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를 먹고 있는 홍릉수목원의 청설모 ⓒ박분

열매를 먹고 있는 홍릉수목원의 청설모

탱자나무에는 황금빛 탱자가 주렁주렁 열렸다. 빨갛게 익은 괴불나무 열매는 새들의 간식이고 단단한 모감주나무 열매는 염주로 쓰인다. ‘후드득’ 열매가 떨어지는 가을 소리도 들린다. 키 큰 나뭇가지 끝이 소란스럽다 싶더니만 아래 풀밭에 뭔가 떨어졌다. 열매껍질이다. “청설모가 까먹고 버린 호두껍질이에요” 해설사의 설명에 사람들 시선이 나무 꼭대기로 쏠리지만 이미 숲속으로 줄행랑을 친 뒤다.

홍릉수목원에서 숲 이야기를 들으며 자연의 소중함을 함께 나누는 시민들 ⓒ박분

홍릉수목원에서 숲 이야기를 들으며 자연의 소중함을 함께 나누는 시민들

은은한 나무 향을 맡으며 천천히 걸어가면 가을 풍경과 하나가 된다. 이곳은 홍릉수목원이다. 행정 소재로는 서울 동대문구 회기로 57에 위치한 홍릉수목원은 천장산 남서쪽 자락에 있다.

홍릉수목원은 일제강점기 1922년 임업시험장이 세워지면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조성된 수목원이다. ‘홍릉(洪陵)’은 조선의 마지막 왕비인 명성황후의 능(陵)이다. 일본인 자객들에 의해 시해당했던 명성황후가 이곳에 묻혔다가 1919년 고종황제가 승하하면서 남양주로 이장해 합장했기에 사실 이곳에 능은 없다.

홍릉수목원은 산림청 산하 국립산림과학원이 관장하는 수목원으로 현재 수목원에는 총 2,035종(목본 1,224종, 초본 811종)이 서식하고 2만여 본의 자생식물이 수집·보존돼 있다. 사계절 쭉쭉 뻗은 푸른 나무가 즐비한 침엽수원을 비롯해 활엽수원, 초목원, 약용식물원 등으로 탐방로가 구분돼 있다.

제일 먼저 만날 수 있는 곳은 제1수목원인 침엽수원이다. 길 옆으로 전나무, 낙우송 등 침엽수가 빽빽하게 자라고 있다. 서로 비슷해 보이는 나무를 비교하며 산책하는 것도 재미있다. 특히 전나무와 구상나무, 주목과 비자나무, 낙우송과 메타세콰이아는 한번 봐서는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나무들이다.

봄과 여름철에 무성했던 초목원은 이제 기운이 쇠하여 대부분 마른 풀의 모습으로 명찰과 함께 남아있다. 오이풀, 나비나물, 요강꽃 등 이름도 생소한 초본 식물들은 봄과 여름에 만나 보기로 하고 활엽수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가을빛깔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 홍릉수목원의 활엽수원 ⓒ박분

가을빛깔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 홍릉수목원의 활엽수원

숲은 밖에서 바라볼 땐 온통 푸르게만 비쳤는데, 숲속으로 들어오니 가을 빛깔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홍릉수목원에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특별한 나무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견돼 학계에 보고된 문배나무도 그 중 하나다. 일본 식물학자 나까이가 1936년에 현 위치에서 처음 발견한 기준 표본목으로 학술적 가치가 크다. ‘기준 표본목’이란 새로운 식물을 발견해 처음 이름을 붙이게 된 나무를 말한다. 산돌배나무의 변종으로 알려진 문배나무는 산돌배나무에 비해 꽃이 큰 것이 차이점으로 한국특산식물로 지정돼 있다. 100살이 훌쩍 넘은 문배나무는 해마다 아기주먹만 한 열매를 맺는데 향이 좋다고 한다.

우리 민족이 결코 빠트릴 수 없는 나무가 있다면 바로 소나무가 아닐까? 홍릉수목원에는 귀한 한 그루의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속리산 정이품송의 후계목(後繼木)이다. 속리산 정이품송의 대를 잇기 위해 삼척의 금강송 군락지에서 가장 곧고 뒤틀림 없는 소나무를 뽑아 속리산 정이품송의 수꽃에 인공수정을 해서 탄생한 소나무다. 아직은 키 작은 어린나무지만 균형감 있게 뻗은 가지들이 정이품송의 모습을 빼닮아 기대를 모으고 있다.

