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처음엔 두려웠다. 그들 마음 속에 숨겨둔 고통을 마주한다는 걸 견디어 낼 수 있을 지 자신이 없었다. 직접 그들을 만나보니, 두려움은 분명 내가 만들고 키운 감정이었다. 삶이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사람들은 오히려 보통 사람들보다 편안했다. 그들을 만나 치유를 하고 싶었던 마음에 시작된 상담. 오히려 그들은 나에게 많은 지혜를 주었다.

 

 눈은 컸지만 얼굴은 작았다. 얼굴은 까맸지만 입술은 붉었다. 10cm도 안 되는 짧은 머리칼.  60이란 나이에도 머리카락을 세운 모습이 잘 어울리는, 세련된 도시의 느낌이 나는 이국적인 외모였다. 남편과 나란히 자리에 앉은 아내는, 20대 이후 대부분을 외국에서 보냈다고 소개했다. 대화를 나누다가 남편에게 통역을 요청할 만큼 말에 담긴 억양에서부터 몸짓 하나까지 남달랐다.
 “죄송해요. 제가 뜨거운 걸 잘 먹지 못해서요.”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을 먹기 위해선 빈 플라스틱 컵 두 개가 더 필요했다. 커피가 담긴 컵의 끝을 살짝 잡은 뒤 빈 컵에 일부를 따라 부었다. 입으로 몇 번 후후 불어대다가 다시 다른 빈 플라스틱 컵에 커피를 옮겼다.
 “치료 과정이 어떠셨어요?”
 떠난 아내가 항암 치료 과정을 힘겨워하던 모습이 떠올라 물었다. 질병에 걸린다는 건 세상에 내가 혼자 남은 느낌을 가져다 준다. 가까운 사람이 곁에 있어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건 바로 ‘나’이니까. 아픔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가 없다. 질문 하나를 던졌는데 상대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떨어뜨렸다.
 “힘들었어요.”
 그녀는 "힘들었다"고 짧게 대답했다. 남편은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가더니 티슈 뭉치를 가져와 아내 손가락에 놓았다.
“뭐가 가장 힘드셨나요?”
“음식 냄새가요.”

먹고 싶어 먹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서 먹어야 하는 사람들. 항암 치료를 받는 환자들은 종종 음식 냄새 자체가 고통이라고 호소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녀는 미국에서 주립대학에서 약학대학을 나왔고 사업을 하는 남편을 만나 별다른 걱정 없이 살았다. 질병은 많이 배우거나 많이 소유한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찾아왔다. 평소에 술과 담배를 하지 않아도, 꾸준히 운동을 해도, 삶을 집어 삼키는 질병은 예고 없이 갑자기 불쑥 찾아왔다.


질병에 걸린 사람들은 지난 과거의 경험 속에서 불행하고 힘든 시간을 끄집어내 그 시간이 병에 걸린 원인이라고 스스로 진단을 내렸지만,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사람들이 모두 질병에 걸리는 건 아니었다. 전쟁이란 고통의 시간을 견디어낸 사람들 가운데에도 장수를 하는 경우는 많으니까 말이다. 그녀는 여러 사람이 머무는 4인실에서는 점심 시간이 특히 힘들다고 했다. 결국 보험 혜택이 안 되는 비싼 병실로 자리를 옮겼다. 남편은 어느새 아내의 커피를 가까이 가져와 커피를 다른 컵에 부으며 열기를 식혔다. 치료비가 부담스럽지 않느냐고 물었다. 암환자들은 처음에는 신체적 고통 때문에 힘들어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경제적 고통에 힘들어 했다. 하지만 그녀는 천진난만하게 대답했다. 

“사실, 저는 돈에 관해서는 전혀 몰라요.”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만 있던 남편이 아내의 말을 듣더니 한 마디 거들었다.
“이 사람은 정말 돈에 관해선 잘 모릅니다.”
울던 아내 얼굴이 반달을 그리며 웃기 시작했다. 
 “전 그냥 먹고 싶으면 이야기를 해요. 여보, 나 메론 먹고 싶어요. 그럼 남편이 장 바구니에  과일을 넣어요. 그런 식이에요.”

골치가 아픈 일, 힘겨운 일은 모두 남편이 도맡아 했다.

