장하는 즐거움을 맛보려면 자율성과 자발성을 키워야 합니다. 결국 부모도 아이에게 지시를 내리는 사람이 아니라 물어보는 사람입니다.

 

‘나는 무엇을 할 때 가장 즐거운가?’ 

이것을 찾는 것이 진짜 공부입니다. 아이나 어른이나. 

 

글·사진 김민식 피디 seinfeld68@gmail.com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김민식
SF 애호가 겸 번역가, 시트콤 덕후 겸 연출가, 드라마 매니아 겸 감독, 현재는 책벌레 겸 작가. 놀이를 직업으로 만드는 사람. 아이들의 미래도 놀이에 있다고 믿는 날라리 아빠.
이메일 : seinfeld68@gmail.com      

최신글




  • 기다리는 것도 실력이다기다리는 것도 실력이다

    김민식 | 2018. 01. 31

    집에서 설거지는 제 담당인데, 시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려요. 밥을 먹고 과일을 먹고 양치질을 하고 휴대폰을 보면서 천천히 음악 재생 목록을 고릅니다. 신나는 음악을 틀어놓고 흥겹게 설거지를 하거든요. 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흥이 깨지면...

  • 취미가 직업이 되면 그때 가서 우기자취미가 직업이 되면 그때 가서 우기자

    김민식 | 2018. 01. 02

    어려서부터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한 제가 공대를 간 데는 사연이 있습니다. 제 글씨가 알아보기 힘든 악필인데요. 아버지께서는 ‘그 필체로 문과에 갔다가는 굶어 죽기 딱 좋다’고 하셨어요. 교사로 평생 일한 아버지는 “선생이 아무리 잘 가...

  • 아이와 함께, 그보다 더 바라면 협박아이와 함께, 그보다 더 바라면 협박

    김민식 | 2017. 12. 06

    철학자 강신주 박사는 교사들을 상대로 강연하는 자리에 가면 이렇게 물어본답니다.“그래서 여러분은 유괴범입니까 선생님입니까?” 부모를 협박해서 돈을 뜯어내면 유괴범이고, 아이를 가르치는 일이 좋아서 열심히 했는데 그 대가로 나라에서 ...

  • ‘승자 독식’ 전교 일등들의 편식‘승자 독식’ 전교 일등들의 편식

    김민식 | 2017. 10. 11

    선수 기류 요시히데가 100m 단거리 경주에서 9초98의 기록을 세우며 순수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마의 10초’ 벽을 깼습니다. 2016 리우올림픽에서 가장 놀라운 순간은 육상 400m 남자 계주에서 일본이 은메달을 땄을 때입니다. 육상은 신체 조건상 ...

  • 방송사 피디 집에 TV가 없는 까닭방송사 피디 집에 TV가 없는 까닭

    김민식 | 2017. 09. 05

    방송사 피디로 20년을 살며 다양한 직업인을 만났는데요. 가장 부러운 직업이 작가입니다. 대중에게 얼굴을 알려야 하는 연예인에 비해 사생활이 보장되고요. 직업 수명이 길어 나이 70살에도 드라마를 집필하기도 합니다.저의 꿈은 퇴직 후 전업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