풍산가문비나무 어린 묘목 또한 후계목으로 맥을 이어가고 있다. 함경도 풍산이 고향인 풍산가문비나무는 북한 내 일부 지역에만 자생하는 특산종으로 1923년 일제가 홍릉수목원에 들여왔다. 노령의 풍산가문비나무가 고사하기 몇 해 전 산림과학원은 이 나무에 국내 가문비나무를 접붙여 후손을 얻었다. 풍산가문비나무 외에도 홍릉수목원에는 미인송으로 불리는 장백산소나무, 압록강유역에 자생하는 종비나무, 황해도 장수산이 고향인 장수만리화 등 북한 특산종 나무 4종 22그루가 있다.

한라산을 비롯해 지리산, 무등산, 덕유산 등의 높은 산에서 자라는 구상나무 또한 안타까운 사연을 지녔다. 한국 특산종이지만 우리가 등록하기도 전에 외국인이 가져가서 품종을 개량해 먼저 세상에 알린 것이다. 저 짙푸른 구상나무야말로 ‘크리스마스트리’의 원조인 것을! 해설을 듣다 말고 시민들은 안타까움에 눈을 지그시 감기도 한다. 한국의 뼈아픈 역사는 식물에도 영향을 미쳤음을 홍릉수목원의 나무들이 말해주고 있다. 나무들의 과거 이력과 구구절절한 사연을 듣다 보면 우리 인생사와 다르지 않음에 동병상련의 마음을 느끼게 된다.

수목원에 위치한 왕벗나무 쉼터 ⓒ박분

수목원에 위치한 왕벗나무 쉼터

숲 해설을 듣고 난 후, 홍릉수목원을 산책하듯 한 바퀴 돌면 3시간 정도 소요된다. 이곳에는 유명한 나무들이 있으므로 가급적 숲 해설을 듣는 게 유익하다. 수목원에는 아름드리 ‘왕벗나무 쉼터’가 있어 간편한 도시락을 들며 편히 쉬어 갈 수도 있다.

수목원을 돌아본 뒤 천장산 자락 중턱에 있는 ‘홍릉 터’로 향했다. 묘는 오래전 이미 이장했지만, 사람들은 10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이곳을 찾고 있다. 단풍나무가 많은 이곳은 늦가을에 오색단풍이 그지없이 아름다운 곳이라고 한다. 언덕 아래에는 고종황제가 목을 축였다는 우물인 ‘어정’도 있다. 황후를 향한 그리움에 고종황제는 이곳을 자주 찾았던 것 같다.

고종황제의 후궁인 엄귀비의 묘인 영휘원의 전경 ⓒ박분

고종황제의 후궁인 엄귀비의 묘인 영휘원의 전경

홍릉수목원 정문 바로 건너편에는 세종대왕기념관과 영휘원이 있다. 영휘원은 고종황제의 후궁인 엄귀비의 묘다. 엄귀비는 고종을 가마에 태워 러시아공관으로 피신시켰던 아관파천의 장본인이기도 하다. 엄귀비의 묘 옆에는 고종황제의 손자로 생후 9개월 만에 죽은 이진의 묘(숭인원)가 나란히 있어 애잔함을 더한다. 어린 손자의 죽음을 애석히 여겼던 엄귀비에게 위로가 됐을 것 같다. 일본유학이라는 명분으로 아들(영친왕)과 생이별했던 엄귀비는 어려울 때 고종을 모시고 신교육사업에도 헌신했다. 역사의 아픔을 위로하듯 묘역으로 가을볕이 쏟아진다.

홍릉수목원은 멸종위기·희귀식물 등 산림자원들과 산림과학연구시험지의 보호를 위해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일반인에게 무료로 개방한다. 3월부터 11월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며, 오전 10시 30분과 오후 2시, 두 차례 예약 없이 숲 해설을 들을 수 있다.

평일에는 일반인 출입이 제한되며, 어린이와 학생 등의 단체를 대상으로 숲 해설 프로그램을 통한 관람만 가능하다. 주변에 주차장이 없으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홍릉수목원은 지하철 청량리역이나 고려대역에서 내려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

문의 : 국립산림과학관(02-961-2551)

(*출처: 내 손안에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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