“여왕처럼 사셨군요.”

그 말에 그녀는 깔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어느새 그녀 왼손은 남편의 손목 위로 올라가 있었다. 다행히 마지막 항암 치료를 마친 그녀는 빠르게 몸이 회복 되어가는 중이라고 대답을 했다. 빨리 회복할 수 있었던 건 남편의 돌봄 때문이라며 남편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시니어 커플 2.jpg
 (자료출처 : 픽사베이)

 

 “치료 과정에서 힘들었다는 말씀도 하시나요?”
 “전 숨김없이 모두 이야기를 해요. 힘들면 힘들다, 아프면 아프다.”


그 말을 들으면서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지 않는 고통은 고통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니까. 이야기를 들어보니 남편은 아픈 아내를 위해 정성껏 음식까지 손수 만들었다.

“저는 힘들면 힘들다고 하는데 남편은 힘들다는 이야기를 잘 안 해요.”
아내는 남편을 바라봤다. 하긴, 병에는 효자도 없다고 했으니까. 아픈 아내를 돌보는 남편도 힘겨울 것 같았다. 그래도 더 힘든 건 환자가 아닐까?

“환자의 가족도 힘들지만, 전 가족보다 환자 자신이 더 힘들다고 생각을 합니다.”

아픈 아내를 위해 응원의 말을 전했다. 사실 남편 걱정을 하기보다 먼저 자신의 몸을 돌보기를 바랐다. 그게 남편을 위하는 일일테니까. 그녀는 머뭇거리며 남편을 바라봤다. 
 

“사실 남편은 저보다 더 아파요.”
 그 말에 줄곧 아내를 쳐다보던 시선을 남편으로 돌렸다. 아내의 이야기를 듣던 남편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저도 암 환자입니다.”
 이건 무슨 말인지. 부부를 만나기 전 나에게 소식을 전해준 사람은 아내만 아프다고 했었다.

“전 사모님이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왔는데요.”
“자녀도 없는데 두 부부가 모두 암에 걸렸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이 많이 놀랄 것 같아 아직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전 뼈 속까지 암이 전이돼 더 이상 치료를 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남편은 말 그대로 말기 암 환자였다.

“전 처음에 그게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그냥 수술을 받지 않는다는 말에 좋아했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남편의 상황은 현대의학으로서는 치료가 불가능했다. 겉으로 보기엔 마지막 항암치료를 받고 가녀린 몸을 지닌 아내가 더 힘겨워 보였지만, 이제 시간이 지나갈수록 남편이 더 쇠약해질 게 분명했다.
 

그런 남편에게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는 아내, 눈물을 흘리는 아내를 위해 티슈를 가져다 주는 남편. 아내가 철이 없게도 느껴졌다. 남편 이야기가 짧게 끝나고 다시 이야기 주제는 아내에게 맞춰졌다. 아내는 말이 많아졌고 남편은 다시 아내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노년 커플.jpg  
(자료출처 : 픽사베이)

 

이야기를 듣고 헤어지는 길.

“와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두 부부는 감사함을 표시했다. 아내는 날씨가 춥다며 두 손을 옷에 집어 넣었고 남편은 춥다는 아내의 어깨를 감쌌다. 다음에 또 보자는 말을 전하고 두 사람은 집을 향해 걸어갔다. 두 사람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봤다.


뒷모습을 보며 어쩌면 아내는 그 남편이 살아있는 이유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살아가는 이유를 마치 아내를 도와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듯 그 남편의 행동과 언어는 모두 아내의 편안함을 위해 맞춰져 있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 그녀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남편이 오래 견디어주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언젠가 작별의 순간이 오면, 장례식장에서 아내의 두 손을 꼬옥 잡아 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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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갑작스럽게 아내와 사별하고 OBS 방송국 뉴스앵커와 기자생활을 그만둔 뒤, 거들떠보지 않던 가정으로 되돌아갔다. 아이의 자존감을 키우고 사랑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상담심리학과에 진학했다. 삶과 죽음, 그리고 가족의 의미를 담은 <지금 꼭 안아줄 것>이란 책을 출간한 뒤 또 다음 책을 준비중이다.
이메일 : areopagi@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nam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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